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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티오구스에서 카라콜로 돌아온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심야버스를 타고 비쉬케크로 향해야 했다. 심야버스가 오후 10시에 출발하는 바람에, 우리는 돈을 더 지불하고 숙소에 있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할머니께서는 손녀들과 함께 제티오구스에서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챙겨준데 고마워서인지 늦게 체크아웃하는 데에 대한 추가 비용을 따로 받지 않았다. 숙소에 떠나기 전까지 손녀들은 주원이와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도 잘 놀아주었다.  제티오구스에 다녀와서는 주원이도 누나 누나 하면서 잘 따르고, 손녀들도 Yandex앱을 통해서 한국어로 주원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주원이와 놀아주는 키르기즈 누나들

 우리는 원래 짐이 참 많았다. 중앙아시아 1달 살기 컨셉으로 온 거라 한국 식재료를 많이 챙겨 와서 그런 것이었다. 캐리어 2개 도합 40킬로에 배낭 2개, 유아차 1개... 잠깐 우즈베키스탄에 배낭여행 콘셉트로 다녀오기에는 짐이 너무 많다고 판단하여, 캐리어 2개를 정리하여 최소한의 옷가지와 미역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캐리어에 넣어, 이곳 숙소에 다시 보관했다. 우리가 다시 카라콜로 돌아오는 시점에 우리는 다시 이 캐리어를 만날 것이다. 

  9시 40분 경 우리를 픽업할 택시가 도착했다. 깜깜한 카라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나니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성제오빠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는 이미 와있는 것 같은데, 우리의 든든한 성제오빠는 언제 오려나 하고 걱정할 무렵, 성제오빠가 어제 우리를 악수 온천에 태워준 택시기사 아저씨의 차를 타고 나타났다. 

 "이 놈의 오지랖 때문에 이렇게 늦어졌구나."

  성제오빠는 구구절절 자신이 왜 이렇게 늦을 수밖에 없었는지 사연을 말해줬다.  그날 우리가 제티오구스에 간 사이, 성제오빠는 어제 방문했었던 택시기사 아저씨 이종사촌 댁에 다시 다녀왔다고 한다. 그날은 이종사촌 댁에서는 조상을 기리는 전통 제사가 있었는데, 전통 제사를 볼 수 있겠다고 해서 비쉬케크에서 알고 있던 미국인, 프랑스인 친구가 성제오빠한테 합류했다고 한다. 제사의 일부를 보고 그 친구들을 데리고 악수 온천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미국인 친구가 돌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절뚝 거리는 그 친구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오느라 이렇게 늦었다고 한다. 

"아참, 주원아. 삼촌이 선물이 있네."

 성제오빠가 내민 큰 손 안에는 주원이가 잃어버린 노란색 까불이 공룡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성제오빠가 버스터미널에 오기 전 짐을 찾느라고 택시기사 아저씨네 잠깐 들르게 되었는데, 부엌 테이블에 떡하니 공룡 한 마리가 있더란다. 그건 바로 어제 택시기사 아저씨네 소파에서 곯아떨어진 주원이가 손이 꽉 쥐고 있다가 자느라 떨어뜨린 까불이 공룡이었다. 안 그래도 그 까불이 공룡이 없어져서 우리는 숙소를 떠나기 전 침대 구석구석을 뒤졌더랬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비쉬케크로 가는 심야 버스를 타게 되었다. 성제오빠는 하루에 여러 일이 있어서 고된 모양인지 버스에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새벽 5시 경 비쉬케크에 도착했다. 또다시 심야버스를 타려니 정말 몸이 금방 지쳤다. 숙박비와 이동시간은 많이 절약되었지만, 아이와 할머니를 데리고 거대한 짐을 메고 자주 탈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내일 또 우즈베키스탄에 가는 심야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친정엄마는 슬쩍 피로해지셨는지, 새벽에 비쉬케크에 도착하자 웃지 않으셨다. 다시 도착한 새벽의 비쉬케크는 새벽의 황량함 그 자체였다. 서울역 한복판에 짐과 함께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랄까? 오쉬바자르 근처의 유스호스텔까지 버스도 애매해서,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유아차를 끌고 20여분을 걸어갔는데, 비포장도로여서 피로감이 더했다. 성제오빠랑은 내일 다시 타슈켄트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내일 만나기로 하고 새벽에 우리는 비쉬케크 오쉬바자르 근처에서 헤어졌다. 예약한 호스텔에 도착하자, 여자 직원이 프런트 앞 작은 소파에서 얇은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짐과 유아차를 끌고 새벽에 도착한 우리가 우당탕탕 소리를 내자, 피곤한 듯 일어났다. 

