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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는 아이비에커 아버지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초대한 집주인의 최대 어른인 아이비에커 아버지는 두 손을 모아, 사람들의 모임을 축복하는 기도를 올린 후, 두 손을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는 모두 아이비에커 아버지의 기도 의식에 맞추어 동일한 의식을 함께 했다. 


 아이비에커네 어머니를 보니 나도 모르게, '아, 저분이 15년 전 아이비에커한테 "외국인 며느리는 안 돼", 17년 전에는 "배우자는 반드시 무슬림이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신 그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를 직접 보셨다면 동일하게 반대하셨을까라는 생각과, 내가 당신이 반대하셨던 그 여자라는 걸 아이비에커 어머니가 아실까 하는 생각과, 내가 아이비에커와 그런 단계까지 안 가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한꺼번에 들었다. 물론, 아이비에커 아내분이 너무 아름다우시고 젊으셔서 알 수 없는 질투도 났다. 아무리 오래된 전남친이고 나도 결혼을 했다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물론 티는 하나도 내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이 자리에서 나도 참 괜찮은 여자이고, 아이비에커가 나를 놓친 걸 후회하도록 제일 멋있고 정중하고 친절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식탁에는 이미 아름다운 식기들과 함께 노란 무화과, 과일, 자두, 견과류 등이 세팅되어 있고 두 가지 종류의 샐러드가 배치되어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자, 와인잔에는 음료수를 따라주었고, 아이비에커네 아버지가 우리에게 각각 차를 따라주었다. 아이비에커네 어머니와 아이비에커 와이프는 기도가 시작되자, 음식을 부엌에서 내오느라 자리를 바로 떴다.

식전 테이블세팅


 아이비에커는 내가 채식을 하는 것을 가족들에게 재차 당부했는지, 식사 내내 내가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다만 음식이 나올 때마다 아이비에커는 나에게 재차 "이건 고기 없어. 안심하고 먹어도 돼."라고 강조해서 말하는 바람에, 은근히 나를 면박 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 

 식사자리에는 아이비에커네 아버지, 아이비에커와 바허, 성제 오빠와 나, 그리고 주원이와 엄마가 있었다. 아이비에커네 아버지는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를 구사하고, 아이비에커와 바허는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와 중국어를 구사하고, 나는 중국어와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고, 주원이와 친정엄마는 한국어만 구사하니, 이 식사자리에서 가장 자유로운 건 러시아어와 위구르어와 중국어와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는 성제 오빠가 제일이었다. 성제 오빠는 위구르어를 주로 잘하는데, 위구르어 계통 튀르크어족은 천천히 말하면 대충 문맥은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튀르크어족의 언어 비율(https://namu.wiki/w/%ED%8A%80%EB%A5%B4%ED%81%AC%EC%96%B4%EC%A1%B1)


 식사자리의 가장 윗 분인 만큼 아이비에커네 아버지가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우즈베크어나 러시아어로 말씀을 하시면, 아이비에커가 중국어로 나에게 통역을 해주고, 아이비에커는 또 내가 엄마와 주원이에게 한국어로 통역하는 걸 기다리는 걸로 대화의 순서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한번 하는데도 정말 오래 걸렸다. 대화가 우즈베크어-> 중국어-> 한국어 순으로 진행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제 오빠가 우즈베크어-> 한국어로 바로 통역을 해주는 게 제일 좋으나, 성제 오빠는 위구르어를 주로 잘 알기 때문에 우즈베크어를 모두 알아들을 만한 수준은 아닌듯했다. 천천히 말하면 대략적인 문맥은 알아듣는 정도였다. 성제 오빠의 러시아어도 통역할만한 수준은 아닌 듯했다. 무엇보다도 성제 오빠는 긴장하고 불편해 보였다. 아이비에커와 17년 전에도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데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니 더 불편한 모양이었다. 성제 오빠는 아이비에커 아버지가 말씀을 하시면, 나에게 아주 짧게 통역을 해주거나 줄곧 먹기만 했다. 성제 오빠는 먹다가도 그나마 이 자리에서 가장 편한 나에게 "음식이 정말 진수성찬이구나.", "배불러서 이거 오늘 어떡하냐."등을 한국어로 말하고는 말이 없었다.

