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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토성(Qala)에 도착한 우리는 멀리서만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절대 택시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택시에서 멀리 있는 토성을 찍지도 않았다. 엄마는 "주원이랑 나는 택시에 있을 테니까 너 혼자 갔다 와."라고 등 떠밀었지만, 나조차 45도 더위 앞에서 굴복하고야 말았다. 
 눈치가 빠른 택시기사 아저씨는 말했다.
 "점심먹으러 가죠. 여기 근처에 아주 에어컨 잘 나오는 레스토랑 있어요."
 내가 채식만 한다고 했는데, 분명 채식을 절대 접해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택시기사 아저씨는 웬일인지 문제없다며 호기롭게 택시를 출발시켰다. 토성 근처 황량한 흙 도로를 한참 지나자,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한 도로변에 정말 뜬금없이 식당이 있었다. 아저씨는 식당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엄지를 치켜들어 식당을 칭찬했다. 아저씨 말대로 에어컨이 공기를 눅눅하게 만드는 정도로만 작동은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텅비어 있을 것 같은 식당에 그래도 우리 말고도 앉아있는 현지인이 2명은 있었다. 미지근한 콜라와 사이다가 이미 테이블마다 세팅되어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를 고려해서, 차, 빵, 라그만과 오쉬, 오이와 토마토 샐러드 그리고 계란 만두를 시켰다. 나는 엄마 핸드폰을 빌려 구글 번역기로 "아저씨, 라그만에 고기 안 들어가게 해 주세요."라고 부탁했고, 아저씨는 문제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저씨는 분명 우즈베크어로 나의 부탁을 성심성의껏 종업원에게 전달하는 듯 했다. 종업원도 아저씨의 부탁이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도 종업원도 협조해주니 너무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시골 식당에서도 소통이 잘 되니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잠시 후 나온 라그만에는 고기가 떡하니 있었다. 어쩐지 모든게 다 순조롭게 넘어가더라니. 아저씨가 종업원에게 한참 설명한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라그만에 고기조각을 피해, 밀가루 국수와 토마토만 건져먹고 있을 때 아저씨가 시킨 계란 만두(Tuxum barak)도 나왔다. 아저씨는 계란 만두를 집으며 이 음식이 호레즘의 지역음식이며 정말 맛있다고 강조했다. 주원이를 가리키며, 아이가 좋아할 거라고 제스처로 권했다. 아저씨는 계란 만두가 정말 맛있는지 계란 만두만 열심히 드셨다. 계란 만두는 속에 계란물이 들어간 채 익히는 만두였는데, 플레인 요구르트에 찍어먹었다. 처음에는 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만두 종류를 모두 요구르트에 찍어먹을까 참 이상한 조합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하고 보니 그것은 산미(신맛, 酸味)때문이었다. 우리도 만두를 간장과 식초가 섞인 양념장에 찍어먹지 않나. 신맛이 만두의 느끼함을 잡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 과정에서 나는 계란 만두가 어떻게 만들어지나 봤는데, 우즈베키스탄 유튜브들을 보면 만두피를 사서 만두를 만드는 경우는 아예 없었다. 만두는 무조건 반죽부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만두피 공장이 없는 듯했다. 만두피 없이 만두 빚는 건 얼마나 번거로운 음식인가. 우즈베키스탄에 만두피 공장이 있다면, 주부들이 덜 고생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의 계란만두, 투훔바락(https://www.centralasia-travel.com/en/countries/uzbekistan/cuisine/tukhum_barak)

 이 수상한 계란만두가 무엇인지 유튜브에 제조과정을 대충 살펴보니, 이것은 계란물에 소금을 섞어 믹스를 한 후, 만두피를 주머니처럼 만들어 만두 하나하나에 계란물을 부운 후 밀봉하여 물에 데치는 요리였다. 그러기에 계란 만두의 단순한 모양에 비해 매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였다. 나는 참 남 걱정하는 오지랖이 있는데, 이 요리를 둘러싸고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먹을 바에야, 계란을 그냥 따로 익혀서 밀전병에 싸 먹으면 똑같을 텐데, 굳이 이렇게 힘들게 만드나.

계란만두 만드는 과정: 일일이 계란물을 만두피주머니에 부운다(https://youtu.be/Upad8MJBmSo)

 아저씨는 계란만두를 열심히 드시다가 반 정도 남았을 때 우리를 배려해서 더 이상 드시지 않았다. 나머지 몫은 우리를 위해 남겨둔 것이리라. 아저씨는 내가 하도 계란 만두를 안 먹으니까 여기에는 고기가 안 들어갔다며 나에게 권했다. 그런 아저씨에게 민망한 눈웃음으로 화답하고서, 나는 샐러드와 빵이나 깨작거리고 있었는데, 채식을 안 하시는 엄마나 주원이 조차 계란만두를 먹어보고는 더 이상 먹지 않았다. 느끼하다고 먹기 싫어했다. 엄마는 평소 더 기름진 피자도 잘 드시면서, 도대체 중앙아시아에서는 비위가 왜 이리 약해지시는지... 결국 계란만두는 2개가 남고야 말았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가 다른 걸 남기는 건 별로 개의치 않으시면서도, 이 맛있는 계란만두를 도대체 어떻게 남길 수 있는지 납득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재차 우리에게 계란만두를 권했다. 엄마는 새침한 소녀처럼 얼굴이 변해서 절대 계란만두를 먹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계란만두를 자발적으로 시킨 아저씨는 좀 민망해 했다. 우리 신랑이 생각났다. 정말 곤란한 상황에서 남은 음식은 다 우리 신랑이 먹어줬는데, 주원이와 엄마 앞에서는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처지같았다. 아저씨는 수차례 권하고, 엄마는 딴청하고 있고... 비건인 나는 상황적으로 곤란해져 눈을 질끈 감고 계란만두를 입에 물었다. 채식을 하다보니 미각이 예민해져 계란만두가 너무 느끼하고 짰다. 나는 약 삼키듯이 계란만두를 몇 번 씹어 삼켰다. 계란만두 애호자인 택시기사 아저씨 때문에 이런 곤란한 상황까지 마주할 줄이야. 아저씨는 계란만두가 접시에 모두 없어지자 만족해하며 말했다.

 "계란만두 정말 맛있죠?"

 

 정말 배고팠지만 결과적으로 시킨 음식의 반도 못 먹었다. 엄마는 음식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환경을 지키시는 분이셨다. 엄마는 가방에서 위생팩을 꺼내서 라그만과 남은 빵을 싸고, 보온병을 꺼내 남은 차도 모조리 쌌다.

 계산하고 나오니, 식당 주인부부의 자녀로 보이는 아이들이 늑대 박제를 만지며 주원이와 신나게 놀고 있었다. 카운터 쪽은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더워, 아이들이 웃통을 다 까고 있었다. 주원이나 아이들이나 늑대 시체가 무섭지도 않은지, 강아지처럼 쓰다듬고 난리가 났다. 이 사막에 웬 늑대인가, 또 늑대 박제는 여기 왜 있나. 이해할 수 없는 테마의 식당이었다. 아이들은 주원이에게 늑대를 자랑하는 게 재미있는지, 모두 해맑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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