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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르겐치 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승객 대기실로 막상 나오니, 딱 분위기가 시골 버스터미널 승객 대기실이었다. 현지인들은 짐을 찾자마자 공항까지 데리러 온 가족들과 만나 뿔뿔이 흩어졌고, 대기실 의자에 남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양복 빼입은 한국인 아저씨와 우리뿐이었다. 비행기에서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어 현지인의 집에 초대받는다는 나의 시나리오는 철저히 무너졌다.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를 못하니, 현지인들과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유지되었다. 한국인 아저씨는 수차례 히바 지역으로 출장 온 듯했다. 반복에서 오는 무료함으로 얼굴이 이미 지친 상태였다. 아저씨는 딱 봐도 여행객인 우리에게 눈길도 한번 주지 않고,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휴대폰이나 보고 있었다. 아저씨는 분명 한국인이었는데, '나한테 말 걸지 마세요.'느낌을 팍 풍기고 있어서, 뻔뻔한 나조차 반가운 척을 할 수 없었다. 그 아저씨마저 현지인이 픽업 와서 떠나버리자 공항 터미널에는 우리만 남았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우르겐치 공항에 내리자 마자 택시 타고 히바로 떠난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우르겐치도 뭔가 볼 것이 있겠다 생각도 했고, 좀 천천히 쉬엄쉬엄 가자 해서 이곳에 1박을 잡은 것이다. 우르겐치에 뭔가 볼 것이 있겠지라고 판단한 건 지금 생각해보면 잘못된 판단이었다. 히바로 바로 가는 게 맞았다. 
 
 "너 히바에 아는 사람 있어? 어떻게 다니려고 그래."
 "없는데? Yandex도 있고 2GIS도 있잖아. 그거로 알아서 다니면 되지. 걱정 마."
 "Yandex나 2GIS가 타슈켄트에서나 통하지 타슈켄트를 벗어나면 어림도 없어."
 "아. 그래.. 아무튼 구글맵도 있고 하니 걱정 마."
 전날 바허네 집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정말 우르겐치에는 Yandex도 2GIS도 통하지 않았다. 당연히 미국 중심의 데이터가 만연한 구글맵도 최신화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았다. 바허나 아이비에커가 타슈켄트 말고는 여행도 몇 번 안 해본 것 같아,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은주, 너 타슈켄트 말고는 그런 외진 곳에 가면 사기꾼도 많아. 조심해야 해. 늘 안전이 중요해. 알겠어?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서 현지인을 바꿔. 알겠지? 알겠지? 꼭 유념해."
 아이비에커는 안전을 말하고 또 말했다. '지는 여행도 안 해봤으면서 남 걱정한다. 네가 우즈베키스탄 현지인이라 이거지. 나는 니보다 여행도 많이 해봤다. 니는 나를 아이 취급하지만, 나는 너랑 동갑이고 겁나 험한 인도도 갔다 온 사람이거든. 나는 우즈베크 유심도 있고, 구글맵도 있고, 맵스미도 있거든.'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우르겐치에 오니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나는 우르겐치를 몰랐다. 타슈켄트에서는 아이비에커를 만난 순간 내 머리가 혼돈으로 가득 차서, 온통 과거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우르겐치에 대한 준비도 거의 하지 않았다. 
 
 공항 승객대기실 옆 한 사무실에 tourist information이라고 그나마 써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르겐치 현지 지도도 받고, 여행사도 소개받고, 또 호텔까지 가는 택시비 덤터기 안 쓰도록 가격도 물어봐야지! 하면서 호기롭게 들어갔다. 하지만 사무실은 문이 열려만 있다 뿐이지 사무실 불조차 켜져있지 않고, 당연히 상주하는 직원도 없었다. 그나마 사무실 한가운데 책상에는 브로슈어가 난잡하게 잔뜩 펼쳐져있었는데, 그건 현지지도도 현지 관광안내서도 아니고, 그냥 레스토랑이나 호텔 홍보였다. 우리가 예약한 우르겐치 'REAL HOTEL' 브로슈어도 거기 있었다. 공항 밖을 내다보니 승객들도 없는데 택시 호객꾼들로 붐볐다. 우리가 아무 정보 없이 나갔다가는 택시비 호갱이 되기 십상이었다. 나는 AirBNB로 예약한 리얼호텔 브로슈어를 집어 들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거기 예약한 사람인데요. 혹시 공항에서 당신 호텔까지 택시로 얼마 얘기하면 되요?"
 다행히 리얼호텔 종업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영어가 잘 통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호텔을 예약했다고요? 뭘로 예약했죠?"
 "에어비앤비로 예약했죠."
 "우리는 에어비앤비 안 쓰는데요?"
 영어는 잘 통한 종업원과의 통화도 자꾸 산으로 갔다.
 "알겠어요. 일단, 그건 가서 얘기하고요. 거기까지 택시로 얼마나 걸리고 얼마 내야 하냐고요."
 "여기까지 택시타면 10분도 안 걸리고요. 10000숨 정도 내면 될 거예요."
 나는 전화를 끊고 엄마와 주원이를 챙겨 택시호객꾼들의 바다로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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