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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로 5살짜리 아이와 친정엄마와 3달간

바허네집(1)

수서동주민의 여행일기 2022. 11. 1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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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허의 집에 가니 무려 4명의 아이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바허의 아이들 2명, 바허 아내의 쌍둥이 자매 아이들 2명이었다. 바허 아내가 셋째를 임신 중이어서, 손님 접대를 도우러 바허 아내의 자매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출동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아파트는 손님 접대실이 가장 크다

 외관을 보아하니 딱 우리나라 주공아파트 스타일이었지만 우즈베키스탄 아파트는 확실히 구조가 달랐다. 한국의 아파트는 거실 중심으로 방이 흩어져 있는 반면, 우즈베키스탄의 아파트는 복도가 각 방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긴 복도가 나오고, 첫 번째로 보이는 가장 큰 방이 손님 접대실이었다. 거실만한 크기의 손님 접대실에는 회사 대규모 회의실에나 있을 법한 거대하고 화려한 식탁이 있었는데, 적어도 20명은 앉을만한 규모였다. 한국의 경우에는 거주자 중심의 생활이 보장되도록 거실에 가장 큰 공간을 할당하고 주방과 거실 사이에 벽이 없지만, 바허네 아파트는 평소 함께 살지도 않는 손님을 위해 가장 큰 공간이 할당되어 있었다. 손님 접대실은 이미 아이비에커 못지않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우즈베키스탄 어느 아파트의 평면도(바허네 집 아님)

바닥에는 거실만한 크기의 큰 카펫이 펼쳐져 있었다. 
"카펫은 어떻게 청소해요?"
엄마가 묻자, 바허가 말했다.
"카펫을 전문으로 청소해주는 업체가 있어요. 전화만 하면 일꾼들이 와서 카펫을 수거해서 청소하고 다시 카펫을 가져다 준답니다."
한국에서는 가정집에서 카펫 청소 업체를 부르는 산업이 많이 발달해 있지 않은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카펫을 많이 쓰다보니 카펫 청소 업체가 활성화되어 있는 듯했다. 

 

 이미 상에는 잔뜩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이 많은 상차림을 엄마랑 나랑 둘이 다 어찌한단 말인가. 성제오빠라도 왔었어야 했는데. 성제오빠는 꼭 필요한 오늘 같은 날 친구 만나러 간다고 오지 않았다. 바허는 성제 오빠가 왜 안 왔는지 나한테 캐물었는데, 도저히 성제 오빠가 친구 만나러 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성제 오빠가 바허의 초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기가 어려웠다. 

 "내 핸드폰에 우즈베키스탄 유심이 없어서 연락이 안 되더라고."

 그러자 아이비에커가 자기 핫스폿을 연결해서 얼른 성제 오빠한테 연락해보라고 독촉했다.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여러 번 시도 끝에 텔레그램으로 연결된 성제 오빠는 연결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으.. 은주야. 뭐라고?.. 어어 나 지금 친구 만나러 가는중.... 미안하다고 전해줘."

 텔레그램 너머 들리는 소음으로 유추했을 때, 성제오빠는 여기 올 생각이 아예 없는 듯했다. 성제 오빠가 안 온다는 사실이 자명해 지자, 나는 오늘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멍해졌다. 엄청나게 차려진 이 음식도 그렇고, 내가 혼자서 이 무대의 대화를 독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언어 안 통하는 엄마는 가만히 있을 테고, 바허는 중국어 할 때는 워낙 과묵하고, 언어 안 통하는 바허 와이프도 주방에만 있을 테고, 말 많은 아이비에커는 예전 인연으로 어색하고, 시간이 벌써부터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나는 니가 연락할 줄 알았지. 내가 연락했을 때 바로 성제한테 연락했었어야지."

 "미안해."

 당황하는 바허 앞에서 더 당황한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면박을 줬고, 나는 17년 전처럼 바로 사과를 했다.

