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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있는 부하라성
히바에서부터 하루 종일 식사 다운 식사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히바 성 매점에서 산 자두와 토마토, 오이, 그리고 현미 뻥튀기로 7시간의 기차와 숙소까지 찾아오는 1시간을 버텼다. 주원이가 배고프다고 하지 않는 게 용했다. 한 발짝도 떼기 힘든 피로였지만,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외출을 하기로 했다.
숙소가 걸쳐있는 골목길을 통과하니 부하라 성의 정돈된 관광지가 펼쳐졌다. 더위만 아니면 진심으로 너무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의 깨끗함과 아랍 특유의 화려함, 그리고 역사가 주는 고즈넉함이 빛나는 부하라 시내였다. 진정 사막 한복판에 있는 것 같은 히바성을 벗어나, 그래도 조금은 도시스러운 부하라에 오니 마음이 한결 안심이 되었다.
10여분 걸었을까. 부하라성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가 나오더니, 곧이어 부하라성의 관광포인트인 라비하우스가 나왔다. 라비 하우스의 라비는 연못 근처라고 한다. 즉 연못으로 둘러쌓은 집이다. 히바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물웅덩이가 보이니 쾌적함이 더했다.
라비하우스 근처에는 나무들이 울창한 공원도 있었고, 관광객들을 위한 아름다운 벤치들도 많았다. 나무를 이렇게 뼛속까지 그리워했는지 히바를 탈출해서야 느꼈다. 공기 중에 물기가 느껴지는 부하라가 주는 느낌은 신선 그 자체였다.
부하라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다
부하라가 주는 분위기는 신선해졌지만, 히바에서 뜨거운 건사우나 날씨와 추운 에어컨 사이를 오고 간 엄마는 영 컨디션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마른기침과 콧물이 난다고 했다. 엄마는 버틸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부하라의 약국으로 향했다. 다행히 라비하우스 근처에 약국(우즈베크어 : dorixona)이 바로 있었다. 약국은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안 틀고 있어, 내부가 건조하고 약간 더웠다. 가게는 열어놓은 채 약사는 어디로 갔는지, 남자 손님 한 명만 우두커니 벽 창문에 기대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까, 잠시 후 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 약사가 나타났다.
엄마는 약사에게 마른기침 몇 번을 하고, 코를 푸는 시늉을 함으로써 나나 번역기의 도움 없이 자신이 감기 증세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는 걸 보더니 약사가 바로 종합감기약 알약과 마시는 감기약, 코 스프레이 등 자신이 파는 감기 관련 6개의 제품을 몽땅 가져왔다. 약국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외국인인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던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현지인 남자가 우리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감기약을 찾고 있는 거죠?"
약사는 남자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표정이 한결 좋아지더니 약을 하나하나 손으로 들어 약 설명을 시작했다. 감기약의 전형적인 표지그림만 보더라도 뻔히 알 수 있는 것들, 가령 코 스프레이는 코에 뿌리라던가, 시럽은 목이 아플 때 먹으라던가 등의 설명을 굳이 하나하나 해주기 시작했고, 그 남자는 성심성의껏 약사와 우리를 번갈아보며 또 하나하나 영어로 통역해주기 시작했다. 그 설명을 모두 듣고는 6개의 약 중에 일부 구입할 약을 골라야 할 때 덥고 좁은 약국에 도착한지 이미 15분은 넘은 느낌이었다. 우즈베크에서는 영어 잘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기에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영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영어관련 일을 하시는거에요?"
"네, 저는 이 부근에서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우즈베크 여행에서 우리가 만난 현지인 중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물어보면 영어강사, 영어가이드 등 거의 영어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영어에 대한 친숙도가 매우 낮았다.
약사는 우리가 고른 4개의 약을 식후 3번 먹으라는 등의 설명을 다시 남자를 보며 하기 시작했고, 남자는 또다시 통역해주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분명 약국에 간단한 약을 사러 왔을 텐데, 외국인 잘못 만나서 이 더운 약국에서 벌써 20분째 우리에게 통역해주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는 자신이 영어로 외국인을 도와준 것에 있어서 나름 뿌듯해하는 듯했다.
감기가 무서운 엄마는 4개의 약을 모두 구입했고, 미화로 35달러나 지불했다. 약값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비쌌다. 우즈베크 물가와 우즈베크 현지 GDP를 생각했을 때, 현지인들에게 이 가격은 너무 비싼 거였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더 비싸게 판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약들이 이 가격이라면 분명 많은 약을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게 아닐까.
약을 사고는 '매일 저녁 7시 무료 현지 전통춤 공연'이라는 영어 포스터를 크게 붙인 식당에 들어갔으나, 주인장은 머쓱해하며 단체관광객들이 올 때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식당이 텅 비었는데, 포스터만 보고 공연을 기대한 우리가 참 순진했다. 우리는 어두운 정적 속에 렌틸콩 수프를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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