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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 응용미술박물관에 있을 때 아이비에커한테 연락이 왔다.
"오늘은 바허가 집에 너네를 초청한다고 하거든. 이따 저녁에 내가 숙소로 데리러 갈게. 이따 봐."
바허한테는 5살 딸, 7살 아들이 있었는데, 그나마 주원이 또래의 친구가 있는 곳에 간다고 하니 반가웠다. 어제처럼 케이크를 살까도 생각했으나, 선물이 어제와 겹치면 안 될 것 같아 바허네 아이들 아동복과 초코파이 4 상자를 샀다.
7시경 아이비에커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어제는 하얀 차였는데, 오늘은 검은 차였다. 차에 관심이 많은 주원이가 먼저 반응했다.
"아이비에커 삼촌 차가 오늘은 검은색이네?"
역시 쉐보레였다.
"이건 내가 아버지에게 사드린 차야. 내가 어제 탔던 차가 고장 나서 수리 맡겨서 오늘은 이거 타고 왔지."
우즈베키스탄의 월급 대비, 차가 2대가 있을 정도로 아이비에커가 돈을 잘 번단 말인가? 부잣집 아이비에커가 좀 더 낯설게 느껴졌다.
우즈베키스탄은 연애 전 양쪽 부모님 승낙부터
나는 조금씩 아이비에커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중매결혼이 대부분이라고 하던데, 너도 중매결혼이니?"
아이비에커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난 아냐. 난 연애결혼이야. 취업을 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우리 엄마가 중매결혼 상대로 프로필을 주면서, 어느 대학교에 가서 만나보라고 했거든. 그런데 교문 앞에서 예쁜 여자가 친구들하고 나오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말을 걸었는데 그 여자가 무시하더라고. 그래서 그 옆 친구들에게 얘기해서 그 여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냈고, 연애하기 위해서 우리 친척을 그 여자네 집에 보내서 결혼 전제 연애 승낙을 받아냈지. 그래서 나는 연애결혼이야. 바허는 중매결혼이지"
그가 말하는 연애결혼은 우리나라의 연애결혼과 차원이 달랐다. 일단 부모님의 동의부터 얻고 집안끼리 합의가 된 상태에서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중매결혼이 아닌 우즈베키스탄만의 연애결혼을 했다는 것에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차원이 다른 우즈베키스탄의 결혼관이 신선해 나중에 인터넷에 찾아보니, 실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연애결혼을 하더라도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의 허락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한다. (출처 : https://diverseasia.snu.ac.kr/?p=5615)
우즈베키스탄 청년들의 연애결혼 | DiverseAsia
갈라노바 딜로자(호남대) 결혼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청년들의 인식 우즈베키스탄 청년들의 결혼출처: 저자 제공 가족은 한 사회의 일부이다. 따라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영적으로 성숙하며 도
diverseasia.snu.ac.kr
그리고 이슬람 율법상, 부모의 동의 없이 연애하는 것은 하람(haram: 아랍어로 종교적·도덕적·윤리적 금기사항을 의미)이라고 한다. 만약 결혼을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17년 전 아이비에커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나와 있었던 일들은 모두 하람이 아닌가. 내가 외국인이라서 나를 가볍게 대한 건 아닐까.
17년 전 서안에서 함께 대화하던 어느날, 아이비에커는 나에게 코란을 읽어보라고 했다. 코란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잘 적혀있어서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또 어느 날은 자신이 PC방에 가서 엄마와 대화를 했다고 하면서 이슬람을 믿는 여자를 사귀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그때 아이비에커를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결혼하기 전 7명의 남자를 만나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비에커와도 감정을 교류하는 것이 하나의 경험이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HSK 고급을 따겠다는 목표에 충실해서 생활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코란이라니... 이건 뭔 헛소리인가. 내가 얘랑 엮이니 별 말을 다 들어본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17년 후 지금 아이비에커의 연애 결혼관을 듣고 보니 혹시 그때 나에게 코란을 읽으라는 것도, 나를 결혼대상자로 고려는 조금 해봤다는 게 아닐까.
