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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에서 나온 우리는 후모 아레나의 외곽을 따라 아이비에커의 차를 향해 걸었다. 유아차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주원이는 소시지빵을 먹고는 기력을 되찾았는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아이비에커 삼촌,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 안경 고장 냈어요."
주원이가 자신의 이름을 2번이나 언급하자, 아이비에커가 미소 지으며 중국어로 나에게 말했다.
"엄마? 아이비에커? 은주, 얘가 지금 뭐라고 한거야?"
나는 순간 당황해서 미간을 세우고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가뜩이나 곤란한 하루를 보냈는데, 주원이까지 협조를 안 해주다니. 나는 주원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콕 찍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후~ 주원아. 하필 그 얘기를. 조용히 가자."
아이비에커가 당황한 나의 표정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얘가 뭐라고 했는데(他说了什么?)."
"별거 아니야.(没什么)"
아이비에커는 더이상 웃지 않았다. 미소가 싹 사라지고 눈이 커졌다. 질문할 때 하는 습관, 턱을 한번 앞으로 까딱하더니 말했다.
"야, 지금 나 진지해(欸!我是认真的). 얘가 뭐라고 했는데."
내가 대답하지 않고 아이비에커를 흘낏 보자 그는 걸음을 멈췄다. 집요한 아이비에커, 그가 알아들은 한국어 단어, 엄마와 아이비에커 사이에 무슨 동사를 넣어봤길래 이렇게 집요할까. 아이비에커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말하라니까. 얘가 뭐라고 했냐고. 진짜로(你说,他刚才说了什么,真的!)"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기에 아이비에커는 이렇게 순식간에 집요해지는 걸까.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을 ~ 해요." 문장 속 그가 넣어본 동사는 왠지 뻔해 보였다.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을 좋아해요.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을 보고 싶어 했어요.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을 기다렸어요.

 

 


아이비에커는 참 '진지하다'라는 말을 잘했다. 15년 전 나는 귀국하기 전, 중국 소설이나 시집을 사러 서안외대 근처 서점에 갔다. 그 날 아이비에커가 굳이 따라오겠다고 했다. 서점에서 이것저것 사고 집에 가는 길에 육교를 지나게 되었다. 아이비에커와 나는 육교 아래 8차선 도로 쌩쌩 지나가는 차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너 귀국하고 나면 우리는 언제 다시 만나?(你回国后,咱俩什么时候再见?)"
나는 아이비에커를 바라보았다. 내 뇌리 속에는 한마디만 스쳤다. 우리 사이엔 미래가 없어.(我们之间没有什么未来)
 입밖으로 내뱉기에는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나는 살짝 웃고는 육교 밑 쌩쌩 지나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주 수요일?(下个星期三?)"
"너 다음주 월요일에 귀국하는 거 아니야?"
내가 아이비에커를 보며 웃으니까 아이비에커가 표정이 굳어지며 화를 냈다. 
"야, 나는 진지하단 말이야!!(欸,我是认真的!!)"

나는 진지하단 말이야!! 30대의 그는 20대의 그가 읊었던 동일한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비에커와의 마지막날이었다. 아름다운 이별은 이미 물 건너가고, 오늘 하루는 난처함과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30대의 나는 20대의 나와 달리 더 이상 얼버무리지 않기로 했다. 
 "아이비에커. 주원이가 방금 내가 니가 준 안경을 고장 내트렸다고 말했어. 사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걸어왔거든. 길을 헤매다가 안경을 벗다 꼈다 하다 네가 준 선글라스 한쪽 고무가 빠졌어. 미안"
 아이비에커의 눈이 더 커져서 눈알이 빠져나올 것 같았다. 
 "굴나라호텔부터 여기까지? 도대체 왜!(从Gulnara到这儿?到底为什么!)"
 황당해 하는 아이비에커 앞에서 나는 합리적으로 그를 납득시키고 싶었다. 
 "사실 내가 우즈베키스탄 화폐를 다 썼지 뭐야. 미화를 환전하려고 보니 오늘 은행이 다 닫아서, 환전하려고 힐튼호텔까지 걸어서 환전 한 다음에 여기까지 걸어왔지."