 

 아이비에커 아버지가 "음식은 좀 입에 맞으세요?"라고 우리 엄마에게 물었을 때, 그 말은 우즈베크어, 중국어, 한국어 순으로 엄마에게 전달되었고, 엄마가 "네, 다 정말 신선하고 맛있어요."라는 말을 하자마자, 그 말은 다시 한국어, 중국어, 우즈베크어 순으로 전달되었다.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자, 식탁은 음식이 나오면 조용히 먹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누가 한 마디라도 할 것 같으면 긴긴 통역의 시간을 거쳐 대화가 오고간 다음 다시 침묵으로 들어섰다. 그나마 엄마가 "여기 아이비에커 아버지도 그렇고, 아이비에커도 그렇고 정말 다 미남이세요."라고 했을 때, 통역하는 아이비에커가 매우 쑥스러운 표정으로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자화자찬을 아이비에커네 아버지에게 통역할 때 분위기가 살짝 좋아졌었다. 이 와중에 나는 '아이비에커는 자기가 잘 생긴 걸 몰랐던 건가?', '아이비에커 얼굴이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닌가?'라는 어이없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릴 적 서안에서 아이비에커를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잘 생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주원이는 통역만 길게 이어지는 이 자리를 매우 지루해 했다. "할머니, 이제 집에 가자.", "택시 언제 와요?", "할머니, 이제 호텔 가자." 등 식사가 시작되고부터 친정엄마만 바라보며 집에 가자고 보채기 시작했다. 주원이는 배고프지도 않은지 아이비에커 와이프가 내오는 음식을 조금 먹다가 "이제 배불러요. 안 먹을래요."를 반복했다. 친정엄마는 주원이에게 "밥 먹고 가는 거야. 이거 좀 먹어봐. 맛있어."라고 달래 가며 주원이가 앉아있도록 노력해주셨다. 나는 가뜩이나 이 자리가 불편한데, 주원이까지 불편해하니, 이 난관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 몰랐다. 주원이는 결국 5분을 못 버티고, "할머니, 저 똥 마려워요."라는 말과 함께 화장실로 향하며 친정엄마와 함께 식사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식사자리에 남은 사람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아이비에커 아버지, 말없이 먹기만 하는 성제 오빠, 착하지만 원래부터 과묵한 편인 바허, 아버지 말을 통역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아이비에커, 그리고 나였다. 결국 손님으로 분류되는 성제 오빠가 주도적으로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으로써 아이비에커 아버지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었다. 

  내가 반드시 대화를 해야만 한다면, 아이비에커 아버지랑 단독으로 통역의 장벽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는 우즈베크 유심이 있는 엄마의 핸드폰을 빌려, 아이비에커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 통역기를 가동했으나, 구글 통역기는 우즈베크어 음성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비에커 아버지의 말을 직접 알아듣는 것은 어려웠다.  그나마 간단한 말은 성제 오빠가 한국어로 바로 통역해주었다. 아이비에커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건 말건, 아이비에커 아버지가 말씀하실 때는 내가 진심으로 듣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끄덕였다. 곤란한 나의 상황은 모른채, 바허와 아이비에커는 이런 내 모습이 웃겼던지 중국어로 "오, 은주, 이제 감으로 우즈베크어를 알아듣기 시작한거야?"라며 놀려댔다. 