 

 바허 부인은 임신한 몸으로 주방에서 음식을 날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점 때문에 바허네 부인이 신경 쓴 게 느껴졌다.  첫 번째로 차려진 음식은 가지를 이용한 가지롤 샐러드였는데, 가지를 얇게 썰어 기름에 일일이 구운 다음 토마토 등의 야채를 넣어 롤처럼 말아 올린 음식이었다. 성제 오빠 꺼까지 내가 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지롤을 먹기 시작했다. 주원이는 어제 아이비에커네 갔을 때처럼 모든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이비에커네 집에서와 달리 집에 얼른 가자고 보채지는 않았다. 주원이까지 밥을 안 먹으니 성제 오빠와 주원이의 가지롤 모두 다 내 차지였다. 

바허네 집에서 먹었던 가지롤의 유튜브 조리법

 

 언제까지 여행하냐는 말에 구체적인 일정은 없고 9월 7일까지는 중앙아시아에 있을 꺼라고 했더니, 무슨 그런 여행이 있냐고 아이비에커가 비웃었다.  

 "어쨌든 키르기스스탄 카라콜에 큰 캐리어 2개를 놓고 왔어. 다시 그리로 가야 해."

 "무슨 짐을 그렇게 많이 가져왔어?"

 "다 먹을꺼리지 뭐."

 "여기도 다 먹을게 잔뜩인데 너무 많이 가져왔다. 카라콜에는 도대체 왜 간 거야?"

 "난 중앙아시아를 잘 모르잖아. 성제 오빠가 여름에 카라콜은 그나마 시원하다고 그래서."

 "시원해서 갔다니. 너는 시원한 게 제일 중요하구나. 시원한게 중요하면, 에어컨을 틀면 되지. 카라콜까지 가려고 하니"

 바허와 아이비에커는 키르기스스탄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키르기스스탄을 주 여행지로 잡고 있는 나의 일정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웃어댔다. 

 "키르기스스탄에 뭐가 볼 것이 있니. 문화유적의 중심은 우즈베키스탄이야."

 아이비에커는 자부심이 넘쳐나는 말투로 우즈베키스탄을 다시 치켜세웠다. 나는 속으로 키르기스스탄도 안 가본 것들이 키르기스스탄을 비웃다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키르기스스탄의 매력을 아직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도 할 말이 없어 같이 웃어넘겼다.

 

 바허는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중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이 모아져 있는 사진첩을 가져왔다. 거기에는 젊은 날 무려 17년 전의 우리들이 있었다. 엄마는 연신 "중국에서 찍은 사진 처음 본다. 너는 이런 사진 보여주지도 않고 도대체 뭐했니?" 그러면서 젊은 날의 우리들을 연신 카메라로 찍어댔다. 나는 주원이에게 수박씨를 골라주며 수박 먹이며 힐끗힐끗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이비에커와 바허도 엄마의 뒤에서 사진첩을 바라보았다. 아이비에커와 바허가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웃었다. 모두 30대 후반의 나이의 아저씨가 되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웃는 모습에서 23세의 영혼들이 다시 보이는 듯했다. 아이비에커의 얼굴에 웃을 때 생기는 보조개가 보였다. 

 

 다시 밥 먹기 시작하자 바허는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너희 남편은 너 중국 유학하고서 만난 거니?"

 나의 대답을 아이비에커도 기다리고 있었다. 

 

 17년 전 어느 여름밤이었다. 나와 가장 친했던 유진언니는 실크로드 여행을 떠나고, 나는 고급 HSK를 준비하려고 기숙사에 홀로 남았다. 어느 때와 같이 나는 기숙사에서 혼자 HSK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 십 개의 단어와 본문을 외우고 모의시험을 반복해서 보았다. 그 날밤도 아마 책상머리에서 공부하고 있던 참인데, 기숙사 내 방으로 전화가 울렸다.

 "은주, 나 아이비에커인데 혹시 너 고급 HSK책 있니? 나도 공부해보려고."

 "어. 남는 게 있는데 줄까?"

 "내가 지금 갈게."

 나는 4층에 살고, 아이비에커는 3층에 살았다. 아이비에커는 단숨에 내 방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나는 내가 안 쓰는 고급 HSK책을 주면서 말했다.

