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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로 5살짜리 아이와 친정엄마와 3달간

바허네집(2)

수서동주민의 여행일기 2022. 11. 1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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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허네 집에서는 어른이 없다 보니, 드디어 동창생이자 동갑들 간에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어제 아이비에커네서 시종일관 힘들었던 것이 아이비에커의 아버지와 어머니 상대하느라 그랬던 걸까? 우리는 동갑들끼리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번째는 물가로 흘렀다. 우리 모두 가족 부양의 의무가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여기는 수박이 정말 저렴해서 엄마가 좋아하셨어. 여기는 10000숨(1182원)이면 수박 한 덩이 사잖아. 한국은 미국 달러로 18달러 정도(한국돈 23744원) 줘야 수박 큰 거를 사거든."
 그러자 아이비에커가 한국이 너무 비싸다면서 자신도 모스크바에 있을 때 와이프가 먹고 싶은 과일이 있어도, 조금만 사다 줬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은 뭐든 비싸. 포도도 3송이에 한국돈으로 만원이고, 무화과는 더 비싸. 무화과는 정말 고급과일에 속해. 너희는 과일이 풍부한 나라에서 사니 정말 복이 많은 거야."
 내가 우즈베키스탄 칭찬을 덧붙였다. 그러다 집값 얘기도 나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아파트는 방이 3개 밖에 안 되는데, 전세가 8억이야. 이게 말이 되니? 만약 사려면 18억이나 있어야 돼. 젊은 사람들은 아예 살 수가 없지."
 '전세'는 전세계에서 한국에서만 보편적인 제도이다 보니 아이비에커는 전세 얘기를 듣고, 보증금(押金)과 비슷한 개념인 거 맞냐며 받아들였다. 역시 똑똑한 아이비에커였다. 

 두번째는 집안일 이야기였다. 이렇게 남편 없이 장기간으로 여행 나온 나를 보고는 분명 집안일도 안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나보다. 
 "보통 집에서는 빨래랑 청소는 누가해?"
 바허가 물었다. 바허 부인도 중국어로 소통하는 우리 옆에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조용히 앉아 경청하고 있었다.
 "빨래나 청소는 보통 주말에 남편이 다 하지."
 나는 핸드폰에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며 아이를 함께 보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비에커와 바허는 내 핸드폰에 찍힌 남편과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한국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해. 나도 남편도 같이 벌고, 같이 아이를 부양하고, 집안일도 나누어서 하는 거지."
 나는 덧붙였다. 바허는 나의 남편이 청소기를 돌리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는지, 이를 부인에게 통역해주느라 바빴다. 
 "그럼 너는 뭐해? 옆에서 아이고 잘 한다 박수나 치고 있는거야?"
 "나는 회사다닐 때는 너무 바빠서 집에 늦게 들어올 때가 많았어. 주말에는 드디어 내 시간이 생기니, 아침에 하루 먹을 요리는 다 해놓고, 운동하러 나가. 남편이 애 보고."
 "니네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 니네 남편한테 꼭 전해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남편이 왕이라고. 남편은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다 남편이 결정한다고."
 아이비에커는 황당하다는 느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마디 했다.
 "은주, 너는 외모는 정말 그대로인데, 어쩜 그렇게 모든 게 바뀐 거니. 정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이비에커가 말했다. 나는 17년 전 나를 사랑했던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저런 말을 하는 걸 보고, 아이비에커가 사랑했던 나라는 사람은 순종적이고, 집안일도 잘하고, 남편 말도 잘 듣는 고분고분한 아가씨 상이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아이비에커와 있을 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절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우리 사이는 싸움이 없었다. 기간도 짧았거니와, 나는 귀국하면서 그와 연락을 안 할 작정을 하고 있었기에, 아이비에커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절대 피드백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남편과 연애할 때는 정말 많이 싸웠다. 지금의 남편과는 결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그에게 단 한 번도 문제를 제기한다거나 나의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었기에, 아무래도 아이비에커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7년 전의 내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비에커도 내가 봤을 때는 상남자 꼰대가 되어 있는데, 나는 얼마나 많이 변해있을까. 

