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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고 있는 둥간족 숙소에는 13살, 7살짜리 여자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서 학교가 닫자, 부모들이 자신들의 부모댁에서 방학을 보내도록 아이들을 보낸 것이었다. 13살 짜리 여자아이의 부모는 카라콜에서 설산 넘어 있는 카자흐스탄 수도인 알마티에서 일하고 있었고, 7살 아이의 부모는 키르기즈스탄 수도인 비쉬케크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가 둥간족 숙소에 간 날짜가 6월 말을 향해가고 있으니 방학 하자마자, 비교적 시골인 카라콜로 보내진 것이었다. 일하고 있는 부모들을 대신해 숙박업을 하며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녀들을 사랑으로 키워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학이라고 조부모가 손녀들을 어디로 데리고 다닌다거나, 무엇을 가르치거나, 놀아주는 것도 없었다. 그저 아침, 점심, 저녁 잘 챙겨먹이고 저녁에는 씻기는 일정 외에는 나머지는 방치해두었다. 장난감도 하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소녀들은 길고 긴 하루를 잘 보내고 있었다. 그저 특별히 놀아주는 것이라고는 일주일에 1번 우리가 어젯밤 다녀온 악수 온천에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다.
키르기즈 소녀들이 사랑하는 그 악수 온천에 어젯밤 다녀온 여파로 우리는 아침8시에 눈을 떴다. 드디어 기상시간은 시차적응을 시작한 것이다. 피로로 인한 것이긴 했지만 그동안은 한국시간 생체시계에 맞춰 일어나느라고 줄곧 아침 5시에 눈을 떴던 것이다. 아침에 마당을 기웃기웃 하니 이미 한쪽 부엌에는 둥간족 주인 할머니가 이미 아침상을 차려놓으시고는 천으로 덮어놓으셨다. 토마토와 오이가 샐러드에 들어가는 야채 전부라고 믿는 샐러드와 빵, 그리고 오트밀죽, 계란 후라이 등이었다.
"오빠, 이거 우리꺼에요?"
"어, 이거 먹어도 된다."
다른 손님은 없는 건지, 여기 뜬금없이 차려놓은 아침상이 우리 것이 맞는건지 확신은 없었지만, 마음 편한 성제오빠는 이미 우리 것이라고 확신했는지, 상 앞에서 주저하는 나에게 평온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먹자."
할머니는 우리가 그 아침상을 다 먹을 때까지 손녀들 챙기느라고 나타나지 않으셨다. 아마 별 말 없는 것 보면 우리의 아침상이 맞는듯 했다.
아침을 다 먹고 나는 방에서 쉬고 있다가, 마당에서 우리쪽 손님 숙소로 걸어오는 할머니를 보고는 핸드폰을 들고 대뜸 뛰어나갔다.
"아살람 알레이쿰(안녕하세요)!"
나의 현지식 인사에 할머니가 그제야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할머니의 위용에 나도 모르게 한국식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드렸다.
"루스키 오케이?(러시아말 가능하시죠?)"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핸드폰의 구글 번역기를 켜서 '한국어->러시아어' 옵션으로 맞춘 후 말하기 시작했다.
"어제 저희 저녁 요리해먹은 설거지를 다 해놓으셨더라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하려고 했는데, 온천에 갑자기 가게 되었고, 택시가 또 저희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서, 집에 와서 설거지를 하려고 했는데, 밤 11시 넘어 집에 도착하느라고 경황이 없었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나의 말을 러시아어로 자동 변한한 구글번역기가 잘 일한 것일까? 돋보기 안경을 내리끼고 나의 핸드폰화면을 한참 들여던 할머니는 다 읽으셨는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나에게 번역기를 쓰려는 듯한 제스처를 써서 나는 다시 구글번역기를 '러시아어-> 한국어'로 바꾸고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가 뭐라고 말하고 나에게 건넨 핸드폰 화면에는 이렇게 써져있었다.
"괜찮습니다. 나도 아이 키워서 압니다."
별거 아니지만 감사함에 살짝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가 된 친정엄마와 5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말 안 통하는 동네를 다니는 것이 줄곧 나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일까? 나는 도시에 사는 세상 쿨한 여자였다가도, 조그마한 위로에도 눈물이 고이곤 했다.
피곤했던 엄마와 나는 숙소 침대에서 누워있고, 주원이는 시멘트로 깨끗하게 깔아놓은 마당에서 여기 누나들이 더 어릴적 탔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스틱 자전거를 끌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침을 먹은 부엌 앞 마당에서는 13살, 7살 아이들이 창문에 핸드폰을 걸어 카메라를 키고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정해진 15초의 동영상에 춤을 녹여내느라고 둘은 춤을 반복 또 반복을 하면서 무한 녹화를 하고 있었다. 손발이 착착 맞는 것이 이미 우리가 오기 전 며칠동안 많은 연습을 했음이 분명했다.
"누나야. 춤 잘 춘다."
세발 유아용자전거를 타던 주원이는 누나들을 바라보다가 한국어로 감탄했다. 키르기즈 누나들은 한국어 칭찬에 주원이에게 흘깃 웃어주고는 다시 무한 녹화를 시작했다.