 아이비에커의 목소리가 저음으로 낮게 깔렸다. 아주 익숙한 이 목소리는 아이비에커가 화가 났을 때의 목소리였다. 
 "나는 주차장부터 여기까지 걸어올 때도 더워서 혼났는데, 너 굴나라에서 여기까지 걸어온다는게 말이 돼? 니 아들은 어쩌고. 니 아들은 무슨 죄니? 너 때문에 땡볕에서 몇 시간을 보낸 거잖아."
 "음? 아이비에커. 타슈켄트가 생각보다 가로수 나무가 많아. 별로 안 더웠는데? 그리고 나는 걷는게 취미야. 한국에서도 만보씩 걸어."
 아이비에커는 이제 대놓고 화를 냈다.
 "너 타슈켄트에 아는 지인 두고 어디다 써먹니? 니가 전화 한 통 했으면 내가 달려와서 돈을 줬을 거 아냐."
 "나는 너한테 폐끼치고 싶지 않아. 너한테 돈 받고 싶지도 않고."
 "누가 준대? 내가 환전해주면 될꺼아냐. 너 몰랐니?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바로 자금관리야. 중국돈, 미국돈, 우즈베키스탄 돈 다 나한테 있다고."
 아이비에커의 화가 말을 하면 할 수록 커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 아이비에커를 보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미안해."
 나의 사과에도 아이비에커는 멈추지 않았다.
 "니가 만약 나의 부인, 나의 엄마, 나의 누나였으면 나 더 질책했을 거야.(如果你是我的妻子,妈妈,姐姐,我会更骂你的)"
 하... 나는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이성이 더 이상 통제가 안 되었고, 표정이 굳었다. 네가 뭐라고 나를 혼내? 나를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우리 남편도 나를 혼내본 적이 없어. 직장 상사도, 고객도, 부모도 나한테 이렇게 무례한 적이 없었어. 너는 지난 3일간 명절 쇠느라고 연락도 없었잖아. 네가 뭐 하고 있는 줄 알고 내가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니? 더구나 넌 결혼했잖아. 나도 결혼했고. 거리를 두는 게 당연한 거 아냐? 그리고 한국에서는 대부분 폐를 안 끼치고 스스로 해결하는 게 미덕이야. 내가 연락 안 한 게 바로 너를 배려한 거야.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나한테 큰소리야! 어제 니 선물 사느라고 돈 써서 남은 우즈베키스탄 현금이 별로 없었다 왜? 나의 배려를 코딱지 만큼도 이해 못하는 꼰대야!  
 수많은 말들이 순식간에 나를 스쳐지나갔다. 아이비에커의 화가 나한테까지 전염되었다. 당장 유아차를 돌려 아이비에커를 등지고 반대로 갈까? 마지막날 파국을 한번 찍어봐? 하지만 그의 마지막 대사에서 오히려 싸움의 에너지가 없어졌다. 그가 열거한 대상들은 모두 여자였다. 그의 부인, 엄마, 누나는 그가 질책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가 혼낼 수 있는 대상으로 분류되다니... 상식이 좀 통해야 말로 설득하지, 이건 뭐 조선시대 선비와 여성참정권을 토론하는 격이었다. 아, 맞다. 애초부터 내 잘못이었지. 아이비에커가 인스타그램 쓰는 줄도 모르고 인스타그램에 키르기스스탄 도착했다고 비행기 사진 올린 것도, 우즈베키스탄 과일 찍어서 올린 것도, 내가 우즈베키스탄 온 것도. 누가 시키기라도 했나. 제 발로 이 곳에 온 건 나이니 알고 보면 다 내 탓이었다.
 눈이 벌게진 나는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 얘랑 마지막이야. 다시 볼 것도 아니고 좋게 끝내야 돼. 하지만 더 이상 아이비에커랑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 점심 사준다고 할 텐데 그냥 호텔로 간다고 할까. 나는 말을 잃었다. 유아차를 밀고 앞만 보고 걷기 시작했다. 그 때 후모 아레나 인도에 있던 턱에 유아차가 걸리면서 유아차 속 주원이가 손에 들고 있던 소시지를 놓쳤다.

"하... 주원아." 라면서 땅에 놓친 소시지를 집어들었다. 유아차 아래 짐칸에 소시지를 휴지로 감싸 넣는데, 그 옆에 어제 아이비에커 주려고 산 선물이 보였다. 아이비에커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니가 잘못 한거잖아. 왜 니 아들을 탓해."

 

하늘에 감사했다. 내가 그를 선택하지 않은 과거의 결정은 모두 옳은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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