 호스텔에는 얼리체크인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오후 2시까지는 우리 방에 들어갈 수 없어, 떠돌이 신세로 있어야 할 판이었다. 우리는 짐을 짐 보관소에 맡기고 호스텔 중앙의 야외 가든에서 머물게 되었다. 야외 가든에는 검은 고양이가 있었는데, 주원이는 고양이를 보더니 신나서 피로도 다 잊은 듯했다. 

호스텔에 있던 고양이

 카라콜에서 남은 쌀을 가지고 대충 밥과 미역국을 끓여 엄마와 아이를 먹이고는 오쉬 시장에 들러 빵을 사먹었다. 그 후 새벽에 숙소까지 걸어온 버스터미널에 다시 도착해서 타슈켄트 가는 차를 예매했다. 버스터미널에 타슈켄트 가는 버스 예매하는 창구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영어가 하나도 통하지 않아, 아주 사소한 것까지 번역기를 통해서 하느라고 버스터미널에서, 우즈베키스탄 가는 버스표를 사는데 한 시간이나 걸려야 했다. 여권번호를 일일이 종이에 적고, 그것을 내고, 또 아저씨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독수리 타법을 내가 종이에 적은 여권번호를 하나하나 타이핑했다. 버스표를 사고 나서야 드디어 우즈베키스탄에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가 대학생일 시절 너무나도 가고 싶었던 우즈베키스탄에 드디어 가게 된 것이다. 그새 심야버스로 인해 체력이 고갈된 엄마는 버스터미널의 차갑고 더러운 철제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계셨다. 표를 다 발권했는데도 엄마는 좀처럼 바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아직 충전이 덜 됐을껄?" 

 졸다가 눈을 반쯤 뜬 엄마가 말했다. 알고 보니 내가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산다고 낑낑대고 있는 사이 엄마는 배터리가 방전된 핸드폰을 들고 버스터미널에 충전할 곳이 없나 한 바퀴 돌았는데 도저히 없어서, 경비아저씨에게 물어봤더니, 경비아저씨가 돈을 요구해서 웃돈을 주고 충전을 맡겼다고 한다. 그새 경비아저씨는 또 밥 먹으러 갔는지 엄마의 핸드폰만 경비아저씨의 초소에 놔둔 채, 초소를 자물쇠로 잠가놓았다.  

 엄마의 핸드폰을 찾느라고 다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썰렁한 버스터미널에서 30분을 더 기다리자, 경비아저씨가 밥을 다 먹었는지 저쪽에서 설렁설렁 나타나 엄마 핸드폰을 주셨다. 전기가 약한지 엄마 핸드폰은 50% 정도밖에 충전되어 있지 않았다. 

타슈켄트 가는 버스

 나머지 오후 일정에 뭐할까 찾다가 비쉬케크 최대의 쇼핑몰인 비쉬케크 파크에 가기로 했다. 비쉬케크 파크는 나름 백화점처럼 깔끔하게 잘 해놨는데 거기 5층에 키즈카페 같은 것이 있었다. 주원이만 결제하고 보호자들은 키즈카페 바깥 울타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새 온 층이 정전이 되어 키즈카페도 암전 되는 일도 있었다. 암전 된 쇼핑몰에서도 사람들은 정전은 흔히 있는 일 중 하나라는 듯 전혀 동요하지 않고, 표정도 대수롭지 않아 했다. 마치 암전 된 사실을 우리만 인지하는 듯이 사람들은 비쉬케크 파크를 어둠 속에서도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키즈카페 옆에는 극장도 있었는데, 극장이 암전 되어도 극장 내 사람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약간은 더운 날씨여서 키즈카페도 살짝 후덥지근 해지기 시작했는데, 약 20~30분 정도 지나서야 매장은 다시 환해졌다. 불이 켜지자 주원이는 땀이 뻘뻘 나서 머리가 다 땀으로 졌어있었다. 

 뭔가 정말 지치는 하루였다. 심야버스를 타서 인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이동을 계속 해서 정착하지 못하는 고통도 있었다. 낯선 우즈베키스탄에 가는 긴장감에 피로는 더 했다. 키즈카페에서 나와 유아차에서 잠든 주원이를 데리고, 엄마와 나는 근처 중국집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간단히 먹고, 다시 숙소까지 걸어가서 과일이나 실컷 먹고 잠이 들었다. 

숙소에서 과일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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