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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제오빠가 우리를 데려간 숙소는 둥간족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숙소였다. 둥간족은 무슬림 박해를 피해 19세기경 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회족을 의미한다. 집안을 들어서니 확실히 나무를 이용한 중국식 건축양식을 따랐고, 목조 자체의 무늬도 중국풍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둥간족 할아버지가 가꾼 텃밭이었다. 그동안 키르기즈스탄에서 봐온 텃밭은 잡초가 무성하고 손길이 덜 간 느낌이었다. 언뜻 보면 텃밭을 할 의지가 있는것인지, 방치해둔 것인지 헷갈리는 텃밭이 많았다. 그런데 둥간족 할아버지의 텃밭은 시멘트로 경계가 깔끔하게 져있고, 잡초 하나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한국식 텃밭 그 자체였다. 이것은 키르기즈스탄에서 그동안 봐온 모호한 텃밭과 차원이 달랐다. 이 분들이 사용하시는 둥간어가 중국어에서 기인한 만큼, 북경어가 조금은 통할 줄 알았더니 정말 하나도 소통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이 분들이 둥간어를 서로 사용할 때면 언뜻 들으면 중국어 느낌이 나는데 정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신기했다. 중국어를 자꾸 사용하는 나에게 성제오빠는 멀찍이 서서 웃으며 말했다.

  "북경어 안 통한다."

 

 우리는 짐을 풀고 성제오빠가 인도하는데로 카라콜 메인 바자르 근처의 시장에 아슬란푸를 먹으러 갔다. 시장 하나 없는 산골인 지르갈란에서 며칠을 머물고 나니,  제법 남대문시장의 축소판 같은 시장이 있는 카라콜에서는 숨통이 트였다. 성제오빠에 의하면 아슬란푸는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다고 했다.(추후 알게 되었지만 아쉴란푸의 양념에도 이미 고기가 들어간다고 함). 카라콜에는 둔간족 문화가 많은 모양인지 시장 한 가운데 아쉴란푸 거리까지 있었다. 

아쉴란푸 맛집
아쉴란푸

아쉴란푸는 내가 중국 서안에서 먹었던 그 량피 자체였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서안에서 먹었던 량피는 국물이 거의 없는 비빔면에 가까웠다면 여기서는 고추기름과 간장 조합의 국물을 국수에 따라주는 형태였다. 한 그릇에 우리 돈으로 500원도 안 되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 모두 아쉴란푸 자체를 끼니로 하기 보다는, 아쉴란 푸와 함께 파는 튀긴빵 등을 곁들여 떡볶이집에서 분식을 먹듯이 한끼 가볍게 떼우는 것 같았다. 그동안 중앙아시아에서 느끼함과 달콤함, 짠맛만 느껴왔던 우리로써는 신맛이 나는 아쉴란푸가 반가웠다. 김치같은 짜고 신맛이 났다. 

 

 아쉴란푸를 다 먹고 성제오빠는 온라인 스터디 일정으로 숙소로 돌아가고, 우리는 카라콜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전쟁 폭격 맞은 것 같은 비쉬케크의 울퉁불퉁 인도에 비하면 카라콜은 그야말로 최고의 인도를 제공하고 있었다. 시멘트로 쫙 깨끗하게 깔아놓은 인도에, 규칙적으로 심어져있는 가로수에, 소련풍의 4~5층 짜리 국민주택같은 아파트에, 구름 한점 없는 파란하늘과 깨끗하고 맑은 공기에... 나는 카라콜에 바로 반하고야 말았다. 유아차를 끌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평평하고 깔끔한 인도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것 같다. 만약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있고 키르기즈스탄에 살아야 한다면, 카라콜이야 말로 적격인 도시 같았다. 추후 알마티를 가고 나서 카라콜에 대한 찬사는 쏙 들어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지르갈란과 비쉬켁에 지쳤던 나로써는 카라콜은 그야말로 훈남 같았다. 카라콜, 사랑은 변하는 거야.

정갈한 카라콜의 평평한 인도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다보니 고려인 반찬가게가 떡하니 있었다. 이곳에서도 신맛을 내는 반찬들이 많이 팔았다. 한국 느낌의 반찬들은 아니었지만, 대두 베이스의 푸주나 버섯, 당근, 배추 등을 고루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채식주의자여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축산부산물로 여겨질 천엽 등을 이용한 샐러드도 있었다. 고려인 할머니는 짧은 고려어로 우리에게 말했다. 

 "한국인이요? 나 고려사람이요. 나 고려말 다 잊었소. 우리 아버지가 한국전쟁때 러시아로 갔소."

 북청군 출신 할아버지의 딸인 우리 엄마도 대뜸 반가워서, 자신도 현재 북한으로 분류되는 영토의 피가 흐른다며 웃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최대한 고려말로 말해주려고 했으나, 가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미간을 살짝 찌부리며 러시아어로 그게 뭐였더라 하는 식의 혼잣말을 하는 듯 했다. 더듬더듬 알아들은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로 가서 러시아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그곳에서 러시아인과 결혼을 하고, 자녀도 두었는데, 어쩌다보니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이 반찬가게를 하고 있다고 했다. 반찬이 맛있다고 했더니, 반찬 대부분은 아들이 만들고, 자신은 판매만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당근김치와 푸주당근볶음을 샀는데, 할머니께서 이것저것 자꾸 더 맛보여주고 싶어하셨다. 중앙아시아에서 할머니를 만나니 너무 반갑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고려인 할머니의 반찬가게

 우리는 시장에서 나와 둔간족 모스크를 잠깐 방문하였다. 기와를 연상시키는 목조건물에 알록달록 체크무늬로 페인트를 칠해놓은게 어찌보면 동화속 과자집 같기도 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디자인이었는데, 그렇다고 중국풍이라고 보기에는 목조건물이 너무 알록달록했다. 전체적인 색감이다 건축양식이 우리가 묵고 있는 둔간족 숙소 바로 그것이었다.  둔간족 모스크 한가운데 여러 색의 장미가 무성하게 심어져 둔간족 모스크의 차분한 분위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알록달록 하기로는 역시나 카라콜 시내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초록빛과 하늘빛으로 색칠한 지붕이 역시 알록달록했다. 러시아정교회 역시 나무건축이 돋보였다. 화재의 위험따위는 걱정도 말라는듯이 고즈넉했다. 둔간족 모스크와 러시아 정교회의 건축 양식은 딱 그거였다. 건축모형을 주고 초등학생들에게 물감으로 칠하라고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색감, 즉 작품을 망칠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고, 색에 대한 어떠한 편견과 경계가 없는 상태에서 내가 좋아하는 물감으로 칠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색 그 자체였다. 종교의 권위를 잔뜩 강조한 다른 종교건축에 비해, 카라콜에서 본 러시아 정교회와 둔간 모스크 모두 친숙하고 부드럽고 생동감 넘쳤다. 종교건축 마저 내 마음에 쏙 드는 카라콜이었다. 

알록달록 귀여운 둔간모스크
알록달록 귀여운 러시아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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