티스토리 뷰
후모아레나에서 주원이의 스케이트 강습을 받고 난 후, 우리는 근처 타슈켄트 시티 파크로 향했다. 타슈켄트 시티 파크 주변으로는 대형 쇼핑몰과 럭셔리한 아파트들이 건설되고 있는지 온통 공사판이었다. 이곳 역시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인공미가 넘쳐흘렀다. 타슈켄트 시티파크의 위성도를 보면, 학종이처럼 정사각형인 지면을 작은 동그라미들과 큰 타원형 동그라미로 공간을 나누고 있고, 네모의 중간에 그릇 모양의 인공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건축가에게 정사각형의 종이를 줬더니, 컴퍼스로 동그라미를 신나게 그려놓은 게 실현된 느낌이었다.
멋진 놀이터와 인공호수를 둘러싼 곳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지만, 2019년 개장한 이 공원 역시 나무가 아직 그늘을 형성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최근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공원들의 특징이 있었다.
1. 기하학적인 도형을 사랑한다.
2. 아름답고 깨끗하다.
3. 아름답기 위해서 나무가 시야를 가리면 안 되기 때문에 나무는 조금 심고, 잔디를 썼다.
4. 의외로 앉을 만한 벤치가 적다.
5. 화장실이 군데 군데 있지 않다.
6. 깨끗해야 하기에 쓰레기통도 배치되어 있지 않다.
7. 어린이들의 놀이터는 아름답지만, 세련되기 위해서 나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반들반들한 플라스틱으로 설계되어 있다.
실용성보다는 외관을 중시한 타슈켄트시티파크, 이건 내가 아이비에커네 갔을 때 아이비에커의 집에서 받았던 인상과 비슷했다.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실용성은 다소 떨어지는, 즉 사는 사람들의 편의성보다는 손님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더 중시한 느낌. 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이 쉬고 휴식하기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타슈켄트 아니 우즈베키스탄이 이 정도야 보여주기 위해 설계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체면을 중시한 Tashkent City Park한가운데에서는 놀랍게도 한국의 치킨 전문점이 입점해 있었다. 치킨이 타슈켄트 시티 파크에 어울릴 정도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급음식으로 분류되고 있는 건가.
타슈켄트 시티 파크 입구에 간이로 마련된 부스에서는 이 공원에서 즐길 수 있는 레저시설 관람권을 표로 팔고 있었는데, 밀랍인형 박물관, 천체 영상 상영관, 공중을 나는 체험 3종이 주요 즐길꺼리였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 뻔하디 뻔한 이런 시설을 이용하지 않았겠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바, 나무 그늘이 없는 타슈켄트 시티 파크에서 5살 아이와 친정엄마를 쉬게 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뭐라도 해서 실내로 진입해야 했다. 이런 시설들 모두 우즈베키스탄 고유의 문화를 다룬 시설은 하나도 없었다. 아인슈타인과 캐리비안의 해적, 마릴린 몬로, 메시 등이 밀랍인형으로 전시되어 있는 왁스박물관은 수입한 밀랍인형 그대로 전시해 두는 공간 같았다. 이 밀랍인형관이 있는 천체관의 건물도 러시아어나 우즈베크어가 아닌 영어 Tashkent City Planetarium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천체관이라고 해서 학자 울르그벡과 관련된 영상이 상영되나 싶었지만, 서양권에서 수입한 천체 다큐멘터리를 우즈베크어나 러시아어 자막이 없이 영어 그대로 상영하고 있었다.
이 국적없는 타슈켄트 시티 파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소련에 속하던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에 많이 기대서 살아왔지만, 가장 현대화된 이 파크에 적용된 영어문화권을 보면, 아마도 우즈베키스탄도 러시아 영향권에서 점점 벗어나 서양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슈켄트 시티 파크의 가장 정점이야 말로, 파크의 전망을 다 먹고 있는 힐튼 호텔이었다. 우리는 나무그늘 없는 땡볕 그 자체인 타슈켄트 시티 파크에서 벗어나, 에어컨이 있는 힐튼 호텔로 걸어갔다. 입구에는 힐튼호텔의 공식차량으로 보이는 스타렉스가 손님들을 태우고 있었다. 자국생산 자동차를 보호하느라, 외국 자동차에 어마어마한 관세를 때려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일꾼 스타렉스가 여기서는 거의 연예인을 태우는 밴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스타렉스를 지나친 후, 우리는 마치 여기 투숙객인양 호텔로 뻔뻔하게 들어섰고, 검은 슈트를 입은 중년의 벨보이가 문을 열어주자 품위 있는 척 고개를 까딱하고 목례를 건넸다. 로비에는 우즈베키스탄에 출장온 서양인들이 로비에서 신문을 보거나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타슈켄트 힐튼 호텔 1층 로비카페 소파에 앉았다. 분명 비쌀 것이 뻔했지만, 오늘 여기서 기분 전환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는 땡볕에서 하루종일 씨름한 것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피아니스트가 검고 반짝거리는 그랜드피아노에 앉아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종업원이 메뉴를 날라왔다. 메뉴를 보니 오렌지주스가 제일 쌌다. 싸봤자, 슈퍼의 몇 배는 더 줘야 하는 가격이었지만. 우리는 오렌지 주스를 2잔 시켰다. 주원이는 더웠는지 예쁜 유리잔에 담겨있는 오렌지를 벌컥벌컥 마셨다. 친정엄마가 주원이에게 천천히 마시라고 했다. 남은 오렌지 한잔은 친정엄마가 조금 마시더니 나 다 마시라고 양보했다. 나도 엄마에게 다시 오렌지 주스를 양보했다. 오렌지 주스 2잔 가지고 우리는 층고 높고 아름다운 힐튼호텔 1층 로비에서 아름다운 클래식 라이브 음악을 오랫동안 듣다가, 종업원이 "잔 치워드릴까요?" 할 때 비로소 소파에서 일어났다.
'중앙아시아로 5살짜리 아이와 친정엄마와 3달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네 플로프파티에 초대받다 (0) | 2023.02.07 |
---|---|
초르수 시장에서 유아차 수리하기 (0) | 2023.02.06 |
타슈켄트의 민속촌, 나브로즈 파크에서 땡볕을 마주하다 (0) | 2023.02.05 |
타슈켄트에서 아이스스케이트 타기(3) (0) | 2023.02.03 |
타슈켄트에서 아이스스케이트 타기(2) (0) | 2023.02.03 |
- Total
- Today
- Yesterday
- 부하라
- 한살림남서울
- 타슈켄트
- 아이와함께여행
- 키르기스스탄
- 아이와여행
- 해외여행
- 초르수시장
- 유아차수리
- 히바
- 타슈켄트기차박물관
- 전남친
- 우즈베키스탄
- 우르겐치
- 우즈베키스탄여행
- 곡식가루
- 한며들다
- 타슈켄트한의원
- 비쉬케크
- 국제연애
- 카라콜
- 물품모니터링
- 사마르칸트유대교회당
- 첫사랑
- 밥상살림농업살림생명살림
- 사마르칸트
- 재회
- 중앙아시아
- 통역
- 키르기즈스탄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