 나는 적어도 내가 말하는 것은 아이비에커를 통해서 아이비에커네 아버지에게 전달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이비에커의 통역을 거치는 것은 아이비에커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뺏기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구글 통역기에 쓰고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아이비에커네 아버지에게 직접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아이비에커네 아버지에게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도 이렇게 뻘쭘한 상황에서... 그러나 나는 회사 짬밥 13년, 아줌마 짬밥 9년 아닌가. 집주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건 칭찬밖에는 없다. 
 "정말 집이 멋지세요. 제가 티무르 황제네 집에 온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구글 번역기에 써서 러시아어로 번역한 화면을 아이비에커네 아버지에게 보여드리자, 아이비에커네 아버지가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구글 번역기에서 이어 흘러나오는 기계음성 번역을 듣고 성제 오빠, 아이비에커, 바허도 모두 웃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기야말로 썰렁했던 테이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감사합니다. 사실 이 집은 제가 다 설계과정에 참여했어요. 이 집을 보려고, 타슈켄트 시장님도 방문하셨답니다." 
 사실 실용성보다는 외관을 중시한 집만 봐도 딱 알 수 있었다. 아이비에커네 아버지가 명분과 체면을 중시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칭찬하는 전략이 통한 듯하였다.
 그다음은 음식 솜씨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졌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하니, 아이비에커가 자기 와이프가 음식을 잘한다고 칭찬에 화답해주었다. 


 칭찬거리가 다 떨어지자, 나는 내가 앞으로 갈 히바, 사마르칸트, 부하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이런 도시에 가보셨냐고 아이비에커네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이비에커네 아버지는 과거 히바에는 출장으로만 가봤을 뿐 여행에 대해서는 일절 아시는 바가 없었다. 이는 바허나 아이비에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왠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문화유적 답사를 목적으로 여행은 거의 가지 않는 듯했고, 여행을 휴양의 개념으로만 접근하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지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던질 수 없었다. 


 나의 대화 소재도 슬슬 바닥날 무렵, 대화의 표적은 성제 오빠에게로 향했다! 아이비에커네 아버지가 성제오빠에게 "아직 결혼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는데, 우즈베키스탄 여자 소개해줄까요?"라고 물은 것이다. 곤혹스러워하는 성제 오빠를 대신해서 내가 성제 오빠가 좋아하는 이상형을 구글 번역기로 알려주자, 다들 흥미로워하며 진심으로 찾아봐주겠다고 했다. 성제 오빠의 우즈베키스탄 여자 찾기 이야기로 10분 즈음은 대화의 공백을 채울 수 있었다. 나중에는 내가 식탁에 올려있던 매운 고추를 잘못 먹어서 헥헥 대느라고, 다들 그걸 보면서 한참 웃는 것으로 또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나는 계속 웃었고, 계속 이야기했고, 누가 어떤 말로 말하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이 날 식사자리의 대화가 매우 어렵고, 불편했다. 15년 만에 만난 친구들, 그것도 그중에는 전남친이 있고, 전남친 부모님이 있고, 전남친 와이프도 있고, 우리 엄마도 있고, 우리 애도 있고, 할 말도 없고, 할 수 있는 공통 언어도 없고, 음식도 안 맞고, 정말 안 불편하면 비정상 아닐까? 그러나 나는 구글 번역기에 의존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모두 끄집어내서 최선을 다했다.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회사 인터뷰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처럼, 상견례 자리에서 최대한 격식을 지키는 것처럼... 나는 웃고 있었지만, 알고 보면 그 모든 것은 노력이었다. 나중에 숙소에 도착했을 때 성제 오빠는 지친 나를 격려해줬다. 
 "그래도 은주 네가 구글 번역기 써서 웃기는 바람에, 분위기가 매끄러웠다. 정말 고생했어."
 친정엄마도 성제 오빠의 격려에 말했다.
 "그럼요. 중학생 때 얘 담임이 말했답니다. 얘는 어딜 가나 사랑받을 애라고요."
 그런데, 칭찬이고 뭐고 정작 나는 너무 힘들었다. 노력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오히려 할 말 없을 때 침묵할 수 있는 성제 오빠의 솔직함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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