 세번째는, 러시아 전쟁 찬반 이야기였다. 
 우즈베키스탄 친구들 모두 중국과의 무역을 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번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미국과 관련한 나라들이 무역을 끊는 바람에 자신의 업종에도 어느 정도 타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이비에커가 물었다. 
 "너도 러시아 전쟁을 나쁘게 보는 거니? 너네 한국 TV에서는 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것만 보여주지?"
 나는 녹색당이며, 비폭력주의자이며, 한 엄마의 아이로써 당연히 전쟁에 반대한다. 바허도 아이비에커도 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은 사람들을 죽이잖아. 나는 당연히 전쟁이 싫지."
 "한국은 친미라서 한쪽면만 보여주지. 무슬림이 테러를 일으키는 장면이나,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장면들 말이야. 나토군이 러시아 근처 우크라이나 땅에 진입하면 러시아 전체를 언제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은 절대 안 알려주면서."
 바허는 갑자기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은주, 너 이거 봤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사실 개그맨 출신이야. 그도 또한 러시아에서 인기가 많았던 개그맨이라고. 한낱 개그맨이었던 사람이 뭘 알겠어?"
 바허가 보여줬던 동영상 속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그맨 활동 시절 사람들 앞에서 웃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실 그가 개그맨이었건, 직장인이었건, 학력이 뭐였 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만, 바허와 아이비에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판단이 안 되었다. 우리 모두, 각자가 속한 시스템이 은연중에 강요하는 프레임 안에서 사고하는 것에 불과하고, 여기서 입장을 대립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열정적으로 동영상을 보여주는 바허에게 나는 다소 무기력하게 호응했다.
 바허는 참으로 착하고 진실되고 성실된 아이인데, 그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그맨이었다는 사실을, 국가 간의 이익을 판단하는데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이비에커와 바허 모두 친 러시아 국가이며, 오랫동안 무슬림과 러시아를 비방해온 미국 언론에 염증이 나있다는 것이다. 이 대화를 도대체 어떻게 종결시켜야 할 것인가.
 "한국도 지금 휴전 상태라 남한에는 미군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야. 우리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미국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 언론도 미국 언론의 입장을 그대로 베끼는 일이 많은 것 같아. 대다수의 한국인들도 우리가 미국 우호적인 언론보도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기대어 살고, 우즈베키스탄은 러시아에 기대어 살잖아. 바라보는 언론 보도가 다르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말하자, 비로소 러시아 전쟁에 우호적인 두 우즈베크 아저씨와의 러시아 전쟁이야기는 종료할 수 있었다. 내가 한때 사랑하던 아이비에커와 바허도 아이의 아빠인데, 어떻게 민간인들이 피해 보고 있는 전쟁을 찬성할 수 있나. 나는 나와 입장이 완전히 다른 아이비에커에게 놀랐지만, 그도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정말 놀라리라. 우리는 식사자리의 평화를 위해 이 화제는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네번째는, 오줌 이야기였다. 
 인천공항에서 주원이가 오줌 발사 방향이 어긋나는 바람에 주원이의 옷뿐만 아니라 내 옷까지 젖은 얘기를 하며 말했다. 
 "내가 남자가 아니다 보니, 막 변기를 이용하기 시작한 주원이를 지도하기가 너무 어려워. 평소에는 우리 남편이 주원이 대소변 지도를 했거든. 특히 서서 쌀 때 변기 쪽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사실 남자는 앉아서 싸는게 맞아."
 아이비에커는 내 말에 진지하게 답했다. 
 "하디스(쿠란의 실천강령)에도 나와있어. 남자는 소변을 볼 때 앉아서 싸야 한다고. 근데 앉아서 소변을 봐야 잔뇨가 많이 남지 않는다고 나중에는 과학적으로까지 증명이 됐어. 코란이 모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써진 게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고."
 아니, 무슨 소변을 보는 것까지 무슬림 경전에 나와있단 말인가.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이비에커가 너무 진지하게 하는 걸 보니 정말 사실인 듯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정말 무슬림에서는 남자가 앉아서 소변을 보도록 지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주원이는 자다가 가끔 무의식적으로 성기를 만져. 그래서 자다가 오줌 실수를 하곤 해서 이불빨래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바허가 내 말을 바허 부인에게 통역해주자, 바허 부인이 대답해줬고 그걸 바허가 또 통역해줬다. 
 "그건 원래 그런거래. 그 나이 때 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래."
  아이비에커도 거들었다.
 "그래. 그건 남자 성장과정에서 그럴 수 있는 거야. 성기를 가지고 놀지만 앉으면 되지. 근데 우리 어쩌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지? 하하"
 우리 모두 자녀가 있는 부모로써 17년 전의 인연들은 뒤로 하고 진짜 다시 편한 친구가 된 느낌이었다. 

 

Is it haraam to urinate standing up? - Islam Question & Answer

Praise be to Allah. It is not haraam for a man to urinate standing up, but it is Sunnah for him to urinate sitting down, because ‘Aa’ishah (may Allaah be pleased with her) said: “Whoever tells you that the Prophet (peace and blessings of Allaah be up

islamqa.info



 "여행 갔다와서 다시 꼭 연락해."
 바허가 말했다. 
 "안전 조심하고. 다시 꼭 연락해."
 아이비에커도 우리들을 호스텔에 내려주면서 말했다.
 내가 타슈켄트에 있는 한 얘네들이 신경 쓸 것 같은데, 신세 지기 싫은 내 입장에서는 다시 연락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주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아무튼 아이비에커네 집에 있을 때보다 한 10배는 편안하게 바허네 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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