오늘은 저녁에 비쉬케크로 가는 심야버스를 타기로 했다. 밤 10시 출발이니, 그 전까지 카라콜에서 뭐라도 해야 했기에 엄마와 나는 방에서 서로 핸드폰으로 정보검색을 하며 찾다가 제티오구스에 가기로 결정했다. 키르기즈스탄에 온 한국 블로거는 많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제티오구스에 다녀온 한국 블로거는 자세히도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라고 사진까지 찍어 서술해놨다. 저렴한 버스를 타고 제티오구스에 가면 오늘 하루 보내기 좋을 듯 했다. 주원이에게 슬슬 이도 닦이고 갈 채비를 시키려고 창문을 열고 보니 주원이는 어느새 누나들과 마당에 있는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며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창문넘어 둥간족 손녀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심코 얘기했다.
"엄마, 쟤네들도 제티오구스 데리고 갈까?"
"그래~"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잔뜩 들여다보고 있는 엄마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그러든 말든 관심도 없다는 듯 성의없이 동의했다.
"오빠, 저희 제티오구스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여기 있는 아이들도 안 가봤으면 데리고 갈까요?"
인류애가 넘쳐흐르는 성제오빠는 나의 인류애 넘치는 제안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자신이 할머니에게 이야기 해본다고 했다. 성제오빠와 할머니가 한참을 얘기하더니 일이 어떻게 풀려가는지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은 집에 들어갔다가 옷도 갈아입고 큰 애는 가방까지 들쳐매고 마당 시멘트난간에 앉아 핸드폰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도 제티오구스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몇 시쯤 갈꺼냐. 택시 몇시에 불러줄까?"
"저희는 오늘 버스 타고 갈껀데요?"
나는 대수롭게 얘기했지만 성제오빠는 눈이 살짝 커지며 자신이 다시 할머니와 얘기해보겠다고 했다. 잠시후 성제오빠는 할머니가 택시를 타지 않으면 손녀들를 보낼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할머니에게 잠깐 서운했지만, 애기 엄마로써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할머니의 요구가 그렇게 황당한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러시아어도 못하는, 그것도 처음 보는 외국인들을 뭘 믿고 자신들의 손녀들을 들려보낸다는 말인가? 택시기사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할머니가 택시를 필수로 요구한 것은 나도 아이 엄마로써 충분히 납득할만한 요구사항이었다. 나는 친정엄마에게 이 상황을 얘기하였다. 그러자 침대에 누워있던 엄마는 벌떡 일어나며 얘기했다.
"아니, 우리가 왜 쟤네들때문에 돈 더 써서 택시를 타야되니? 여기 15분 거리에 자주 다니는 버스도 있는데."
성제오빠에게 엄마의 말을 완곡히 돌려서 전했다.
"오빠, 엄마는 버스 타고 싶으시다는데요?"
그러자 성제오빠는 다시 할머니에게 가서 한참을 얘기하더니, 미간을 좁히며 다시 나에게 얘기했다.
"할머니가 그럼 없었던 일로 한다고 한다."
이미 옷 다 갈아입고, 배낭을 다 메고, 마당 한복판 시멘트 난간에서 쭈그려 앉아 기다리던 아이들도 어느새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다시 안 갈 채비로 바꾸었다.
"엄마, 얘들이 실망하는 것 같은데 그냥 택시타고 가자."
얼음장 같이 차갑던 엄마도 일이 자꾸 복잡해지는 듯 하자 체념하듯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고 하셨다. 성제오빠에게 엄마가 택시를 타는 것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이미 늦었다면서, 아이들은 이미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을 바꿨는지 성제오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1분 안에 다시 나오더니 후다닥 하숙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5분만에 돌아온 성제오빠의 뒤에는 아이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우리가 택시를 탄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걸 전달했고, 그제야 아이들을 보내는데 할머니가 동의한 것이다.
아침부터 이게 왠 소동인가? 나는 마치 소설 속 어떤 남자가 되어 '저에게 딸을 주십시오. 제가 손에 물도 안 묻히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신부네 집에 결혼승낙을 받으려다가, 친엄마의 반대에 부딪히고, 또 사랑의 요정이 나를 도와 다시 연인과 재회하는 극적인 시퀀스와 유사한 감정기복을 오전에 겪었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창문을 바라보다가 충동적으로 제티오구스에 저 아이들 데려갈까요?라고 가볍게 성제오빠에게 말한 것일 뿐이었다. 아무튼 말 안 통하는 여자 아이들 둘을 데리고 우리는 제티오구스에 가기로 결정했다.
아직 세탁기에서는 어제 온천에서 입었던 수영복이며, 빨랫감이 돌고 있었다. 나는 빨래가 다 끝나면 간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자신이 빨랫감도 다 널어주겠다면서 얼른 가라고 했다. 아침부터 할머니와 외국인들 사이에 간다 안 간다 핑퐁쳐가며 마음고생했을 손녀들을 위해,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으면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얻은 결혼 승낙같은 손녀 동승 승락을 받고는, 15분 만에 택시가 와서 후다닥 또 제티오구스에 갑자기 가게 되었다. 개인일정으로 우리를 따라가지 않을 성제오빠는 떠나는 우리를 보며, 오늘도 무사히 사건을 잘 해결했다는 듯 그윽하고 보람찬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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