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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투어버스를 기대하며 들뜬 우리들
 오늘은 부하라의 2층 시티투어버스를 탈 생각에 아침부터 기운이 났다. 전날 라비하우스 맞은편 건물에서 시티투어버스 매표소를 봤기 때문이다. 매표소는 닫혀있었지만, 그건 아마 우리가 저녁 늦게 온 탓이리라. 물론 히바보다야 낫지만 부하라도 만만치 않게 더웠기에,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다면 유아차를 하루종일 끌고 다녀야 하는 우리에게 2층 시티투어버스 광고가 주는 안도감은 어마어마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중앙아시아 특유의 조식, 이미 질려버린 둥근 빵, 사탕, 잼, 설탕, 달짝지근한 우유죽 조합의 식욕 뚝 떨어뜨리는 음식들 앞에서도 시티투어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많이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은 수차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오늘은 여행자 안내센터에 가서 부하라 지도도 무료로 받고, 투어도 신청하는거야. 그리고 부하라 관광패키지를 끊어서 편하게 다니는거야.'

 2층 시티투어버스가 있을 정도면 어느정도의 관광인프라가 이미 조성되어 있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조식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시티투어 버스 가격을 알아보고자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부하라의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홈페이지(https://www.bbstravel.uz/en/tours/bukhara-city-tour)에 의하면, 부하라 시티투어버스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없었지만 무려 8개의 외국어가 제공되고, 2일 연속 탈 수 있는 패키지도 있었으며, 홉인 홉 아웃 제도로 내렸다 탔다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버스가 너무 예뻤다. 주원이가 그림책에서 보았던 빨간 영국 런던 느낌의 더블데커였다. 
 시티투어버스를 결제할 수 있는 비자카드와 미국달러를 챙겨가지고 신나게 호텔을 나섰다. 벌써부터 해가 쨍쨍했다. 

부하라 시티투어버스 광고



 "한국인 아니세요?"
 발걸음이 바빴다. 시티투어버스를 놓치면 라비하우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지 모른다. 주원이와 엄마가 시티버스 방향으로 저만치 앞서가고, 나는 지도를 보며 혼자 이것저것 찾아보고 있을 때였다.
 "한국인 아니세요?"
 부하라성을 지나가던 3명의 현지인 무리 중 젊은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어가 반갑긴 했지만, 시티투어버스 때문에 마음도 바쁘고 주원이와 엄마도 저만치 앞서가느라 따라가야 하는 판국에, 나에게 말 거는 한국어가 조금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반가워하는 현지인들에게 틱틱댈 수는 없었다. 
 "네, 맞아요."
 "저도 5년만에 한국에서 왔어요. 너무 반가워요. 여기 여행 오신 거예요? 여기 부하라에서 한국사람 처음 봐요."
 앞을 보니 주원이와 엄마는 내가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했는지 이미 골목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내가 현지 유심도 없는데, 엄마는 이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 갈 길 가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는 뭔가. 나의 30대 후반 짬밥내공으로 대화내용만 기반으로 파악해보건대, 아마 이 젊은이는 한국에서 유학하는 학생 같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자신의 고향에서 한국인을 만나 진정으로 반가워하는 듯했다. 나도 고등학생 때 외국을 처음 나가 캐나다에서 2달 만에 왔을 때, 한국에서 만나는 모든 캐나다인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마치 가족 만난 듯 반가워하지 않았나. 발걸음이 바쁘지만 이 우즈베크 유학생의 반가움이 이해가 되었기에, 나에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네, 맞아요. 가족들이랑 부하라에 놀러왔어요."
 "아. 그래요? 언제 우즈베키스탄에 왔어요? 부하라에 뭐 타고 왔어요? 얼마만큼 부하라에서 여행할 계획이에요."

하루종일 구름 한점 없는 땡볕 더위, 부하라의 7월초 아침


 날이 더웠다. 해가 쨍쨍 비추는 이 더운 한낮에 이 학생이 건네는 질문은 너무 많았다. 학생의 양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학생의 부모 같았다. 학생의 부모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이어가며 외국인과 거침없이 대화하는 아들을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학생에게 지금 나와 대화하는 순간은 부모님에게 위상을 세워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미치자, 귀찮은 마음을 조금 누를 수 있었다.
 "네. 부하라에는 기차타고 왔어요."
 "아, 정말요? 부하라도 공항이 있는데, 비행기 타면 엄청 빨라요. 모르셨구나."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왜 부하라에 비행기 타지 않고 왔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무지한 외국인 관광객으로 오해받기로 작정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한국사람들이 정말 친절하게 저를 많이 도와줬거든요. 누나 혹시 텔레그램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다 알려줄게요."
 다행히 연락처 교환으로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대화를 끊낼 수 있을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내 핸드폰을 내밀었고, 그 청년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입력했다. 
 "저는 알로우딘이에요. 누나, 아무 때나 연락하세요. 제가 다 도와줄게요."
 "네, 정말 고마워요. 만나뵙게 되어 정말 반가워요."
 자신의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알로우딘의 부모와 한국어 하는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되어 자랑스러워하는 알로우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황급히 골목으로 사라져 버린 엄마와 주원이를 찾아 나는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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