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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에 꽃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카페는 늦은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로 야외테이블이 어느 정도 차 있었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히느라, 야외 지붕에 설치된 스프레이는 끊임없이 분무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장식과 시원한 분무시스템 속에 널따란 나무의자에서 천천히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였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이비에커는 로맨틱한 여름 야외테이블은 쳐다도 보지 않고, 에어컨을 찾아 실내로 곧장 들어갔다. 실내 테이블은 야외테이블에 비하면 앉아있는 사람이 적었는데, 실외로 연결되는 문이 열려있어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비에커는 더운지 눈을 끔벅끔벅 뜨면서, 이마를 만져댔다.
"아이비에커, 피곤해?"
"아니, 너무 더워서... 우리 자리 옮기자."
앉은지 5분 만에 우리는 레스토랑의 가장 깊숙한 실내로 들어갔다. 실외 창문에서 다소 멀어서 어두컴컴한 데다, 벽마저 검었다. 노란 조명이 그나마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에어컨 공기가 미친다는 장점 외에는, 한낮의 평온한 점심식사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공간이었다. 사람이 없어 웨이터가 오지 않아, 아이비에커가 결국 앉은 지 10분 만에 밖까지 다시 나가서 웨이터를 부르고 나서야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나와 주원이는 마스타바와 빵을, 아이비에커는 중앙아시아식 볶은밥인 플로프를 시켰다.
"그때 얘기했던가. 나 난징에서 석사 할 때 진짜 웃기는 일이 있었어."
어색한 내가 말이 없자 아이비에커가 웃으며 입을 뗐다. 그가 석사 했을 때, 자신이 캐나다인인 척하고 중국사람들 속여 먹은 이야기 시리즈였다. 아이비에커는 영어도 곧잘 할 수 있었는데, 다소 하얀 얼굴과 큰 코로 인해 중국 고등학생에게 캐나다인인 척하고 영어과외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의 영어과외는 점점 커져 황룡이라는 중국 남자를 소개받게 되고, 어느 학원에 영어강사로 본격 취직하게 되었다. 그러다 난징 지역 TV프로그램인 '참과 거짓'에 나가게 되어, 결국 방송에서까지 자신이 캐나다인인 척했다는 일화였다. 아이비에커는 자신한테 속임을 당한 중국인들의 반응과 얼굴, 몸짓을 따라 했는데, 자신이 그걸 흉내 내면서도 너무 웃기는지 연신 하하하 웃어댔다. 사실, 그 얘기 중 일부는 15년 전 그를 난징에서 만났을 때 이미 그가 나에게 했었던 이야기였다.
15년 전 그 때 나는 대기업에서 해외 법인으로 중국 출장을 간 상태였고, 그는 대학원생이었다. 그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와 연락을 하지 않는 게 그에 대한 최선의 배려라고 생각해서 2년 간 줄기차게 그의 연락을 무시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 너무 매몰찬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잦은 중국출장 중에도 절대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었지만, 어느 날 나는 어쩌면 그와 다시 만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 어느 주말에 시간 내어 그가 있는 난징으로 가게 되었다. 그를 기다리며 그가 산다는 기숙사 입구의 어느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었는데, 내 시선에 삘간 나이키 운동화가 나타났다. 고개를 올려 보니, 2년 전 나의 연인이었던 아이비에커였다. 그는 2년 전처럼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나는 검은 구두에, 분홍색 반팔 니트,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하늘색이었다. 하얀 피부에, 길고 진한 쌍꺼풀이 있는 큰 눈, 큰 코... 내 앞에 나타난 그가 너무 외국인 같아 생경했다. 2년 전 그는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남자일뿐이었는데, 2년 후 내 앞에 선 그는 내가 지난 날 알고 지냈었던 외국인이었다. 내가 너무 어색해하자, 그가 당황했다.
"내 기숙사 보여줄께."
우리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그의 기숙사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연인이었던 기억은 다 잊고, 그를 외국인 남자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기숙사방에 가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갈한 그의 독방은 책상과 옷장, 그리고 침대만 있는 단출한 구조였는데, 창문이 훤해서 전망이 좋았다.
"이게 내 석사 졸업 논문이야."
중문과 석사를 하고 있던 그가 책상에 있는 A4종이뭉치를 들어 나에게 보여줬다. 중국어와 중앙아시아언어의 특징을 비교한 논문이었는데, 당시 그의 중국어 수준으로 보아, 외국인으로 도저히 혼자 쓸 수 없는 분량이었다. 기존 자료를 참고하거나, 현지 중국인들의 코칭을 받은 것 같았다. 얘는 박사할 것도 아니면서 이런 논문을 써서 도대체 뭐 먹고살려고 하지, 나는 취업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얘는 중국어공부를 2년이나 더 했단 말이야. 스스로 돈 좀 번다고, 나는 아직 학생신분으로 머무르고 있는 그가, 전망도 없는 언어전공인 그의 모든 것이 다 하찮아 보였다. 나는 손으로 그의 논문을 몇 장 뒤적이고는, 고개를 들어 그의 방안을 천천히 관찰하다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함에 나는 두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너무 얼어있자 그도 어쩔줄 몰라 하다 한참만에 입을 뗐다.
