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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dex도 2GIS도 통하지 않는 부하라

 기차로 부하라에 도착하여 기차역 출구 쪽으로 나가려고 하니, 이미 출구 쪽에는 수많은 택시 호객꾼들로 인산인해였다. 큰 짐을 메고, 유아차를 끌며, 아이를 데리고 저 택시호객꾼들에게 둘러싸여 관광객으로 호구 잡힐 생각 하니 아마득했다. 주원이와 엄마를 잠깐 기차역 출구 전 벤치에 앉히고, 택시 어플 Yandex를 켰다. 부하라에서는 Yandex가 통하지도 않았다. 아이비에커랑 바허가 퍼뜩 떠올랐다. 인터넷만 가지고 만만해하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
 "얀덱스 택시는 타슈켄트에서나 되는거야. 타슈켄트를 벗어나면 어림도 없어."
 친구들의 말을 비웃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지는 않았다. 현지인들에게 합리적인 택시 가격을 묻고 싶었지만, 현지인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모두 출구로 나가버렸다. 나는 차선책으로 구글맵을 켜서 버스 대중교통 정보를 찾아보았으나, 러시아권 국가에서 구글맵 교통정보가 유효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물론 러시아에서 통하는 2GIS도 나에게 그 어떤 현명한 답도 주지 않았다.

부하라 기차역(부하라부터는 고속철도가 보인다)
부하라 기차역은 Kogon에 있어, 부하라 관광지(대표적으로 Ark)와 최소 23분 정도 떨어져있다.


 부하라 기차역은 부하라 시내에서 꽤나 떨어진 코곤(Kogon)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택시 타도 20분은 걸렸다. 일단 나는 부하라로 가는 택시는 차치하고 먼저 부하라 기차역 매표소로 가서 3일 후 탈 사마르칸트행 기차를 예매하기로 했다. 
 유아차와 주원이, 엄마를 모두 이끌고 출구로 나가니, 여전히 많은 택시호객꾼들이 우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그중 30대로 보이는 젊고 키 크고 선글라스를 쓴 택시 호객꾼이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왔다. 그가 영어로 말했다. 
 "부하라 갈꺼죠? 5만 숨에 갑시다."
 일단, 얘는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나는 말했다.
 "아뇨. 저희는 기차표를 끊으러 먼저 갈 거예요."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 집요하게 굴기로 작정했는지 말했다.
 "알았어요. 기차표 예매하는 곳은 저쪽이에요. 같이 가요."
 내가 언제 같이 가자고 했나. 귀찮지만, 우리가 너무 시간을 낭비하면 택시 호객꾼이 자동으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고 따로 제지하지 않았다.
 

달려드는 고객들과 화가 난 매표원
 매표원이 단 2명만 일하는 아주 작은 매표소에는 표를 끊겠다는 열정적인 고객들로 시끄러웠다. 현지인들은 Uzbek railway라는 앱이나 모바일 웹을 사용할 수 있는데, 왜 여기서 아깝게 시간을 보내지?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앱이나 웹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줄도 없었다. 매표소에 돈을 들이대면서 매표원과 말이 통하는 순으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들이대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나 한없이 기다려도 매표원에게 뽑히지 않을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알아서 하겠지 순진하게 믿고 아무 걱정 없이 나만 기다리는 엄마와 주원이가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의논할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자 순간 외로웠다. 
이런 무질서한 경쟁구조는 오래 전 중국이나 인도 여행할 때 당해보고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여권과 돈, 그리고 내 핸드폰을 매표소로 들이밀며 말했다.
 "아살람 알레이쿰."
 핸드폰 구글 번역기에는 이렇게 써져있었다. 
 "3일 후 오전 제일 빠른 거로 3장"
 아저씨는 내 핸드폰에 번역되어 있는 러시아어를 미간을 찌푸리며 보더니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여권을 타이핑해서 발권을 시작했다. 그때 표를 구하려는 또 다른 승객 아저씨가 매표원에게 돈을 건네며 말했다. 
 분명 그 아저씨도 무질서함 속에서 자신의 표 발권을 얼른 성사시키고 싶었으리라. 매표원 아저씨는 인상을 팍 쓰며 우리의 여권을 타이핑하다가, 승객 아저씨가 너무 들이대자 미간을 찌푸리며 큰소리로 화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외국인 표 끊어주려고, 복잡하게 여권번호랑 여권 이름 일일이 타이핑하는거 안 보여요? 내가 놀고 있냐고요. 바빠 죽겠구먼."
 매표원 아저씨가 어떻게 화를 냈는지, 들이대던 승객 아저씨가 움찔했다. 매표원 아저씨가 잠시후 내 핸드폰에 대고 뭐라고 얘기했다.
 "새벽 5시표인데 끊을 거예요?"
 나는 번역기에 대고 말했다.
 "시간이 너무 일러요. 더 늦은 아침 시간대는 없나요?"
 "없어요."
 그새 또다른 승객이 돈을 들이대며 매표원 아저씨에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매표원 아저씨가 화가 나서 다시 인상을 쓰며 그 승객에게 말했다. 나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놀고 있는 거로 보여요? 이 외국인 우즈베크어도 못해서 지금 번역기로 일일이 대화해서 바빠 죽겠구먼. 기다리라고요. 제발."
 그러더니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저씨의 대화내용이 구글로 번역되어 나에게 전달되었다.
 "표 살꺼에요?"
 나는 순간적으로 패닉이 왔다. 이미 나는 수많은 승객들과 매표원의 시간을 빼앗고 있었다. 바쁜 승객들은 줄도 없이 끊임없이 들이대고 있는데, 매표원도 참을성이 바닥이 났다. 새벽 5시 표라니 도대체 이 기차를 타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나, 다른 대안은 없나, 오후 기차는 없나 여러 번 더 물어봤었어야 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자 생각의 여유도 모두 사라졌었나 보다.
 "네. 끊어주세요."
 잠시후 오전 5시 37분 기차표가 3장 나왔다. 일단 화난 매표원을 떠나 기차표 시간을 바꿀 수 있는지 찾아보아야지.

