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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거의 없는 한낮의 브로드웨이 거리(트립어드바이저에서 캡처함)

아이비에커는 차를 몰아 타슈켄트 브로드웨이 거리로 향했다. 밖이 너무 더워서 아이비에커 차안에 오래있고 싶었지만, 타슈켄트의 관광지가 한데 몰려있어서 그런지, 차만 타면 3분 내로 다시 내려야 했다. 브로드웨이는 우리나라 명동처럼 상점과 식당들이 몰려있는 거리였는데, 땡볕이라 브로드웨이 거리에 지나다니는 관광객이 아예 없었다. 주원이는 아이비에커 차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 저 똥 마려워요."를 연발하며 울상이었다. 브로드웨이 거리는 크지 않아 공용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아이비에커와 우리는 화장실을 찾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아이비에커는 급한 대로 깔끔해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화장실 좀 써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다. 
 정말 아름다운 식당의 아름다운 화장실이었는데, 평일 오전 땡볕이라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 화장실 썼는데 여기서 밥 먹어야 하는거 아냐?"
 아이비에커한테 내가 머쓱하게 묻자, 아이비에커는 여기서 먹을 생각이 없는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주원이가 볼일을 해결했던 Navvat Lounge Bar


 주원이의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밖에 나가자 브로드웨이 거리에서는 정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골동품 파는 사람들도 없어 구경할 것도 아니었고, 아이비에커를 데리고 상점 구경할 것도 아니고, 여기서 밥 먹을 것도 아니고, 복잡한 서울에서 살다온 우리에게는 거리도 그다지 특색은 없었다. 나중에 유튜브에서 보게 된 바로는 브로드웨이의 진가가 나타나는 건 해가 진 저녁이라고 한다. 모두 더운 한낮에는 야외로 나오지 않다가, 해가 지면 브로드웨이 거리의 거리 불빛이 켜지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나와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하는 것 같았다. 
 아이비에커는 갑자기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길게 통화하는 걸 보니 회사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가족들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더위로 인해 나는 목이 말랐다. 근처 상점에서 주원이는 오렌지 주스를, 나는 물을 구입했다. 아이비에커가 뭐 마시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저 멀찌감치 서서 통화 중이었다. 
 "아이비에커는 뭐 마신다니?" 
 엄마가 묻자 나는 콜라를 집어 들었다. 
 "얘, 무슨 콜라를 사니?" 
 "엄마, 쟤 등치 봐봐. 왠지 콜라 좋아할 것 같아."
 우리가 콜라를 사던 말든 계속 통화하는 아이비에커를 뒤로 하고 우리는 잠시 매점 옆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주원이가 너무 더워서 얼굴 전체가 발그레해졌기 때문이다. 더 버티다가는 일사병이 걸릴 것 같은 위기였다. 

우리가 앉아 쉬었던 브로드웨이 매점 옆 벤치(트립어드바이저에서 캡처함)


 아이스크림 가게 옆에서 잠깐 앉아있는데, 어느 히잡 쓴 예쁜 여인이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주었다. 자신의 아들 주려고 샀는데, 아들이 안 먹는다고 해서 버릴 수는 없어서 우리한테 준거라고 했다. 어여쁜 그 여인은 영어도 참 잘 했다. 입도 안 된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이미 반쯤 녹아있었다. 아이비에커는 계속 통화하고 있고, 날씨는 덥고, 주원이는 더워서 맥을 못 추고 있고, 엄마는 그런 주원이에게 녹은 아이스크림을 먹이고 있고... 산만한 상황에 나는 자꾸만 멍해졌다. 우리에게 집중도 안 할꺼면서 통화만 계속 했던 아이비에커가 무뚝뚝하게 느껴졌다.
 아이비에커는 통화가 끝나자 브로드웨이 거리도 다 봤으면 이제 밥 먹으러 가자며, 벤치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말했다.

 "저녁에 우리집에 초대할께. 부모님한테 얘기했고, 우리 와이프랑 모두 식사준비할꺼야."

  멀찌감치 서서 통화했던 내용은 바로 우리에 관한 것이었던 것이다. 외국인 친구가 갑자기 왔고, 또 자기네 집에 초대하고 싶어서 가족들과 그렇게 긴긴 통화를 했었다니... 

 브로드웨이거리에는 거의 10분도 안 있었던 것 같다. 아이비에커가 통화한 시간 동안만 브로드웨이 거리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산 콜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앞서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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