7살 어린 우즈베키스탄 아내
"내 아내는 나보다 7살 어려. 우즈베키스탄은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7살 정도 어리게 만나는게 대부분이야. 바허도 와이프랑 7살 차이이고,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우즈베키스탄은 여자가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고, 하루종일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어느 순간 남자와 여자의 결혼연령의 차이가 남녀평등과 비례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남녀 간의 나이 차이가 보편적으로 많이 나는 사회는, 여자의 인권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졌다. 아이비에커가 28살에 21살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는 건데, 대학교 1-2학년 생이 뭘 알겠는가. 나도 내가 대학교 1-2학년 때를 생각해보면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내가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기준에서 배우자를 만나야 하는지 잘 몰랐다. 자신의 세계관이 충분히 세워지기 전 결혼을 한다면,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채 결혼 자체에 휩쓸리기 쉽다. 우즈베키스탄 여자들의 결혼 연령이 낮다는 건 그만큼 여성의 사회 진출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 너가 젊은 무슬림 여자를 만나려고 나를 포기했구나. 무조건 너에게 순종적이고, 부모님 잘 모시고, 애 잘 키우고 그런 게 니 이상형이었다면 어차피 나는 너랑 어울리는 상대는 아니었어.'
나는 분명 얘랑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귀국해서는 메일도 씹고 연락도 씹었으면서, 몇 개월도 안 되서 다른 남자에게 설레어 했으면서, 지금 와서 알 수 없는 질투의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질투의 감정이었다.
친정에 가려면 시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해
"오늘도 아내를 여기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말야. 아내가 한 달에 1번 정해진 날에 친정에 가거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여자가 결혼하고 나서 친정에 가려면 반드시 남편과 시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해. 결혼을 했으면 이제는 남편 집안의 가족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여자가 결혼하고 나면 결혼 전 가족들하고 자꾸 교류하면 안 된다고 보거든.
여자들은 보통 1달에 1-2번 정해진 때 친정에 갈 수 있어. 내가 처가까지 아내랑 아이를 태워다주고 앞에서 인사만 좀 하고, 집에 올 때는 또다시 태우러 가. 근데 요즘 들어서는 자기 마음대로 친정에 드나드는 여자들도 있어. 특히 집이 잘 사는 집안 여자얘들, 버릇이 없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지(惯坏了)"
나는 그의 꼰대같은 발언에 속으로는 매우 놀랐다. 친정에 가려면 시부모와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를 않나, 자기는 처가에 태워다만 주고는 집 앞에서 인사만 드리고 간다고 하지를 않나, 특히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마음대로 친정에 드나드는 여자를 버릇이 없다(惯坏)고 한 것이었다. 여자가 무슨 애도 아니고, 버릇이 없다니 이게 2022년 현대사회에서 여자에게 쓸 수 있는 말인가? 조선시대도 아니고 우즈베키스탄의 여성인권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었다. 아이비에커는 원래부터 이렇게 꼰대였나? 내가 17년 전 알던 아이비에커는 웃기고 부드럽고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완전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었다.
"그래도 아내가 친정가면 나한테 전화해서 내가 그립다고 그래. 내가 좀 예민한 편이라 새벽에 애가 울면, 와이프는 잠에서 깨지 않지만 나는 벌떡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아주거든. 근데 친정 가면 와이프가 직접 애 기저귀 갈아줘야 하잖아."
기저귀 하나 갈아주는 것 가지고도, 자신이 멋진 남자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교과서 역사책의 조선시대 파트에서 나온 것 같은 이 꼰대 옆에서,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여자로서 도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몰라, 미간을 올리고 눈을 크게 뜬 채 그저 끄덕끄덕 듣고 있다는 신호만 보내줬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 바허네 아파트에 도착했다. 바허가 아파트 주차장에 벌써 나와있었다. 아이비에커는 차를 세우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물었다.
"은주, 너는 동의하니? 너 만약 한달에 1번만 친정에 갈 수 있고, 친정에 가려면 시부모님과 남편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너는 동의하니?"
나는 흠칫 놀랐다. 우즈베키스탄을 여성인권이 매우 낮은 나라로, 아이비에커를 꼰대로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 들킨 것 같아서였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비에커도 중국에서 오래 유학한 사람으로서, 혹시 우즈베키스탄 시스템 안에서 살면서도 이런 것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음?"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미간을 올리며 아이비에커를 바라보았다.
"동의하냐고. 너는 동의하냐고.(同意吗?你会同意吗?)"
집요한 아이비에커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얘기했다. 도대체 여기서 내 동의가 뭐가 그렇게 궁금한가? 그는 왜 이렇게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집요하게 동의하는지 묻는건가?
아마도 그는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를 포기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내가 우즈베키스탄 자신의 배우자로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 바허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었다.
"아살람 알레쿰! 얼른 들어가자. 우리 집은 2층이야."
아이비에커는 나의 대답을 듣지 못한 채, 그리고 나는 위기를 탈출하듯이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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