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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기사 아저씨는 영어를 그나마 조금은 할 줄 알았다. 택시기사 아저씨도 히바 성에 산다고 했다. 자녀가 셋이나 있다고 했는데, 그중 큰 딸은 대학생이어서 평일에는 우르겐치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주말에 돌아온다고 한다. 우르겐치에 대학 유학 보내는 걸 보니, 우리에게는 안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우르겐치가 이 부근에서는 그나마 큰 대도시인 것 같았다. 택시를 주업으로 하는 것 같은데, 관광객도 워낙 없어서 도대체 아저씨가 무슨 돈으로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걸까. 아저씨는 짧은 영어와는 다르게 우리와 교류하고 싶어 했고, 무뚝뚝한 첫인상과 달리 애가 3명 딸린 아빠로서 주원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고 있었다. 
 우리는 히바성 입구의 작은 슈퍼에서 물을 인당 1리터씩 샀다. 더우니 물이나 잔뜩 마시자 해서 산 것이었지만, 정말 그 이후로 사막 토성에 이르기 전까지 슈퍼는 단 하나도 없었다. 히바 성 부근을 조금 지나치니 바로 사막 같은 마을들이 펼쳐졌다. 얼마나 건조했는지, 택시가 지나갈 때 길에서 모래가 일어나 택시를 덮쳤다.
 택시를 타는 동안 나는 주원이 들으라고 한국 동요를 틀어주었는데, 어쩌다 음악이 멈춘 사이 아저씨는 슬며시 음악테이프를 꺼내 재생했다. 테이프에서는 아저씨가 사랑하는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흥겨운 우즈베키스탄의 최신 가요가 우리를 덥쳤다. 주원이는 우즈베키스탄 최신 가요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까딱 까딱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도나도나도나 마르도나. 이 곡은 주원이의 최애 곡이 되어 우리의 중앙아시아 여행을 관통하게 되었다. 노래는 인도 노래처럼 흥겹기도 했고, 약간은 트로트 같기도 했다. 러시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없어도 확실히 러시아 풍은 아니었다. 

도나도나도나 마르도나를 사랑하는 주원이


 택시는 히바를 떠나 우르겐치를 넘어 다시 누쿠스로 향했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아저씨가 사막 길로 진입하면서 그랬다.
 "여기부터 칼라칼팍스탄이에요."
 아마 누쿠스 근처였던 것 같다. 사실 이런 토성을 보는 택시투어를 우르겐치에서부터 하고 싶었는데, 정작 관광이 발달이 안 되어 있는 우르겐치에서는 택시투어를 구하기 조차 힘들었다. 이 여행기를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우르겐치를 지나쳐서 히바로 가시라. 그곳에 모든 게 다 있다. 
 아저씨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가겠다고 했다.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기름을 넣으려면 모두가 내려야 한단다. 저쪽에 매점이 있으니 가서 기다리면 기름을 다 넣고 가겠다고.. 매점조차 더워도 너무 더웠다. 분명 매점 끝에 에어컨 같은게 있긴 했는데 소리가 안 나는 걸보니 작동을 안 하는 듯 했다. 매점 아주머니는 우즈베키스탄의 아침드라마 같은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배우들의 얼굴이나 대사 톤을 볼 때 막장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기름을 아주 천천히 넣은 아저씨는 매점 앞으로 10분 후에야 우리를 데리러 왔다. 

주유소 앞 매점


 우리가 처음 간 곳은 Topraq-Kala였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사막 한가운데를 한참 지나다가 그 한가운데 언제 지었는지도 모르겠는 토성이 뜬금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짜' 아주 오래전 지은 토성임이 분명했다. 그 세월의 크기로 따지면 유네스코에 일찍이 오르기에 충분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유적들이 칼라칼팍스탄 문명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관심조차 없는지, 그 흔한 표지판조차 없었다. 물론 입장료는 없었다. 관리인도, 매표소도, 화장실도, 매점도 없이, 토성 자체가 자연에 속해버린냥 그저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성이 가까워지자 아저씨는 슬슬 택시의 속도를 늦추다가, 어느 지점에 가자 아저씨는 여기 택시에 있을 테니 우리 보고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Topraq-Kala


 문을 열자 건조하고 뜨거운 사막의 공기가 우리를 엄습했다. 온도계는 없었지만 분명 지금 45도가 분명했다. 이 공기는 건사우나에서 느꼈던 그 공기 바로 그거였다. 이 시점에서 가장 부러운 건 택시에 그대로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을 아저씨였다. 관광객 답지 않게 나는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그건 택시투어를 신청한 관광객 답지 않은 태도이기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물을 한 모금 쭉 들이키고 내렸다. 
 토성은 히바성에서 봤던 건축양식과 매우 유사했다. 짚과 흙, 그리고 뼈대가 되는 나무까지 이것 자체가 바로 호레즘 문명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정도 성이 있을 정도면, 부근에 마을도 형성되어 있었어야 맞겠고, 마을이 있을 정도면 개천도 있고, 식물도 있어야 마땅할 텐데 현재 이곳은 완전 사막이었다. 아랄해가 말라버렸기 때문에 문명도 말라버린 게 분명했다. 
 넓디 넓은 아랄해가 말라버린 건 1960년 소련이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하기 위해 댐을 쌓기 시작하면서였다고 한다. 목화 재배를 위해, 문명까지 없어질 수 있다니. 재앙이 따로 없었다. 

아랄해의 변화(https://public.wmo.int/en/resources/bulletin/future-of-aral-sea-lies-transboundary-co%E2%80%93operation)


 토성에 올라가보니 사막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일부 잡초만 수북이 자라고 있었다. 토성 아래서 내려다보니 분명 마을이었을 것 같은 주변은 사막화된 지 오래되어, 잡초와 사막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양산에 버티며 초반 사진을 열심히 찍던 엄마는 얼굴이 벌게진 주원이와 황급히 다시 택시로 돌아가며 외쳤다. 
 "너라도 저기까지 걸어갔다와."
 남겨진 나는 45도로 확실시 되는 날씨 속에 토성을 기웃기웃 거리다 다시 택시로 돌아갔다. 택시로 돌아가자 에어컨을 쐬고 있을 것으로 추측했던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잠깐 내린 사이 조금이라도 기름값을 아끼려고 했는지 에어컨을 모두 꺼놓은 채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택시로 돌아온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잘 봤어요? 여기서 좀 더 가면 또 토성(Qala)이 있어요."
 또 토성이 있다니... 토성 하나만 봤을 뿐인데, 또 토성에 간다는 말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또 다른 토성을 향해 달라던 택시는 정말 10분도 안 되어 또 다른 토성 근처로 우리를 데려다줬다. 

 "여기부터 올라가면 되요."

 에어컨의 '에'도 차마 만끽하지 못한 시점에 또 다시 사막에 내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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