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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왔어요?"
 이번에는 청바지에 노란 티셔츠를 걸쳐 입은 현지인 남자였다. 남자는 한국사람이냐고, 자신은 한국에 가봤고, 한국에서 일했다는 방금 전 우리에게 말 걸었던 사람과 동일한 레퍼토리로 우리를 붙잡았다. 주원이와 단둘이 카페에나 가서 시원한 거나 마시고 좀 쉬려던 여정이 자꾸 발목 잡히니 곤란했다. 하지만, 한국이 좋다는데, 한국사람만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순박한 호의를 매몰차고 싹수없게 거절하는 게 맞을까 자꾸만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다. 
 이 사람도 마찬가지로 한국어는 아주 필요한 몇 마디 빼고는 배우지 않았는지 내가 조금만 길게 얘기하면 미간을 세우고 알아들으려 노력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슈흐랏이었다. 슈흐랏은 지금까지 일하느라고 결혼하지 않았는데, 한국의 답십리 공사장에서 일했다고 한다. 당시 사장님이 좋으신 분이라 자신한테 갈비를 많이 사줬다고 하는데,이 사람은 무슬림이니 사장님이 소갈비를 사준 듯했다. 한국의 용접일을 하면 월 250만 원은 벌 수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의 임금의 몇 배는 된다며, 코로나 때문에 비자발급이 멈췄는데 비자 발급이 다시 시작되면 자신은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미혼인 우즈베키스탄 남자는 처음 만나봤다. 우즈베키스탄은 결혼할 때 신부측에 지참금을 줘야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면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을 듯했다. 더구나 이 사람의 피부색은 우즈베크인보다는 검었는데, 자세히 보면 내 파키스탄 친구 누르와도 용모가 닮아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소수민족일 수도 있었다. 
 슈흐랏은 결혼을 안 했지만 자신은 아이를 사랑한다면서, 자꾸 주원이를 만졌다. 볼도 만지고, 얼굴도 만지고, 손도 만지며, 때로는 손에 입을 맞추기도 했는데, 나는 주원이의 엄마로써 정말 난감했다. 아이가 원하지도 않는 스킨십을 귀엽다고, 작다고 당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를 예뻐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거절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슈흐랏이 말했다.
 "밥 먹었어요? 우리 차타고 밥 먹으러 가요.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요. 샤슬릭, 빵, 아주 맛있어요."
 내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 당황스러워 하자, 슈흐랏이 말했다. 
 "저기 내 차 있어요. 조금만 걸으면 돼요."
 처음보는 사람과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차는 무슨 차인가. 대낮 관광지 한복판이지만, 차에 타는 순간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아니에요. 우리 곧 기차 타야 돼요. 차 탈 수 없어요."
 내 굳어진 얼굴을 보더니 샤흐릿이 말했다.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아가씨. 나 좋은 사람. 나 믿어요. 아기 배고파. 내가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요."
 낮 11시, 아침을 먹은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고, 낯선 사람에게도 얻어먹고 싶지 않은데, 샤흐랏은 끈질겼다. 
 "저희 배 안 고파요. 밥 안 먹어요. 여기 있을꺼에요."
 그러자 슈흐랏이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차라도 마시자고 자꾸만 우리를 붙잡았다. 아... 어찌해야 할까. 나는 당장에라도 헤어지고 싶었지만, 혹시 이 사람이 단순한 호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더구나 여기는 관광지 한복판 아닌가. 으슥한 곳으로만 가지 않으면 크게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슈흐랏은 차마시러 가면서 동네 할아버지며 아저씨에게 "아살람 알레이쿰!"이라고 악수를 하며 인사하고 다녔다. 동네 사람들도 슈흐랏을 잘 알고 지내는 걸로 봐서는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슈흐랏은 기념품 가게를 지나칠 때마다 자신이 사마르칸트 기념품도 사주겠다면서 자꾸만 기념품 가게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계속 치고, 주원이는 유아차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의 거부 끝에 기념품샵은 하나도 들르지 않고 지나칠 수 있었다.

