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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쉬케크 버스터미널에서 카라콜 가는 버스는 큰 심야버스는 규모는 컸지만, 우리 가족의 캐리어 2개와 배낭 2개, 유아차를 보자 기사 아저씨가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기사 아저씨가 승객들의 짐 외에 실어 나르는 짐들이 이미 실려있어, 짐칸이 승객이 타기 전부터 거의 꽉찼기 때문이다.  이 캐리어 2개를 다 실으려면 추가 돈을 더 내라고 했다. 성제오빠는 체념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돈 더 내란다."라고 했다. 추가로 돈을 더 내니, 나의 캐리어는 버스 중간에 위치한 탑승계단에 실리게 되었다. 

 5살짜리 주원이가 심야버스를 잘 탈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주원이는 오히려 밤에 버스 타는게 무척 신난 모양인지 목베개를 끼고 연신 깜깜한 버스 밖을 쳐다보느라 신이 났다.  내 옆에 앉은 성제오빠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했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달리던 버스에도 새벽이 왔다. 유리창 밖을 보니, 아름다운 설산이 이어지고, 그 앞에 넓디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내가 달리는 버스에서 사진을 연신 찍으려했지만, 유리창에 먼지와 이물질이 묻어있어,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갈 곳에 비하면 여기는 아무것도 아니야." 

 잠에서 깬 성제오빠가 눈을 부비며 말했다. 

 

 

새벽에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하여 하차한 승객들

 새벽5시쯤 되자 버스가 잠깐씩 멈추기 시작했다. 버스에 탄 키르기즈 승객들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내리는 곳도 버스 정류장이 딱히 없는, 그야말로 초원 한복판에 집 한채 덜렁 있거나 아주 작은 마을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새벽 6시쯤 되었을 때 타고 있는 버스를 돌아보자, 승객 중 50%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를 찾아 내린 터였다.  안개가 잔뜩 낀 풍경을 달리고 있었는데, 버스가 슬슬 속도를 늦추더니 정차했다. 운무 속 흙 위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달랑 1채 있고, 인적도 없는 휑휑한 곳이었다. 승객들은 그런 휑휑한 곳에서 아무런 당황도 하지 않고, 익숙한 듯이 자신의 짐을 꾸려 내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버스기사 조차 우리를 한번 쓱 보더니 내렸다.

 옆에 졸고 있는 성제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사람들이 내려요."

 성제오빠는 꿈뻑 눈을 뜨더니, 잠을 언제 잤냐는 듯 침착하게 말했다. "어. 우리도 내리자."

 알고보니 그곳은 이 버스의 종점이었다. 

 휑휑하기 그지 없는 곳이었는데, 도저히 버스터미널이라고 믿기지 않는 모래 벌판 한 가운데 회색콘크리트 건물은 Автовокзал(버스터미널)이라는 글자로 스스로가 버스터미널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에는 그 시간에 내가 탔던 버스 말고는 아무런 버스의 흔적도 없었고,  승객들을 태워가려는 5대의 택시만이 있었다. 

 짐을 모두 내리자 택시기사들이 우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정차하고 있는 택시들 모두 택시라는 라벨조차 없는 동네 주민들 차 같았다. 먼지를 한데 뒤짚어 쓰고는 앞유리가 깨져있거나, 범퍼가 떨어져 나갔거나, 차문 손잡이가 작동을 안 할 것으로 의심되는 오래된 차들이었다. 

 5대 정도의 택시들은 성제오빠와 가격 협상을 하다가, 그 중 3대 는 이미 다른 승객들을 태우고 떠나버렸다. 우리에게는 택시가 2대 밖에 남지 않았다. 남은 택시는 얼마 없고, 우리의 짐은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도 않고 성제오빠는 침착하게 가격 협상을 해나갔다. 짐을 생각하면 좀 큰 택시가 있었음 좋겠는데, 연식이 20년은 되보이는 앞유리 깨진 차가 우리 택시로 당첨되었다. 

 "우리가 가는 곳이 여기서 얼마나 더 걸리나요?" 엄마가 물었다. 

 "네. 여기서부터는 아주 가까워요. 한 2시간 정도"  

 택시는 너른 초원 한 가운데 흙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날씨가 건조한지 택시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구불구불 산길이 나오더니, 진흙길이 시작되었다. 흙먼지를 뒤짚어쓴 오래된 택시는 진흙으로 점점 더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트렁크에 실린 우리 짐들 때문에 나이든 택시가 신음하는 게 느껴졌다. 

 "엄마, 저 똥 마려워요."

 주원이가 말했다. 성제오빠는 아직 목적지까지는 30분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도저히 마을이라고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산길이 구불구불 펼쳐져있었다. 차를 세워 초원 속에서 노상방뇨를 시도했으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주원이는 초원에 내려 바지를 벗기니 똥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 그럼 좀만 더 참을 수 있지?"

"네"

택시는 다시 출발했다. 주원이는 똥이 마려워서 배가 아프다고 했지만, 노상방뇨는 안 한다고 울기 시작했다. 오빠가 가는 집 목적지 부근에 이르렀는데, 굴착기 1대와 트럭 1대가 공사중인 마을 진입로를 아예 막아 버린 상황이었다. 굴착기 기사가 택시기사에게 초원을 돌아서 진입하라고 한 듯 했다. 저 쪽 초원으로 가면 10분은 더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엄마, 저 똥 마려워요." 주원이가 울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다리를 배배 꼬면서 우는데, 나는 겉으로는 침착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너무나도 조급해졌다. 성제오빠가 주원이의 급한 사정을 듣고는, 주원이와 친정엄마와 성제오빠는 차는 진입할 수 없는 공사중인 마을 진입로를 걸어 숙소로 걸어가기로 했다. 내가 택시를 타고 꾸불텅한 진흙길 속에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걸어서 도착한 주원이와 친정엄마와 성제오빠도 숙소 근처까지 걸어서 왔다. 주원이는 15분이나 걸었더니 똥이 다시 들어갔는지 똥이 없다고 했다.

 숙소는 호텔이나 호스텔이라고 써져있지 않는 평범한 집이었다. 성제오빠는 익숙한듯 우리의 짐을 택시에서 내리기 시작해는데, 정말 이 곳이 숙소가 맞는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대문에 붙여있는 tripadvisor스티커만이 이 곳이 호텔 영업을 하는 곳임을 입증하였다. 파란 철판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키가 크고 통통한 1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검정 츄리닝과 갈색 조끼를 입고, 손님 맞이가 익숙한 듯 우리의 짐을 들어 집 안 쪽으로 옮겼다. 숙소 안쪽 마당 한 쪽에는 유르트가 하나 지어져 있고, 텃밭으로 추정되는 마당에는 잡풀들이 사람 키 만큼 나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실내에는 우중충한 거실과 깔끔한 손님용 객실 2방이 있었다. 깔끔한 방이었지만, 최근 새로 페인트 치를 했는지 숙소 전체에 니스 냄새가 진동을 했다. 

 

 잠시 후 가축 농장에서 막 달려온 주인 아주머니가 거실로 들어왔다.

"승제!"

성제오빠를 보며 주인 아주머니가 환히 웃자 금니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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