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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오후 4시 30분에 타슈켄트행 버스를 타야 했다. 숙소에서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간단히 아침밥을 해 먹고 짐을 모조리 싸서 호스텔 짐 보관소에 두었다.  살짝 관광을 하고 짐을 다시 찾아 버스터미널로 향할 것이다.

 짐을 픽업할 시간을 고려하면 관광할 시간이 좀 애매해서, 보기에 부담이 없는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미술관 근처에 내리니 키르기스스탄 음료수 가판대가 떡하니 있었다. 비쉬케크 전역에는 이런 음료수 가판대가 깔려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 먹는 듯했다. 파랑, 갈색, 초록 음료통에 잔뜩 든 음료를 현지인들은 조금의 돈을 내고 한 잔씩 마시고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에 도착하여 자꾸 목격하게 된 이 음료들이 대체 뭐길래 현지인들이 사 먹는지 나는 호기심에 가득 찼지만, 키르기스스탄에 여행 와봤던 한국인 여행자들의 유튜브들을 보니 이 음료는 맛을 형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모금만 마셔도 다 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으며, 그 말을 하는 유튜버들의 미간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채식주의자라 엄마한테 키르기스스탄까지 왔으면 저 음료를 꼭 한번 먹어봐야 한다며 엄마를 설득했지만, 비위가 약한 엄마도 자꾸 도전을 안 하려 했다. 그러다 키르기스스탄 네이버 카페에서 가판대 음료 중 막심은 유제품이 안 들어간 곡물 발효음료라고 해서 엄마와 내가 함께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런 가판대 음료를 파는 회사는 소로(ЖОРО:shoro)가 제일 유명했는데, 우리가 마주친 가판대는 Artezian 꺼였다. 파란 거는 양젖을 발효시킨 탄(Тан)이었고, 빨간 거는 곡물을 발효시킨 막심, 초록색은 냉차(МУЗДак чай)였다. 채식주의자인 나와 자칭 자신이 채식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엄마가 먹을 수 있는 음료는 막심뿐이었다. 

 막심을 골라 가장 작은 컵(200ml)을 16 솜(=한국돈 274원)에 사서 엄마가 먼저 마셔보니, 역시나 미간을 확 찌푸리면서 옆에 있는 나무에 버리자고 하셨다. 주원이는 미간을 찌푸리는 할머니를 보더니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나도 먹어볼래"라고 했다. 주원이도 한 모금 마시자 맛없어를 연발했다.

 주원이와 엄마가 한 모금씩만 마셨기 때문에 아직 컵의 90%가 차있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음료는 생각 외로 매우 차가웠다. 이 차가움에 현지인들이 더위를 해소하려고 찾는구나 싶었다. 발효과정에서 탄산이 생기는 듯해서 톡 쏘는 맛이 있었는데, 이 맛은 막걸리에 탄산을 더 주입시킨 뒤, 미숫가루를 거기에 풀어 갈색을 만들고, 그 후 소금을 부운 맛이었다. 유튜브들이 맛을 형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이런 맛이 한국에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한국인이 청국장을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고 나서 치즈가 비리다고 인식하는 것도 모두 학습된 결과이다. 지금 이 음료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혀에서 인식하는 것도 모두 학습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현지인들의 음료를 예의 있게 대하고 싶어, 코를 막고 단숨에 막심을 들이마셨다. 발효음료니 소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비위가 강하다며 옆에서 새침데기 아가씨처럼 감탄했다. 엄마의 감탄은 마치 내가 산 낙지를 그냥 먹는 사람을 보듯, 개고기를 먹는 사람을 보는듯한 약간의 경악이 섞인 감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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