 

집요하게 따라온 뺀질이 택시호객꾼
 뒤를 돌아보니 우리에게 들이댔던 젊은 택시 호객꾼이 아직도 매표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눈 마주치자 말했다. 
 "오만숨에 부하라. 가시죠."
 "오만숨이요? 너무 비싸요. 말도 안 돼요."
 그 호객꾼은 말했다.
 "5만숨이요? 비싼 것도 아니에요. 부하라 얼마나 멀다고요. 여기 동네 다른 택시 아저씨들에게 물어보세요. 다 5만 숨이요. 됐죠? 가시죠."
 "비싸요. 좀만 깎아주세요. 3만 숨 어때요.?"
 "아니, 뭐 5만숨 가지고 그래요. 1-2만 숨 더 주는 게 그렇게 큰 차이인가요? 외국인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일 텐데."
 이런 대화를 3번 정도 반복한 끝에 우리는 4만5천숨으로 합의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1만 숨 정도면 충분히 부하라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관광객 호구 가격을 제시한 그 남자차로 가자, 또 다른 자신의 친구가 운전 보조석에 앉더니 히히덕 꺼리며 대화를 나눴다. 우리에게 사전 협의되지 않은 합승이었다. 
 뺀질이같이 생긴 30대초반으로 보이는 운전기사는 그래도 꽤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우즈베크에서는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꽤나 드물기 때문에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물어보니 대학교에서 배웠다고 한다. 택시는 부업인 셈이다. 우리가 호텔을 알려주자, 꽤나 유명한 호텔도 아닌데도, 택시기사는 어딘지 알겠다며 자신만만해했다. 
 15분 여, 코군 지역을 통과해서 부하라 성이 슬슬 나왔다. 우리 호텔은 부하라 성 안에 있는데, 부하라 성 내부까지는 차량이 들어가지 못했다. 본래 부하라 성 내부는 차량 진입이 어려운 데다, 오늘 부하라 성 내부에 행사가 있는 관계로 외부차량은 진입이 아예 안 된다고 한다. 가뜩이나 호구 가격으로 여기까지 택시 타고 왔는데, 부하라성 안 저 멀리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텔까지 걸어가라니. 뺀질이 택시기사는 내가 너무 어이없어 하자, 차량 진입이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지, 영 그러면 여기에 차를 세우고 자신이 걸어서 호텔까지 데러다 주겠단다. 뺀질이 택시기사는 오면서 친구랑 같이 담배도 뻑뻑 피워대고, 돈도 3배로 받아서 그런지 더 이상 같이 동행하기 싫었다. 
 우리는 짐을 다 내리고, 유아차를 끌고 더운 땡볕에 나무 한 그루 안 심어져 있는 부하라성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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