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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에커는 짧은 시간 안에 타슈켄트의 주요 장소를 모두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한 듯했다. 우리가 모스크를 다 보고 나자, 바로 그다음 장소로 향했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그에 비해, 나는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엄마는 별생각 없이 더운 날씨에 아이비에커 차에 에어컨이 나와서 편해 보이는 듯했고, 주원이는 차 타는 것에 신나 했다. 
 아이비에커가 다음으로 이끈 곳은 알리셔 나보이 극장(Alisher Nava'i Theater)이었다. 연노란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타슈켄트의 찌는 날씨에 알리셔 나보이 극장으로 향하는 길은 땡볕이었다. 그 앞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분수가 물을 뿜어 더위를 그나마 식히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비에커는 우리가 생각이 있으면 예매해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주원이를 데리고는 긴 공연은 못 볼 것 같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엄마만 발레를 보여드리려고, ITicket.uz에서 무슨 공연을 하는지 찾아보았지만, 여름 시즌이라 배우들이 모두 휴가를 간 건지 우리가 있는 동안 공연을 하지 않았다. 예술의 전당처럼 공연이 매일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알리샤 나보이 극장


 아이비에커가 우리를 데리고 다니는 관광지들은 온통 주제가 건물이었다. 내가 만약 외국에서 친구가 서울에 온다고 하면 공연 볼 것도 아닌데,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극장에 데려갈까? 아이비에커가 우리를 여기 데리고 온 거보면 정말 타슈켄트에서는 건물들 외에는 크게 관광포인트가 없는가 보다 생각했다. 이곳에 데리고 왔으면 나도 관광객답게 건물이 멋있다거나 사진을 찍거나 오페라에 관심을 가진다거나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 종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멍했다. 
 주원이는 온통 알리셔 나보이 극장 앞 분수에 마음을 뺏겼다. 잠시 분수를 구경했을 뿐인데, 주원이의 볼은 불그스레해지고, 모자 안 머리는 땀으로 축축해졌다. 엄마도 괜찮은 척은 했지만 36도 땡볕에서 서있으니 금방 녹초가 되었다. 그런데 제일 힘든건 살찐 아이비에커였다. 이제 아이비에커는 15년 전 청년 아이비에커가 아니었다. 배가 나온 전형적인 중앙아시아 아저씨가 된 그는 조금만 더워도 정신을 못 차려했다. 주원이가 분수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아이비에커가 "이제 다 놀았으면 차 타러 갈까?"하고 재촉했다. 분수에서 논 지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결국, 알리셔 나보이 극장 관광도 10분 안에 끝났다.

알리셔 나보이 극장 앞 분수

 

 
 10분 주차했을 뿐인데, 차를 빼려니 주차요금을 받았다. 아이비에커는 조수석 주머니를 열더니 노란 고무줄로 묶은 지폐 뭉치를 꺼내 주차관리요원에게 주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화폐 뭉치를 들고 다닌다고 하던데, 정말이었다. 중앙아시아 오기 전 세계테마기행 우즈베키스탄을 본 적이 있었는데, 2008년 찍은 그 편에서 고려인 박루슬란 감독이 호텔비를 지불하려고 검은 봉지에 지폐 뭉치를 가지고 다니다 내는 장면이 있었다. 세계테마기행을 찍을 2008년 당시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큰 화폐단위가 1000 숨,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천 원이었기 때문에, 한국돈으로 숙박료 4만 5천 원 정도를 내려면 지폐를 45장을 냈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여러 차례의 화폐 개혁으로 고액권이 생긴 모양인데, 아이비에커의 고무줄 화폐 뭉텅이를 보니 아직까지도 우즈베크 화폐는 문제가 좀 있어 보였다. 

  나무위키에서 찾아본 바에 따르면 2013년 7월 1일에 5000 숨이 추가되었고, 2017년 9월 1만 숨 지폐와 5만 숨 고액권 지폐를,  2019년 2월에는 추가로 10만 숨 지폐를, 2021년 6월  2,000숨, 20,000숨 단위 지폐를 새로 도입하여서 그나마 고액권이 존재하지만, 2022년 현재에도 지폐의 최저 거래단위는 1,000 숨이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지폐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즉, 우리나라 돈으로 130원 정도가 동전이 아닌 화폐로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여전히 돈뭉치를 가지고 다니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 같았다. 

세계테마기행 캡처
세계테마기행 캡처

 

세계테마기행 캡처

  사실 나는 막 어제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0이 수두룩한 화폐 속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채소 과일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멜론을 사는데 만 숨을 달라고 하니, 왠지 자꾸만 비싸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화폐단위로는 만원은 고액권이라 만단위가 붙으면 왠지 다 비싸게 느껴졌다. 만 숨이래봤자 어른 얼굴만한 메론이 한국돈 1300원 밖에 안 하는데도 수많은 0 속에서 나는 정신 못 차렸다. 환율 계산이 어려우니 나중에는 그냥 우즈베키스탄 숨 하면 0 하나는 빼고 생각하는 연습을 계속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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