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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에 앉으니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얘네 와이프가 타는 자리겠지. 15년 전이라고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얘가 친구로 느껴지진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는 듯했지만, 얘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든 것이 질투 났다.
"너희 어디 갈 예정이었어?"
"어, 오늘은 현대 미술관에 갔다가 그냥 숙소에서 쉬려고 했지."
"그럼, 내가 타슈켄트 관광을 시켜줄게."
돈이 없어 아껴쓰던 젊은 아이비에커와 능숙하게 차를 모는 아저씨 아이비에커,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아이비에커를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스타일은 그대로였고, 살만 쪘다. 참으로 예쁜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그대로였다. 예전보다 잘 웃지 않는 것을 보니 일에 찌든 직장인 모습 같았다.
혹시 회사일로 바쁜데 나때문에 회사 일에 지장이 생긴 건 아닌지 괜히 미안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너무 반가웠지만 어색했고, 표면으로는 편한 척했지만, 왠지 모르게 너무 불편했다.
아이비에커는 어디론가 차 블루투스로 전화를 걸었다.
"바허. 아살람 알레쿰, 여기 옆에 타고 있는 사람 누구게. Takito가 왔어."
"은주, 정말 오랜만이야. 하하하"
Takito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바허와 아이비에커가 나를 부르던 별명 같은거였다. 아직 그 별명을 기억하다니.
"은주야. 너 바허한테 인사해보지?"
"바허, 흐흐흐... 안녕... 흐흐흐"
바허와 아이비에커 모두 나를 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난 몇개월 동안, 오늘같은 날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수줍고 당황하고 어쩔줄 몰라서 자꾸만 곤란한 웃음이 나왔다.
"바허는 지금 일하고 있어서 못 오고, 이따 일 끝나고 만날 수 있을꺼야. 일단 내가 타슈켄트 여기 저기 보여줄께."
바허와의 짧은 통화가 끝나고 아이비에커가 말했다.
아이비에커는 능숙하게 차를 몰아 Minor Mosque로 향했다. 새로 지은 듯 반듯하고 새하얀 모스크가 밝게 빛났다. 사실 모스크는 남자만 들어갈 수 있고, 모스크라는 게 들어가면 메카를 가리키는 방향만 있고 나머지는 절할 수 있는 넓은 공간만 있어 아무리 멋있는 모스크라 해도 여자 관광객 입장에서는 볼 만한 게 그다지 없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모스크로 향하는데 완전 땡볕이었다. 아이비에커는 살도 찐 상태라 더위에 유독 취약했다. 더워서 어쩔 줄 몰라 미간을 찌푸린 채 앞으로 나아갔다. 나랑 엄마랑 주원이는 아이비에커 뒤를 졸졸 쫓아갔다.
아이비에커는 가이드처럼 모스크를 둘러보면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기부금함도 보여주고, 기도하기 전 몸을 씻는 세면장도 보여주고, 메카나 사람들이 기도하는 카펫이 잔뜩 깔린 광장도 보여주었다.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중국어로 설명하면, 나는 간단히 요약해서 엄마에게 설명해주었다.
"들어가보고 싶어?"
"여기는 여자는 못 들어가잖아."
"어. 모스크는 남자만 들어갈 수 있어. 너의 아들이 원하면 내가 저기까지 들어가서 사진 찍어줄게."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 아저씨가 무서워서 주원이는 온몸으로 모스크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나는 주원이가 아이비에커를 너무 무서워하고 다가오지 않으려 해서 살짝 당황했다. 도착한 지 5분도 안 되었는데 모스크에서는 더는 할 것이 없었다.
"내가 사진 찍어줄게."
모스크에서 관광객처럼 전형적인 기념사진을 찍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란히 서서 찍었다. 아이비에커는 우리를 찍어주고 나더니 엄마에게 자신과 나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아이비에커와 나란히 서니 팔이 살짝 맞닿았다. 아이비에커는 팔에 털이 정말 많았다. 아이비에커의 팔의 털이 살짝 느껴졌다.
15년 전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우리는 둘이 사진을 찍었다.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서 관람할 때는 서로 떨어져서 보다 나오니, 아이비에커는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카메라를 주면서 우리 둘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 찍을 때 아이비에커의 팔이 나의 어깨에 올라갔다. 15년 후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는다. 인연은 끝났을 터인데,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그와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쑥스러워서 웃었고, 그는 내심 진지했다.
15년 만에 만나서 모스크 관광을 하고, 거기서 아이비에커는 모스크 설명을 하고... 뭔가 정말 이상하고 어색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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