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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다. 우즈베키스탄은 단조로워서 나는 좀 지루하더라."
키르기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국경을 넘던 몇 주 전, 밤샘버스에서 성제오빠가 말했다. 흙길이 대부분이었던 키르기스스탄에 비하면, 콘크리트 길이 깔려있는 우즈베키스탄에 와!와!를 연발하는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내가 의지하고 있던 론리플래닛의 내용도 그랬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모스크며, 사당이며 실제 실크로드의 유적으로 칠 수 있는 화려한 건축물들이 많았다. 심지어 타슈켄트에는 우리같이 현지어 하나 못하는 외국인들이 버스보다 이용하기 쉬운 지하철도 있었다.
"지금은 좋겠지만, 너도 나중에 우즈베키스탄에 대해서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구나."
버스 바깥으로 보이는 집들도 키르기스스탄에 비하면 정말 깔끔했다. 집 앞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고, 커다란 대문이 집마다 크게 나있었다. 유적은 거의 없다시피하며 자연이 거의 전부인 키르기스스탄에 비하면, 사마르칸트며 히바며 부하라며 얼마나 별천지인가. 우즈베키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날, 나는 성제오빠와 그 날 버스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성제오빠가 맞았다. 우즈베키스탄은 정말 단조로웠다.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는 타슈켄트 북역(Tashkent north railyway station)으로 향했다. 우리는 침대칸 이 마련된 기차를 타고, 우즈베키스탄 안디잔(ANDIJAN)에서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키르기스스탄 오쉬로 넘어간다. 이왕 가는김에 구경해보지 않은 안디잔(Andijan)에 1박을 하며 관광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안디잔에서 갈 수 있는 모스크, 공원, 박물관은 나에게 더이상 아무런 호기심도 자극하지 않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여행하는 내내 엄마가 아프셨고, 나도 여행 내내 제정신이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의 수많은 짐을 넣다 뺐다 하는 것도 아주 큰 일이다. 방탈출게임이라도 하는 듯, 오늘은 다소 무리하더라도 키르기스스탄 오쉬까지 한걸음에 가는 걸 목표로 삼았다.
부하라-사마르칸트-타슈켄트 구간은 아프로시얍 고속철도라 에어컨도 빵빵 했지만, 타슈켄트-안디잔 구간은 딱봐도 연식이 좀 되어보이는 기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까지 약 300 km의 거리를 고속철로는 2시간이면 도달했는데, 타슈켄트에서 안디잔까지는 느린 기차로 가기 때문에 350 km를 6시간이 걸린다.
'바허, 혹시 여기 안디잔 가는 기차에 먹을꺼 팔겠지?'
'아마 팔꺼야.'
바허에게 텔레그램으로 식당칸이 있는지 문의했지만, 바허도 안디잔은 가본 적이 없고, 이 기차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 듯 했다. 남은 우즈베키스탄 돈으로 주원이의 주스를 사고, 남은 시간에는 기차역을 둘러보았다. 6시간이나 가는 긴 여정인데 뭐라도 팔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무런 식량도 구입하지 않았다. 주원이와 엄마를 야외 벤치에 앉히고는, 좀 시원한 곳이 없나 하고 혼자 역 안으로 들어갔다. 이리 저리 역 시설을 헤매고 있는데,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내가 외국인인 것을 확인한 후 대뜸 제스처로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여자를 따라 긴 복도를 따라가니 그곳은 깔끔한 유료라운지였다. 폭신하고 너른 소파와 빛나는 장식들로 가득한 깔끔한 대기실은 인당 미화 2달러는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지 깔끔한 대기실은 텅 비어있었다. 더구나 역 안쪽에 있어, 짐을 모두 들고 긴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 라운지에 가자니 매우 암담하게 느껴졌다. 나는 대충 구경을 하고 나오며 '라흐맛(감사합니다.)'하고 나오는데, 나를 안내했던 직원이 라운지 어느 벽면에서 자신이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굳이 찍고 싶지 않았지만, 호의는 호의로 받는 편이라 직원이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순순히 응하고 웃으며 나왔다.
라운지 갔다가 주원이 화장실을 챙기니 벌써 기차탈 시간이 다 되었다. 타슈켄트가 시발점인지 기차는 몇 시간 전부터 거기 대기중이었다. 객실의 창문이 대부분 열려있는걸 보아하니, 기차 안에서도 시원한 안락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강력한 예감이 엄습했다.
객차는 2층 침대였는데 3일 전에 예매했더니 1층 침대가 모두 마감되었다. 이주렇게 예매가 치열할 줄 난 몰랐었나. 엄마가 일주일만에 국경을 넘을 체력을 비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어서였을까. 늦은 예매를 살짝 후회했다.