 

사마르칸트 핫도그
 슈흐랏이 이끈 '차마시는' 공간은 사마르칸트의 어느 식당이었다. 널따란 홀에 나무 식탁이 20여 개 배치되어 있었고, 관광객인지 동네 주민인지 모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콜라에 비닐봉지로 싼 빵을 먹고 있었다. 메뉴는 따로 없었고, Хотдог라고 씌어있었는데, 키릴문자만 막 익힌 내가 마음을 침착하게 하고 자음 모음을 종합해서 읽어보니 그것은 핫독, 즉 핫도그였다. 분명 내가 배 안고프다고 했는데, 슈흐랏은 나에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봤다. 
 "저 배 안 고파요. 우리 아기도 배 안 고파요. 차만 마시고 갈게요."
 "아가씨. 돈 걱정하지마. 내가 사줄게요. 아가씨.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저는 고기도 안 먹어요. 배도 안 고프고요."
 "그건 걱정하지마. 여기 고기 없어요. 콜라? 티(tea)?"
 나는 슈흐랏의 집요함에 약간 저항할 힘을 잃어버렸다. 
 "그럼 빵 딱 1개만 시키는 거예요. 차는 필요 없어요."

슈흐랏이 사온 핫도그도 이런 모양이었다. 나는 사진찍지 않아, 네이버 블로그에서 발췌함.(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hanainde&logNo=221263327213)


 슈흐랏은 2개를 권했으나, 필사적으로 내가 손사래를 쳐서 핫도그 한 개만 주문하고 왔다. 슈흐랏이 잠시 후 가지고 온 핫도그라는 것은 내가 상상한 미국식 핫도그와 달랐다. 둥근 빵을 반으로 가른 후, 소시지, 당근김치, 토마토, 오이를 넣고, 엄청난 분량의 마요네즈를 뿌리고, 그 위에 감자칩을 토핑 한 구조였다. 나는 그릇에다 소시지만 빼놓고, 당근김치, 토마토, 오이와 마요네즈 범벅인 우즈베키스탄식 핫도그를 주원이에게 조금씩 먹이기 시작했다. 주원이는 마요네즈 맛이 나쁘지 않은지 핫도그를 열심히 먹어줬다. 주원이가 입옆에 마요네즈를 묻히고 먹는 게 귀엽다는 듯, 슈흐랏은 자꾸 주원이를 빤히 쳐다보며 주원이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주원이에게 물을 먹이면서 간접적으로 슈흐랏이 주원이를 만지는 것을 말렸다. 나는 속으로 '주원아, 엄마가 미안해. 얼른 핫도그만 먹고 슈흐랏과 헤어지자.' 말을 반복했다. 
 슈흐랏은 주원이가 먹는 걸 지켜보다가 목이 마른지 주원이 유아차 짐칸에 실려있는 생수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가씨, 나 물 마실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하자, 슈흐랏은 우리가 먹던 플라스틱 생수통을 들고 밖에 나가 물을 마시고 다시 돌아왔다. 그 때 막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온 현지인이 나를 보고는 매우 반가운 척 했다. 돌아보니, 슈흐랏이 우리에게 접근하기 전에 말을 건 페인트공 현지인이었다. 슈흐랏과 그 청년은 심지어 서로 아는 사이인듯 했다. 아까 청년이 자기가 밥 사겠다고 한 거를 거절했는데, 슈흐랏과 밥먹고 있는 걸 보니 청년도 약간은 황당한 눈빛이었다. 

 "둘이 친구에요? 둘이 모두 나를 도와줬네요. 우리 기념으로 같이 사진찍어요."