"난징 처음 온거지? 나가자. 내가 구경시켜 줄게."
엘레베이터를 타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기숙사 로비를 지나는데, 그가 아는 지인들이 지나갔는지 그가 손을 들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 한국인 친구들도 좀 있었어. 어떤 한국인 형을 알게 되었는데 진짜 웃겨. 나한테 한국어도 많이 알려줬어. 중국어로 치킨이 자지 ( 炸鸡, zhaji)잖아. 근데 자지가 한국어로 남자 그거라면서. 하하."
직장인인 나는, 그래서 아직 스스로 돈도 벌지 않고 있는 학생신분을 은연중 무시하고 있던 나는, 콧대가 하늘로 치솟은 나는, 성적인 내용을 농담으로 하는건 교양 없는 사람이나 하는 거라 생각하는 교양 있는 나는, 2년 만에 만난 그의 농담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아름다운 이별을 하겠다고 내가 왜 저질 농담이나 하는 얘를 만나러 여기 온 거지, 아니야 얘는 그런 천박한 농담을 하는 애가 아닌데, 한국의 어느 천박한 농담을 하는 친구를 잘못 사귄 거야, 아냐 그렇다고 그런 농담을 굳이 나한테... 아이비에커는 신나서 웃으며 내가 그의 농담에 웃는지 반응을 살폈고, 나는 그가 저질이라고 생각하는 티가 날까 싶어 미소로 화답했다.
"아, 그리고 나 여기서 캐나다인이라고 속이고 영어과외해서 알바비 좀 벌었어. 중국학생 부모가 내가 너무 잘 가르친다고 점심 대접을 받았는데, 캐나다 어느 지방 출신이냐는 거야.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무 이름이나 지어냈어. 그러니까 캐나다에 그런 도시도 있냐면서... 그래서 비교적 소도시라 아는 사람이 없다고 빡빡 우겨댔지. 근데 얘기하다보니까 영어가 자꾸 달리는거야. 그래서 말하다가 모르는 영어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우즈베키스탄어로 뭐라고 해댔어. 식은땀이 났지. 중국인들이 못알아듣겠다고 다시 말해달라고 해서, 내가 더 발음을 굴려서 대충 얼버무렸지. 사실 나도 당황했다니까."
아... 어쩌면 그는 친구를 잘못 사귄게 아니라, 얘 자체가 본래 천박한 성향인지도 몰라. 콧대가 높은 나는, 그의 옆에서 웃으며, 그의 농담을 미소로 맞장구 쳐주며,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평가를 쉼 없이 하고 있었다.
15년 후 내 앞에 앉은 그가 말했다.
"그 때 참 별일이 다 있었어. 나중에는 난징TV에서 '누가 진짜 선생님인가.'라는 주제로 참과 거짓을 가르는 프로에 내가 나가게 되었는데, 내가 끝까지 뻔뻔하게 선생님이라고 속이는 바람에 중국인패널들이 끝까지 내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몰라 토론했다니까. 하하. 프로그램 말미에 결국 나는 내가 우즈베키스탄 출신 학생일 뿐이라는 걸 알려줬고 다들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놀랐어. 근데 말야. 문제는 따로 있었어. 그 방송을 나한테 영어과외하는 중국 고등학생이 본거야. 다음 과외할 때 말하더라고. 선생님. 그 방송에서 봤는데 우즈베키스탄사람이냐고. 그래서 내가 말했지. 나는 우즈베키스탄계 캐나다인이라고. 그러니까 그 학생이 또 끄덕끄떡이더라고. 하하"
나의 영혼 속 윤리선생님이 퍼뜩 나타나 '남을 속이는걸 어떻게 재밌다고 생각할 수가 있니. 그 부끄러운 얘기를 뭐가 자랑스럽다고 또 하니. 양심은 어디다 갖다 팔아먹었니.'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마치 최불암시리즈 말하는 양 신이 난 그 앞에서 나는 내 윤리선생님을 주머니 속에 쏙 넣었다. 그러고는 나도 윤리의식이 없는 양, 개그콘서트에서 객석에 앉은 청중이 된 양, 그의 얘기에 따라 웃었고, 그도 내가 웃자 그는 더 신나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중국어로 긴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주원이는 푹신한 소파쿠션을 만지작 거리며 널찍한 소파를 탐색하고 장난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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