 "나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교재가 있어서, 이거 너 가지면 돼."

 아이비에커는 교재를 받고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넌 무슨 교재 보고 있었어. 잠깐 봐도 될까?"

 "그래. 잠깐 들어와."

 아이비에커는 내 방에 들어오자, 잠깐 내가 공부하고 있던 책들을 흘깃 보고는, 내 책상에 올려져 있던 다이어리를 보겠다고 집어 들었다. 그 다이어리에는 내가 그린 무수한 그림들와 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앗, 그건 안 돼. 이리 줘."

 장난기 많은 아이비에커가 내 다이어리를 빼앗아 보는 척했다. 생각보다 나보다 키가 큰 아이비에커는 팔을 위로 올려 다이어리를 보는 척 했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간의 몸싸움이 잠깐 벌어졌다. 

 "차나 마시러 갈까?"

 아이비에커는 다이어리를 돌려주며 말했다. 나는 다이어리를 돌려받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같은 반 친구였고, 중국의 여름은 밤이 돼서야 시원했다. 쩐쭈나이차를 하나씩 빼물어 들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비에커가 말했다.

 "여기 잠깐 앉았다 갈까?"

 중국 기숙사 앞 너른 벤치에 둘이 나란히 앉았다. 하루 종일 혼자 기숙사 방에서 공부하느라 거의 외출을 하지 못했는데, 아이비에커랑 산책을 하니 기분 전환도 되고 피로도 풀렸다. 그때였다. 

 "나 여기 잠깐 누워서 좀 쉴게."

 그러더니 아이비에커는 나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아, 편하네. 잠깐 좀 쉴게."

 그때 당시 나는 너무 어리고 연애 경험도 없어서 얘가 나의 무릎을 베고 눕는 게 친구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인지 판단이 안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문화 차이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만큼 친한 사이인가. 당황했지만, 나는 한편으로 친구 사이에 이 정도는 괜찮다고 넘기는 게 쿨한 것인지 매우 헷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누운 아이비에커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너, 한국에 남자 친구 없어? 지금까지도 없었어?"

 "응, 없었어."

 "왜 없었어? 너처럼 이렇게 예쁜 애가 왜 없었어?"

 나는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 얘들이 나보고 예쁘다고 할 때마다 나의 외모가 한국과는 다르게 중앙아시아에서는 통하는 외모인가 순진무구하게 생각했다. 

 "그냥. 나는 한국에서도 계속 공부하고 그랬지. 아무튼 없었어."

아이비에커가 내 무릎을 베고 나를 올려다 보며 말했다.

 "너는 어떤 남자 좋아해?"

 "글쎄. 착하면 좋겠지?"

 "니 무릎 베고 이렇게 누우니까 참 편하다."

 "...."

 그날 그런 일이 있고 기숙사에 돌아오니 밤이 깊었다. 나는 기숙사 방에 들어와서 얘가 나의 무릎을 베고 누운 것이 내가 화낼 일이었는지, 아니면 문화적으로 친구사이에 그냥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쿨하게 넘어가야 하는지 너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당시 기숙사에는 친한 한국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아이비에커가 내 무릎을 베고 있는 게 문화적으로 허용되는 일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남편 하고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아는 사이었지. 우리는 대학교 때 선후배 사이야. 그니깐 중국 유학 전부터 알던 사이지."

"그렇구나.(原来是这样)"

 바허는 질문을 멈췄다. 아이비에커도 더 캐묻지 않았다. 그 당시 서안 기숙사에서는 한국에는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있으면서, 서안에서만 따로 만나는 이성이 있는 유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그렇지는 않았는데, 내 대답으로써 아이비에커와 바허 모두 내가 서안에 유학하기 전 이미 만나는 이성이 있었고, 아이비에커와도 만난 것으로 오해하게 된 듯했다. 너무 오래전 일들이었다. 엄마도 옆에 있고, 주원이도 밥을 먹여야 해서, 또 나에게 둘 다 더 물어보지 않아서, 오해받은 채로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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