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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에 눈을 떴다. 너무 더워서인지 밤새도록 태양볕을 식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31도 이상이었다. 오늘도 한낮에는 41도 예고가 있었다. 더 더워지기 전에 성벽이라도 올라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에 유아차를 끌고 성벽으로 올라갔다. 흙벽돌과 지푸라기로 견고하게 지어진 성벽을 올라가니 성 안의 마을이 다 보였다. 저 멀리 미나렛도 보였다. 현지인들이 사는 집들을 보아하니, 관광객인 우리와 달리 에어컨을 켜지 않았는지, 밤새 더위를 피해서 문 앞 신발장 앞에 돗자리를 펴고 잠을 잤던 현지인들도 하나 둘 일어나고 있었다. 이 아침 일찍부터 성벽을 구경온 관광객은 우리 밖에 없었다. 더위가 스멀스멀 오고 있었다. 성벽 구경도 10분 안에 끝낼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돌아가니 그동안 먹었던 대로 빵, 오이와토마토샐러드, 과자 등을 아침으로 차려주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왜 아침부터 과자를 이렇게 차려놓을까. 과자가 아침부터 당기는 걸까? 아니면 손님 접대용으로 차려놓는 걸까? 아직 과자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우리 호텔 옆집에서는 아침부터 히잡을 쓴 여인들이 화덕에 밀가루반죽을 붙여 빵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옆집도 홈스테이인 모양인지 외국인 관광객들이 화덕에 빵을 굽는 걸 잔뜩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옆에서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던 나와 주원이에게도 이웃은 빵을 맛보라며 나누어주었다.
호텔에서 조금 쉬다가 어제 산 히바성히바 성 2일 티켓을 들고 용기를 내어 히바 성 구경에 나섰다. 히바는 오늘도 꽤나 더웠기 때문에 건물과 건물 사이를 다닐 때 한증막으로 진입한 것 같았다. 너무나도 화려한 히바 성은 전망 하나는 끝내줬다. 더운 만큼 사진도 론리플래닛에 나올 법하게 잘 나왔다. 과거 사람들이나 썼을 법한 양털모자(fur hat)도 길거리에 잔뜩 배치되어 있었다. 추운 겨울에나 착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양털모자는 나중에 가이드 설명을 들어보니, 여름에 써도 햇빛도 차단되고 시원하다고 하였다.
11시가 되기도 전에 우리는 더위에 너무 지쳐버렸다. 주원이도 얼굴이 벌게졌고, 모자를 눌러쓴 나조차 어딘가 들어가지 않으면 열사병으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오후 관광이고 뭐고 점심에는 숙소에 들어가서 어제저녁에 매점에서 사 온 수박이나 잘라먹자며 숙소로 향하던 참에, 히바 성 남쪽 게이트에서 큰 소리로 우리를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 사람이에요?"
관광객도 없는 이 곳에 웬 한국어인가? 뒤돌아보니 배불뚝이 우즈베크 할아버지가 땀을 닦으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 한국 가봤어요. 여기 관광 왔어요? 저 투어가이드. 여기 설명할 수 있어요. 설명 필요해요? 나 무로드에요."
배불뚝이 무로드 아저씨는 히바 성의 투어가이드로 활동하고 있었다. 모양새로 봐서는 히바 성을 소개할 한국인 관광객들을 하루 종일 기다린 듯했다. 이 더운 날씨에 코로나 시국에 그것도 한국인들이 관광도 잘 오지 않는 우즈베키스탄 히바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니... 더워서 그런지 아저씨가 너무 애처로워 보였다. 주원이는 언제 집에 가냐고 보채고 있었지만, 아저씨의 처지를 생각하니 아저씨의 호객 행위를 지나쳐버리기 힘들었다.
"나 한국 좋아해요. 한국 다시 가고 싶어. 인천 남동공단 알아요? 거기서 일했어요. 이제 나이 들어서 비자 안 나와. 거기 사장님이 우리에게 잘해줬어요."
무로드 아저씨는 속사포처럼 자신의 한국의 경험을 얘기해줬다.
"가이드 할 수 있어요. 언제 가이드? 지금 가이드 가능해요?"
아저씨는 우리가 지나쳐갈까 봐 마음 졸여하며 말했다. 그 와중에 아저씨의 머리에서는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음. 날씨가 더워서 이제 그만 보고 숙소 가서 쉬려고 했어요. 아이도 너무 더워하고."
"아니야. 실내 들어가면 괜찮아. 나 에어컨 나오는 히바 실내 알아요. 내가 여기 다 알아요. 시원해. 안 더워."
41도의 날씨에 아저씨는 우리를 놓칠까 봐, 히바 성 안에만 들어가면 시원한 곳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전에는 1시간 가이드받고, 나머지는 해가 지면 다시 만나는 조건으로 가이드 계약을 했다.
아저씨는 히바에서 나고 자라, 손자, 손녀도 다 있다고 했다. 아저씨는 내심 시원하다고는 했지만, 배도 나오고 나이도 있으셔서, 열사병 걸리기 직전인 우리보다 더 힘들어하셨다. 한국어를 그리 잘 하시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히바를 설명해주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저씨는 내가 이미 우즈베키스탄에 오기 전 보았던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에 히바 편에 나왔던 무 로드 아저씨였다. 히바 관광에 대한 열정도 없을뿐더러, 아무런 지식도 없이 온 우리들에게 아저씨는 짧은 한국어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노력해주셨다.
확실히 가이드아저씨와 함께 히바를 다시 걸어보니 안 보이던 것들까지 다 보였다. 벽돌 사이사이에는 지푸라기 층이 있었는데, 이 지푸라기 층은 지진이 났을 때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 충격 완충용으로 설치해놓은 거라고 한다. 유연성이나 충격 완충용이라는 단어는 무로드 아저씨는 쓰지도 않았다. 아저씨는 한국어가 짧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땅 흔들려요. 지진. 무너져. 그럼 안 돼. 이거 벽에 넣었어요. 안 위험해. 좋아."
아저씨는 짧은 단어들을 보완하기 위해 수많은 제스처들을 동원해서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무슬림의 전통에 따라 4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는 문화의 독특한 건축양식도 알려주셨다. 이슬람에서는 전쟁으로 배우자를 잃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위해, 사회복지 개념으로 아내를 4명을 둘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아내를 4명을 얻는다면, 이 4명의 아내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하였다. 히바 성에서도 왕이 묵었던 궁에는 4명의 아내가 묵을 수 있는 방이 있었는데, 왕은 아내들 간의 시기 질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왕이 아내에게 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따로 두었다고 한다.
아저씨는 정말 친절했지만, 많이 지쳐보이셨다. 더위 때문에 에어컨이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아저씨인 듯했다. 중간중간 에어컨이 나오거나 시원한 곳이 나오면, 아저씨가 약간의 반색을 하며 조금 쉬어가자며 우리를 자주 앉혔다. 우리에게는 짧은 다리로 어른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주원이가 있기 때문에, 자주 지쳐하는 아저씨와의 궁합이 어느 정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원래 2시간만 가이드받기로 했었는데, 자주 쉬어 가는 바람에 1시간 정도 돈을 더 드리게 되었다.
무로드 아저씨, 앞으로도 히바 성에서 쭉 즐겁게 가이드하세요!
무로드 아저씨. 연락처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히바에서 아저씨에게 연락하세요.
+998 90 558 6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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