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나는 OTT에서 드라마를 볼 때 이상한 습관이 있다. 그건 바로 마지막 편을 먼저 보는 것이다.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결국 이어지는군, 권선징악의 논리로 마침내 나쁜 사람이 응징을 받는 군, 이들은 헤어지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는군... 결말을 알고 나면 나는 전지전능한 입장에서 다시 첫회로 돌아가, 인물들이 마음 졸이고 사건사고를 겪으며 결말에 도달하는 과정을 마음 편하게 관조한다. 지금이야 OTT의 발달로 마우스 드래그 한 번이면 결말 부분을 1초 만에 도달할 수 있지만, 내가 대학생 때는 모든 걸 DVD로 봐야 했으므로 리모컨으로 결말까지 도달하기가 매우 오래 걸렸다. 그래서 그때는 아무리 영상이 길어도 6배속으로 보면서 결말에 이르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보았다. 이런 나는 결말을 미리 볼 수 없는 영화관이 불편하다. 어찌 될지 모르는 서사에 감정이입해서, 마음 졸이는 게 싫다. 결말을 미리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내 현재형 인생은 영화관에서 보고 있는 영화와 비슷하다. 내가 주인공이기에 마음 졸일 수밖에 없고, 결말을 당겨볼 수 없기 때문에 긴 서사와 각종 사건사고를 견뎌야 하고, 큰 맥락 상 내 인생에 왜 이 사건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지전능한 시점에서 작가가 되어 내 인생을 계획하고,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길 간절히 바라지만, 나는 언제나 인생이 어찌 흘러갈까 마음 졸이는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갑자기 찾아온 아이비에커와의 썸도, 난징에서 아이비에커가 한 발언도, 20일 전 타슈켄트에서 재회하게 된 그도, 지금 이 순간 내 여행의 진을 다 빼놓은 꼰대 아이비에커의 무례함도, 전지전능한 입장에서는 어떠한 결말에 도달하기 위함이겠지만, 신이 아닌 이상 이런 어이가 없는 상황이 흘러갈 때까지 주인공인 나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숙소에 돌아오니 엄마가 아직 미술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방의 열쇠는 엄마가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꼼짝 없이 숙소 앞마당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숙소 근처에는 초르수 바자르만 있을 뿐,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도 하나 없었다. 숙소는 조용했다. 숙소 마당에 있는 건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타지크 소년 자파뿐이었다. 자파는 여전히 할머니의 폰을 붙잡고, 우주에서 총 쏘는 2D게임만 파고 있었다. 아이비에커는 나에게 화를 나서 나를 너덜거리게 했고, 나는 그놈의 아름다운 이별이 뭐길래 아이비에커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숙소에 오니, 이제야 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얘기를 주원이한테 하랴, 자파한테 하랴... 화가 쌓이고 쌓여 분출되기 시작했는지 나는 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혼잣말을 시작했다. 
 "걔는 왜 나한테 화내고 난리야. 미친 꼰대."
 그러자 자파 옆에서 게임을 구경하던 주원이가 말했다.
 "엄마, 누가 엄마한테 화냈어요?"
 "아이비에커가 나한테 화냈잖아."
 "아이비에커삼촌이 엄마한테 화냈어요? 왜 화냈어요?"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이 준 선글라스를 망가뜨려서."
 "엄마가 선글라스 망가뜨려서 삼촌이 화냈어요?"
 내 말을 반복하던 주원이는 금방 흥미를 잃고는 다시 게임하는 자파 옆에 갔다. 애한테 할 얘기가 있고, 안 할 얘기가 있지. 나는 다시 이성을 통제하고는 입을 닫고, 아까 푸드코드에서 싸온 중국 볶음면을 주원이와 나누어 먹었다. 아까는 위장이 굳어서 하나도 안 넘어가더구먼, 숙소에 오니 그렇게 맛있었다. 
 남편이 생각났다. 우리 남편은 사귈 때부터, 특별히 웃기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참신한 이벤트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지도 않았다. 남편의 행동은 모두 예측가능한 것이었다. 술마시면 술 마셨다고 하지,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다. 인생의 신조가 거짓 없는 참만 선택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심지어 프러포즈하는 날, 그가 내민 3000천 원짜리, 펼치면 A4용지에 준할 만큼 큰 빨간 카드에는 삐뚤빼뚤 특유의 악필로 딱 한 문장 쓰여있었다. "은주야. 결혼해 줘." 구구절절 낭만적인 말도 할 줄 모르는 그는 결혼해서도 나에게 일절 간섭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을 응원하지도 않았고, 그저 옆에서 관조할 뿐, 방해하지 않았다. 오랜 자취생활로 빨래부터 청소까지, 자신의 본분이라 생각하는 일들을 해냈고, 육아도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는지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취미인 드럼도 접고, 자신에게 남는 여유시간을 아이에게 모조리 할당했다. 낭만적이지도, 웃기지도 않은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 공대생은 그렇게 최고의 남편이 되었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 식욕이 돌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했다. 중국 볶음면이 맛있다고 느껴진 순간, 나는 아이비에커 차에서 내려, 이 숙소에 도착하자 숙소가 주는 편안함이 나의 위장을 다시 활동하게 해 주었음을 알게 되었다. 별다른 장식도 없는 구식 호스텔, 나를 나답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이 낡은 숙소가 바로 나에게 적합한 옷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적합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젊은 20대의 나는 낭만적이고, 웃기고, 예측이 안 되는 아이비에커에게 얼마나 설렜던가. 말끝마다 유머에, 갑자기 사라져서는 장미꽃을 사와 건네고, 또 내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한다 하면 질투하고, 화내고, 또 내 기숙사방을 바라보며 노래도 부르고, 구구절절 마음 아프게 하는 연애편지도 써줬다. 그와의 만남은 늘 예측불가능했고, 국적과 종교가 달라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서사에 도취되어 느끼는 안타까움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비에커의 행동에 불안해지는 것을 설렘이라 해석했다. 이제 애 엄마가 된 나는 20대 나의 직관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설렜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가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그가 나에게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이별을 선택했다. 반면, 일주일에 1번 데이트해도, 떡볶이 먹고 영화 보는 뻔하디 뻔한 데이트를 한 남자친구는 당장에 재미는 없었지만 왠지 결혼하면 잘 살 것 같은 강렬한 직감이 있었다. 나의 위장을 다시 활성화시킨 숙소, 나를 나답게 해주는 남편, 그게 바로 나의 선택이며, 나에게 적합한 것이었다. 
 이런 사색에도 불구하고, 나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그 때 슬금슬금 네덜란드에서 온 50대 아저씨들이 계단을 통해 2층 숙소에서 내려와 마당에 자리 잡았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