일단 엄마와 주원이를 같은 방에 있는 2층 침대로 안내하고, 대형 배낭 2개와 유아차는 객차에 놓을 곳이 없어 객차 사이 복도, 이미 짐이 잔뜩 쌓여있는 곳에 놓았다. 돌아와보니 엄마와 주원이가 각자의 2층 침대에 올라가 있었다. 객차가 비좁자, 1층 침대의 승객들은 다른 사람들이 1층을 빌려앉을지 몰라서 그런지 옷과 짐을 침대에 잔뜩 올려놓았다. 1층의 현지 아주머니 2명은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우리가 혹시 1층 침대를 빌려 좌석으로 앉을까 몹시 경계하고 있었다. 열악한 기차에서 생존해야 하니, 외국인에 대한 호의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기차가 출발하면 시원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2층 침대에는 그 어떤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주원이와 엄마는 찜질방에서 요양하듯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2층 침대에 누워 있었다. 기차는 낡았고, 객차는 짧았다. 식당객차는 당연히 없었고, 이동 매점을 운영하는 승무원도 없었다. 객차를 둘러보니, 승객들은 비닐봉지에 제각각 싸온 마른빵과 과일을 꺼내고 있었다. 와..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무 식량도 없이 이 기차에 탔단 말인가. 아침에 바빠서 주원이에게 제대로된 아침도 못 먹였는데, 6시간을 어떻게 버틸까. 친정엄마가 손가방을 뒤적거리니 먹다 남은 땅콩이 좀 나왔고, 아침에 먹다 남긴 빵쪼가리들을 비닐에 싼 것도 좀 나왔다. 주원이는 더워서 그런지 다행히도 식욕을 모두 상실한 듯, 땅콩 조금 주워 먹더니 배고프다고 보채지 않았다.
타슈켄트를 벗어나 3시간 정도 달리니 드디어 우즈베키스탄에도 녹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히바,부하라,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기차 구간에서는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산과 나무, 계곡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막만 가득했던 지난 우즈베키스탄의 풍경에 비하면 이 곳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키르기스스탄에 가까워질 수록 키르기스스탄의 풍경과 닮아갔다. 굶주리며 2층에서 하염없이 부채질하고 있는 주원이와 엄마의 허기가 걱정될 무렵, 드디어 승무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파랗고 커다란 비닐에 잔뜩 빵을 들고와 팔기 시작했다. 와... 우즈벡은 끝날 무렵까지 빵이구나. 솔직히 우즈베키스탄 빵은 장식은 화려하고 예쁘지만, 이스트를 많이 쓰지 않는지 딱딱하고 퍽퍽한데다 먹지 않으면 금방 말라버려 질려버릴때로 질려버렸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언제 다시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맛대가리 없어보이는 빵을 구입했다. 빵 사이즈가 큰데, 낱개로는 팔지 않고 2개입 1봉지가 원칙이란다. 구입한 빵은 정말 우즈베키스탄에서 맛보았던 빵 중 역대급으로 얇고 딱딱했다.
"엄마, 이거라도 먹을래? 저기서 사왔어."
엄마는 비닐에 담긴 대형접시만한 빵 2개를 보더니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에효. 너는 사도 빵을 사오니. 안 먹어."
차가운 엄마의 반응이 왠지 매우 공감되었다. 주원이에게도 조금 떼서 먹이니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배부르단다. 괜한 빵을 사서 가뜩이나 많은 짐을 늘렸다. 우즈베키스탄은 더워서 그런지 그 흔한 비둘기나 개미도 안 보이던데.... (추후 이 빵은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넘어 오쉬 숙소에서 슬그머니 처리되었다. 가뜩이나 딱딱한 빠뜨르를 주인에게 버려달라고 맡기던 날 빵은 돌덩이에 버금갈 만큼 딱딱해졌다.)
그것은 안디잔의 명물빵 빠뜨르(Patir)였다. 분명 기름으로 층을 만들어 페스트리의 효과를 낸 것 같긴 한데, 절대 페스트리 맛이 아니며, 퍽퍽하고 딱딱하고 말라있는 빵이었다. 귀국하고 빠뜨르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니 정말 엄청난 수고를 들여 만들 수 있는 빵이었다. 이 맛없는 걸 만든다고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낸다니... 게다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유튜브에는 한결같이 빠뜨르에 대한 칭찬 일색이니... 지구촌 입맛이 달라도 정말 달랐다.
5시간이 슬슬 지나서야 1층 승객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2층 침대에서 줄곧 부채질로 버텨왔던 엄마와 주원이를 빈 곳에 앉히니 창문 바람에 그나마 벌건 안색이 좀 안정되기 시작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자 드디어 기차는 안디잔 역에 다다르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마지막 날인데, 지쳐도 너무 지쳤다. 무려 6시간 30분을 이 더운 기차에서 어떻게 버텼대? 친정엄마는 중앙아시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언젠간 닥터지바고에 나온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겠다는 꿈이 있었다. 추후 엄마에게 물어보니, 구소련 문화권인 중앙아시아에서 기차여행을 하면서 그 꿈은 아름다운 꿈이 아님을 확신하고 고이 접어두었다 했다. 주원이와 중간에 복도에서 노래도 틀어 춤도 좀 같이 추고, 땅콩도 쥐어주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6시간 30분은 5살짜리 소년이 버틸만한 아름다운 경험은 아니었다.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조그마한 미련도 남지 않은채, 우리는 안디잔 역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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