 나는 카메라를 들어 우리 셋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와 페인트공 청년과 슈흐랏

 

사마르칸트 병아리 사건 
 주원이는 거대한 핫도그를 절반이나 먹고는 배부르다고 했다. 
 "슈흐랏, 정말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이제 배불러요. 갈게요."
 "이제 아가씨 어디가요?"
 나는 슈흐랏과 헤어지려고 슈흐랏이 절대 따라오지 않을 최대한 먼 곳을 말했다. 
 "샤이진다 가요. 그럼 슈흐랏도 잘 가요."
 그러자 슈흐랏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알았어요."
 그러고는 우리와 또 다시 같이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헤어지자는 뜻을 못 알아챈 듯했다. 걷다 걷다 보면 슈흐랏이 제 풀에 떨어져 나가겠지.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샤이진다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시압바자르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리어카를 끄는 어느 수레장수가 지나갔다. 배도 부르겠다 낮잠시간이라 유아차에서 잠잠하던 주원이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병아리에요. 저거 봐봐요. 병아리 귀여워요."
 다시 보니 방금 지나갔던 수레장수의 리어카에는 무지개 색으로 염색한 병아리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슈흐랏은 주원이의 반응을 보더니, 수레장수를 불러 세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지마세요. 우리는 필요 없어요. 우리는 오늘 기차 탈 거예요. 병아리 필요 없어요."
 내가 했던 한국말이 너무 어려웠던 탓일까. 슈흐랏은 내가 싫다는 말을 모두 배제하고 기어코 빨간 병아리를 검은 봉지에 담아가지고 왔다. 이리 작은 생명에게 나는 어쩌다 이렇게 가혹한 운명을 주게 된 것일까. 내 앞에 놓인 병아리 앞에서 나는 순간 멍해졌다. 슈흐랏과 헤어지기도 실패하고, 배고프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딱 봐도 불량식품인 핫도그도 애한테 먹이고, 이제는 병아리라니... 그나저나 이 가엾은 병아리는 어쩌지.


 병아리는 삐약삐약댔다. 손으로 감싸니 온기가 느껴졌다. 내가 따뜻하게 손으로 앉아주니 그제야 삐약삐약 소리를 멈추었다. 나는 병아리를 손에 감싼 채, 상상해 보았다. 병아리를 함맘에 데려가서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모습, 병아리가 우즈베키스탄의 고속철도를 타며 삐약삐약대는 모습, 아이비에커나 바허한테 병아리를 인계하는 모습... 일단 그러기 전에 슈흐랏과 헤어져야 했다. 슈흐랏은 호의일지 모르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호의는 강권에 불과하다. 
 "슈흐랏, 우리는 이제 가야 해요."
 "샤이진다 안 가요?"
 "네, 안가요. 이제 엄마를 찾아서 함맘에 가야 해요."
 "알겠어요."
 슈흐랏은 이번에도 당연한듯 우리와 함께 함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병아리는 삐약삐약 대고, 돌길은 울퉁불통하고, 슈흐랏이라는 이 작자는 떨어질지 모른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고,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함맘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자, 슈흐랏이 말했다. 
 "아가씨, 우리 집 바로 근처, 조금만 걸으면 돼요. 거기 우리 엄마 살아요. 가서 차 마셔요."
 "아니에요. 저는 슈흐랏의 집에 안 갈 거예요. 함맘에 갈 거예요. 이제 기차 타야 돼요."
 나는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얼굴을 굳히고는 최대한 정중하면서도 슈흐랏이 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말했다. 슈흐랏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더 대담해졌다. 
 "아가씨, 너무 아름다워요. 나 아이 좋아해요. 나 아직 결혼 안 했어요. 40살 넘었어요. 우리 친구 해요."

 슈흐랏이 순식간에 유아차를 잡고있는 내 왼쪽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아....

