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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칼팍스탄 당일 택시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본래 또 다른 토성(Qala)을 보는 것이었다. 사막 가운데 뜬금없이 토성이 또 있었다. 아저씨는 토성의 도보 진입로에 최대한 근접하여 차를 세우고는 차에 타고 있는 우리를 쳐다보았다. 토성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마치 경주의 왕릉을 10개 넘게 본 상황에서 또 다른 왕릉을 마주했을 때의 막막함이었다. 관광객으로써 문화유산에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호기심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토성을 바라보며 여기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노련한 택시기사 아저씨는 영어 커뮤니케이션 없이도, 이미 내 표정만으로 나의 의중을 읽는 데 성공했다.
 "저기 낙타들이 있거든요. 사진이라도 찍고 가요."
 아저씨는 토성 진입로에서 차를 살짝 돌리더니, 사막으로 차를 꺾어 진입하기 시작했다. 딱딱한 모래밭을 1분이나 올라갔을까 정말 그 곳에는 대여섯 개의 유르트와 낙타 무리가 있었다. 차 소리를 기가 막히게 듣고는 한 유르트에서 이곳의 주인 부부가 나왔다. 이곳 사막에서 뭘 먹고살 수가 있는지, 놀랍게도 그곳에는 부부의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느라 그런지 삐쩍 말라있었다. 
 아저씨는 차를 세우고는 우리에게 내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시동을 끄자, 에어컨도 꺼졌다. 내리기 싫었지만 관광객으로써 예의를 갖출 차례였다. 문을 열자마자, 휘이이 모래바람이 불었다. 온도는 재보지 않았지만, 분명 45도 이상이 분명했다. 열풍이었다. 

카라칼팍스탄의 낙타무리



 "아살람 알레이쿰"
 차에서 먼저 내린 아저씨는 유르트 주인부부와 아는 사이인지, 주인아저씨와 악수와 포옹을 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주인아저씨는 우리를 쳐다보더니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듯한 눈빛을 발사했다. 아름다운 해변에서 시원한 음료나 마시며 시원한 바닷물에 튜브 끼고 첨벙첨벙해야 할 여름휴가에, 자진해서 45도 열풍이 부는 사막에 왔다니, 그것도 기저귀 갓 뗀 5살짜리 애랑 노모를 데리고...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을 내가 하고 있었다. 주인아저씨의 대여섯 개 되는 유르트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관광객이 메마를 이 시기에 택시기사 아저씨가 데려온 우리들은 얼마나 희귀하고 소중한 손님인가. 
 인터넷에서 나중에 찾아본 카라칼팍스탄 투어코스를 보면, 여행객들은 사막유르트에서 하루 이틀 머물며 유르트를 체험하고, 현지인들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낙타도 타보고, 토성도 올라가기도 하였다. 사막 유르트에서 주는 음식이래 봤자, 분명 동그란 밀가루 빵에 잼, 언제 개봉했는지 모르는 과자와 더러운 물을 가려주는 홍차, 백설탕 그리고 잘 나와봤자 오이와 토마토만 들어간 샐러드가 분명했다. 이런 사막 유르트를 즐길 사람들은 분명 모험을 좋아하는 서양인들, 젊은 나이에 사서 고생하기로 작정한 젊은이들, 그리고 극한 환경을 일부러 체험하는 유튜버들이 분명했다. 
 낙타들은 특유의 지루한 표정으로 사막 한가운데 무리지어 있었다. 새끼들 몇몇이 어미 젖을 느릿느릿 빨고 있었고, 낙타들 대부분은 찜질방에 한가로이 누워 막장드라마를 무심한 눈으로 보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처럼 사막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도 한두 마리 낙타만 고개를 돌려 볼 뿐, 놀란 기색도 하나 없었다. 주원이는 낙타의 거대한 몸집에 살짝 놀랐지만, 낙타가 워낙 주원이에게 관심이 없자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주원이가 사진 찍든 말든 움직이지 않는 낙타들은 마치 정지화면 같았다. 

