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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친구 집에서 언제 일어서면 되나요?"
나는 아이비에커네 초대를 받고 잔뜩 긴장해서 우즈베키스탄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알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플로프가 나올 거예요. 오늘 선물로 케이크를 사가잖아요?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집주인이 선물 받은 케이크와 차를 내오면 그걸 먹고 나서 일어나면 됩니다."
무슬림은 손님을 환대하고, 손님이 마음껏 머무르도록 허용한다고 했기 때문에 눈치껏 일어나는게 중요할 것 같았다. 아저씨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는 아이비에커가 약속한 6시 무렵 잔뜩 긴장을 해서, 내가 사 온 초콜릿 케이크를 냉장고에서 빼내고, 주원이의 신발을 신기고,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6시가 되어도 아이비에커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아이비에커한테 전화가 왔다.
"은주, 잘 쉬었어? 나 대신 오늘은 바허가 너를 데리러 갈꺼야."
오늘 잠깐 느낀거였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시 약속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 듯했다. 모든지 대략적인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약속했던 6시가 훌쩍 넘은 7시 무렵 바허가 퇴근하고 차를 몰고 우리 숙소 앞에 도착했다. 멀대같이 키가 크고 착한 바허와는 거의 16년 만이었다. 차에서 내린 바허가 사람 좋은 미소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씹었을 때의 차가움은 없고, 이게 진짜 바허지 라는 따뜻한 미소만 가득했다. 바허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만큼 인자해 보이고 성숙하고 멋있어졌다. 시력이 안 좋아졌는지 안경도 썼다. 바허의 차 역시 아이비에커 차처럼 쉐보레였다. 우즈베키스탄은 쉐보레가 지배하고 있었다.
도대체 우즈베키스탄은 왜 쉐보레 판이 되었을까?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우즈베키스탄이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불과 1년 후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한국 기업 대우가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다고 한다. 즉, 우즈베키스탄 사람 입장에서는 쉐보레가 국내 생산 자동차인 셈이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관여된 산업이어서 그런지, 해외 자동차를 타려면 관세를 어마어마하게 물어야 하기 때문에, 쉐보레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바허는 가는 길에 화덕에서 직접 빵을 굽는 곳에서 초대에 응하는 선물로 레뾰쉬카 2개를 샀다. 트렁크에는 이미 아이비에커네 줄 초콜릿 등 간식 상자가 있었다. 골목골목을 10분 지나쳤을까? 타슈켄트의 서북쪽 지역으로 들어서자 어마어마한 타슈켄트의 부촌이 나타났다. 서울로 치면 성북동과 같은 으리으리한 집촌이었다.
무슬림들은 막내아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막내아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생활비도 드리고 깍듯이 모시다가, 모든 재산을 막내아들이 물려받는 구조였다. 일단 집이 해결되니, 목돈 들어갈 일이 없어, 크게 저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오전에 들은 설명에 의하면, 아이비에커네는 본래 아이비에커의 형네 부부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아이비에커가 결혼하면서 형네 부부는 안디잔으로 이사 가고, 자신이 이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15년 전 아이비에커네 아버지는 대학교 교수라고 했는데, 타슈켄트 토박이인만큼 엄청난 규모의 집에 살고 있는 듯했다. 사실, 이 집뿐만 아니라 타슈켄트의 주택들은 모두 규모가 서울에 비해 엄청 컸다. 더워서 그런지 그늘을 만드는 게 담벼락의 최고의 목표인 냥, 담벼락의 높이도 어마어마했다. 외부에서는 내부를 절대 한치도 들여다볼 수 없었다. 궁전 같은 집들이 쭉 지나갈 때쯤 아이비에커네 집에 도착했다. 아이비에커는 자신의 딸을 안고 우리를 맞이했다.
부촌에 들어서면서 예상은 했지만 아이비에커네 집은 정말 컸다. 우리나라 서울로 치면 재벌이나 이런 집에 살 것 같아 보였다. (물론 타슈켄트에 이런 어마어마하게 큰 집은 기본적으로 많았다.) 2층짜리 집에, 아름다운 정원에, 층고가 높은 1층에, 지하실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갑갑하지 않을 넓은 집이었다. 아이비에커가 이렇게 잘 살았다니, 서안에서 유학할 때는 돈이 없어서 맨날 같은 옷만 입었던 아이비에커였는데 정말 의외였다.
층고가 높은 1층에는 층을 받치는 어마어마한 기둥이 4개나 있고, 거실 한복판에는 아름다운 카페트가 깔려있었다. 1층 중앙에는 아이비에커의 부모님 사진이 어마어마한 액자에 꽂혀있었다. 집안의 중심은 부모님이라는 게 보이는 부분이었다. 1층 한복판에 커다란 둥근 탁자 위 이미 손님 대접할 아름다운 식기들과 간식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안쪽에 아이비에커 아버지 옆에 성제 오빠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사실, 아이비에커네 초대를 받고 나는 숙소에 오자마자 긴급하게 성제 오빠에게 전화했었다.
"성제 오빠, 저 혹시 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아이비에커네 집에 초대받았는데 오빠도 꼭 오세요."
나는 숙소에 도착해 성제오빠에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결국 그렇게 되었구만."
성제 오빠는 웃긴다는 듯 허허 웃어넘겼다.
"네, 어쩌다 아이비에커랑 연락되어서 만나게 되었어요. 저 혼자 가면 정말 너무 뻘쭘할 거예요. 오빠, 제발 도와주세요."
"그래. 알았다."
약간의 러시아어 튀르크계어를 할 수 있는 성제 오빠가 있어야 그나마 아이비에커네 부모님과 할 얘기 없을 때 가교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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