 여자가 다니는 여행이 위협적이라고 느껴본 적은 인도에서였다. 대학생 시절, 유진언니랑 같이 휴학하고 인도에 갔을 때, 우리는 매일마다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했다. 캣콜링은 기본이고,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해변에서 모래밭에서 티셔츠를 입고 쉬고있어도, 왠 남자들이 다가왔다. 하물며 가장 안전하게 느껴야할 호텔에 들어가도 싸구려 호텔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호텔주인이 찝쩍댔다. 견디다 못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동네 길거리에서 파랗고 큰 플라스틱 반지를 사다 네번째 손가락에 꼈다. 그 때부터 남자가 다가오면 말했다. 우리는 유부녀들이에요.

 

 그동안 말귀를 못 알아먹은 슈흐랏 앞에서 이번에는 내가 못 알아들을 차례였다. 
 "슈흐랏, 이제 함맘에 다왔어요. 엄마가 아파요. 저 갈게요."

 슈흐랏이 내 등뒤에서 뭐라고 하며 자꾸 나를 간절히 불렀지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함맘으로 들아갔다. 함맘으로 들어가자 슈흐랏은 더이상 쫓아올 수 없었다. 함맘 안쪽 불도 안켜진 어두컴컴한 휴식공간, TV보며 늘어져있는 함맘 할머니와 손녀, 그리고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를 보자, 가슴이 그때서야 뛰었다. 아니다. 계속 가슴이 뛰었는데, 이제서야 가슴이 뛰는 걸 인지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너무 무서웠다. 소파에 누워있는 엄마가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말하자면 길어."

 내가 병아리를 쥐고 있는데도 엄마는 잔소리할 힘도 없는지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병아리를 함맘에 두고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하게 하루종일 할머니 옆에서 티브이를 보던 손녀가 병아리를 보더니 손에 쥐고 아주 예뻐했다. 손녀는 병아리를 손으로 감싸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지 밖으로 나갔다. 
 엄마에게 목욕을 잘 했냐고 물으니, 옷을 다 벗고, 따뜻한 돌 위에 있으니, 세신사가 뜨거운 물을 뿌려주면서 등에 비누칠 해주고, 때도 벗겨주었다고 한다. 단순히 그것만 했을 뿐인데, 기침할 때마다 허리 아픈 증상이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등에 세신을 하면서 전신순환하는 게 나아진 것 같다고...
 잠시 후 병아리를 안고 나갔던 손녀가 돌아왔다. 엄마의 번역기에 대고 소녀는 말했다. 
 "옆집 친구네 병아리를 데리고 갔는데, 병아리가 없어졌어요."

하맘의 손녀와 주원이


 소녀 역시 병아리에 무책임했다. 오늘은 정말 통제가 안 되는 날이었다. 나의 불책으로 죄 없는 병아리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어디를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기차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별일 다 있었던 사마르칸트의 타슈켄트거리에서 도망치듯이 택시를 타고 사마르칸트 기차역으로 떠났다.   

 

 에필로그 >

 전화번호를 교환한 페인트공에게 그 날 저녁 텔레그램 메시지가 왔다. 영어 번역기로 쓴 그의 말인 즉슨, 나에게 첫눈에 반했고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아마, 슈흐랏하고도 전화번호 교환했으면 분명 슈흐랏한테도 그런 메시지가 왔을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유아차 끌고 다니는 아줌마한테까지 왜 그렇게 찝쩍댈까. 귀국해서 여러 정황 상 그들이 나에게 찝쩍댄 이유를 연구해보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생산직으로 한국비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한국에 가고 싶어 한국 여자랑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한국여자여도 그렇지, 찝쩍될 대상이 없어서 남편도 있는 애 딸린 나에게 찝쩍대었을까.

 그건 그들이 나를 과부 혹은 이혼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슬림 문화권은 보수적이어서 여자가 혼자 여행다니는 경우는 없는데, 내가 유아차를 끌고 나다니고 있으니 분명 그들의 눈에는 과부 최소한 이혼녀로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찝쩍대상에 속하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과부인들, 이혼녀인들 그들이 찝쩍대어도 되는것일까?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으면 내가 이렇게 만만하게 느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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