서로에게 관심없는 주원이와 낙타들


 고요하던 낙타 무리 중 갈색 낙타 한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물어뜯으며 싸우기 시작했다. 지루한 표정의 낙타들도 싸우면 정말 한 성깔 했다. 몸집이 큰 낙타가 소리를 내며 물어뜯으니, 몸집이 작은 낙타가 도망가는 것으로 싸움은 끝났다.

 주인아저씨와 한참 얘기하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낙타 타고 토성에 올라갈 수 있대요. 타실래요?"
 "아니요. 토성은 너무 더워서 못 가겠어요."
 나는 단칼에 아저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가 낙타에 영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자 아저씨가 좀 더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럼, 낙타를 15분 정도만 타보는 거 어떻겠어요."
 내가 영 관심을 보이지 않자, 아저씨가 내 표정을 살폈다. 우리가 여기 온 만큼 어느 정도 돈을 써야 이 관광이 끝날 것 같았다. 나는 동물 착취하는 관광은 지양하는 비건으로써, 살짝 곤란해져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아저씨가 낙타 탈꺼냐는데?"
 택시기사 아저씨와 주인아저씨 사이에 낀 관광객으로써, 상황상 다소 곤란해져 우리는 평지만 조금 걷는다는 조건 하에 낙타를 타기로 했다. 주인아저씨 내외는 단봉낙타 한 마리를 골라오더니 낙타를 꿇어 앉히고 끼엉끼엉 안장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안장을 설치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모양인지, 택시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고 다시 택시로 데려갔다.

 "택시에서 기다렸다가, 다 되면 나가세요."

안장설치하느라 고생한 주인 내외

멀리서 주인 내외가 낙타의 안장설치로 낑낑대는게 느껴졌다. 담요에 또 담요를 올리고, 그 위에 또 다른 담요를 올리고, 철제로 된 안장을 올리고 줄로 고정하고... 15분만 탈 건데 벌써 안장을 설치하기 시작한 지 20분이나 지났다. 안장과 담요만으로 이미 낙타는 충분히 무거워할 것 같았다. 주인 내외의 노력 끝에 안장 설치가 완료된 낙타가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느릿느릿 왔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낙타에게 풀을 줘보라며, 사막의 보라색 풀을 꺾어왔지만, 낙타는 심기가 불편한지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민 풀을 풱 하고 고개를 돌려 날려버렸다. 주원이도 먹이를 줘보고 싶다고 사막의 풀을 꺾어왔지만, 역시나 낙타한테 차이고 말았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로는 낙타는 앉고 일어설때 떨어질 수 있으므로 안장을 잘 잡고 있으라고 했다. 엄마와 내가 주원이 앞뒤로 타고 안장을 잡으니, 낙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뒷발을 먼저 일으키고 그다음 앞발을 세웠다. 주인아저씨가 줄을 잡고 천천히 사막을 걸었다. 낙타가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고,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의 짧은 낙타 라이딩을 따라다니며 사진 찍어주기 시작했다. 다행히 낙타 라이딩은 금방 끝났고, 우리는 낙타에게 미안해서 볼을 쓰다듬으며 수고했다고 재차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실크로드를 묘사하는 조형물들이 행상과 낙타 무리로 되어 있던데, 사막만 가득한 이곳을 과거의 행상들이 낙타 무리를 이끌고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실크로드를 위해 수많은 짐을 싣고 고생했을 동물들과 행상들의 발자취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낙타라이딩을 끝났을 때 주원이의 양볼은 더위로 벌게졌다. 열풍은 주원이의 모든 땀을 날려버렸다. 이곳에 더 머무르다가는 피부가 10년은 더 빨리 늙을 것 같았다. 건한증막에서 벗어나 에어컨이 있는 택시로 돌아오니, 오늘은 더이상 관광을 안 해도 된다는 기쁨이 마음 속에 가득찼다.

우리를 위해 고생한 낙타와 더위로 볼이 벌게진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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