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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르수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정말 초르수 시장 한복판이었다. 심야버스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우리는 매우 굶주려 있었다. 지난밤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 매점에서 허접한 빵만 2개 샀는데, 그마저도 다 먹지 못했다. 더 이상 중앙아시아의 동그란 빵은 먹기 싫었다. 유아차에 백팩에 주원이에 몸은 무거웠지만, 숙소 가기 전 초르수 시장에서 체리와 천도복숭아를 샀다. 우리는 언어가 안 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손가락으로 1킬로만큼 달라고 했다. 히잡을 두른 상인은 비밀봉지에 과일을 담고 전자저울로 계량해서 주었는데, 우리네 시장처럼 덤으로 하나 더 얹어주는 법이 없었다. 조금 무게를 초과했기로서니 1킬로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니 체리를 3개 빼고, 다시 1개를 담아서 1킬로를 맞춰서 주었다. 마치 무게를 정확하게 지키지 않으면 어디 잡혀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철두철미했다. 타슈켄트 와서 푸근한 아주머니들이 과일을 막 얹어줄 것으로 상상했지만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상점에서는 정말 무게를 철저히 지켜서 팔았다. 추후에 수박이나 멜론을 사도, 우리나라처럼 대자 1개에 2만 원이요. 하고 후려치는 법이 없었다. 모든 수박과 멜론은 전자저울에 올려서 가장 작은 화폐단위까지 꼭 맞춰서 내야 했다.
복잡한 초르수 시장을 벗어나 MapsMe를 따라 흙벽이 높게 쳐진 주택가를 벗어나 드디어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굴나라 게스트 하우스가 나타났다. 엄마는 굴나라 게스트하우스가 가장 리뷰건수가 많고, 여행자들의 평가를 높게 받았다고 한다. 부킹닷컴은 서양 여행객들이 많이 쓰는 바, 아마 평점이 높았다면 주인장도 영어는 할 줄 알리라. 현지 언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영어를 쓸 줄 아는 주인장은 정말 중요했다.
우리가 유아차를 밀고 숙소로 들어서자, 몸집이 크고 상냥한 미소를 지닌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침대 3개짜리 방을 예약했는데, 방은 생각보다 좀 작고, 화장실이 바깥에 따로 있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숙소였다. 숙소에 도착하던 그 시점에는 나는 방이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마음속에 살짝 불만이 있었는데, 이 중앙아시아 여행이 끝난 지금 돌이켜보건대, 우리가 묵었던 굴나라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만큼 센스 있는 호스트도 없었고, 이렇게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숙소도 없었다.
굴나라 게스트하우스 아저씨는 영어를 너무 잘 했다. 그동안 말 안 통하는 곳에서 헤매다가 영어를 잘하는 호스트를 만나니 내 영혼이 크게 위로받았다. 이제는 성제오빠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셀프 해결이 가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가 당장 필요한 우즈베크 돈과 유심카드를 문의하자, 주인아저씨는 환전도 해주시고, 유심카드도 렌트해주셨다. 환전과 유심카드가 별거 아닌 도움 같지만, 우리가 막 건너온 키르기스스탄에 비하면 환전과 유심카드 발급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비교적 쉬운 건 아니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신사 사무실처럼 도심 아무데나 O!나 Beeline처럼 유심 발급을 해주는 곳이 널렸고, 사무소에서는 영어도 잘 통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무조건 우즈벡텔레콤 본사나 직영사무소에서 여권을 내고 유심을 발급받아야 한다. 환전도 마찬가지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환전소가 도시 한복판 길거리에 널려있었다. 은행에서도 환전을 해주지만, 슈퍼나 구멍가게에서도 사설 환전소를 차려 아무때나 환전할 수 있었다. 목마를때 편의점 가서 물을 구입하는 것만큼이나 접근성이 좋았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은행이 아니면 환전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은행은 정규 휴일에는 모두 닫기 때문에, 여행객으로서 방심하고 있다가는 환전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그런데 이 번거로운 두 작업을 굴나라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가 웃으면서 아주 센스 있게 순식간에 처리해주신 것이다. 아저씨는 손님들을 위해서 미리 유심을 5개 발급해놓았다고 한다. 4개는 다 빌려준 상태이고 1개만 있어 엄마 핸드폰에 유심을 양보했다.
그리고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밝혔더니, 채식주의자 손님도 많이 받아봤는지 주방을 담당하는 자기 어머니와 상의해보겠다고 해줬다. 또한 우리가 직접 밥 해먹을 수 있도록 조리시설도 개방해주었다.
방은 또 어떠한가. 정말 작지만, 침구도 모두 깨끗하고, 비록 우즈베키스탄 채널밖에 안 나오지만 TV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심지어 작은 개별 냉장고도 있었다. 좁아도 정말 센스가 넘치는 숙소였다. 성제오빠도 없고, 언어도 안 통하고, 정말 살인적으로 더운 우즈베키스탄에서 굴나라 게스트하우스는 그야말로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짐을 놓고 다시 초르수로 가서 당근 등 채소를 더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심신이 지친 엄마와 주원이를 위해서, 나는 냄비와 그릇을 빌려 미역국과 밥을 해서 가족들을 먹였다. 이곳에서 2박3일간 있으면서 우즈베크에 적응하다가 본격적으로 우즈베키스탄 여행 루트를 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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