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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슈퍼에 가려면 꼭 타야 하는 전기차 
부하라 성 내부는 관광지화 되어 있어 거주지라 보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슈퍼도 없다. 단조로운 중앙아시아의 먹거리에 지친 엄마는 미역냉국이 간절히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게 어렵다면 라면만이라도 먹고 싶다고 하셨다. 다행히 한국 라면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성내부에서 슈퍼까지 좀 걸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날씨가 좀 서늘하면 20분 걷는 게 뭐가 그리 대수겠냐마는 오늘도 42도까지 기온이 치솟았다. 더구나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부하라성 아닌가. 양산을 써도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 때문에 걷기 조차 힘들었다. 
 부하라성 내부는 자동차 출입도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슈퍼에 가려면 부하라성 안을 오고 가는 전기차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전기차 아저씨들이 부르는 가격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평소 택시 탔던 가격의 5배는 되었다. 슈퍼에서 과일 몇 개와 컵라면2개을 사겠다고 5000원 내고 전기차를 탄다니... 비용이 비싼 건지 알고 싶었지만 부하라성에는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어 보였다. 주원이는 전기차를 보자 놀이기구를 보는 듯 흥이 났다. 덤터기를 쓰는 느낌을 받았지만 전기차를 타고 우리는 부하라성 밖 슈퍼로 향했다. 

부하라 전기차


 막상 전기차를 타니 따뜻한 바람이었지만, 바람도 쌩쌩 불고 중앙아시아에서 모처럼 흥이 났다. 그래. 가끔은 돈도 좀 써야 행복한 법이야. 작은 슈퍼는 부하라성 입구에 바로 있었지만, 식료품을 판다고 하기 어려운 구멍가게였고, 우리가 간 큰 슈퍼는 부하라성에서 15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이 거리를 걸어서 갔다면 정말 엄마와 주원이 둘 중 하나는 짜증을 냈을 것이다.  
 우리는 슈퍼에서 토마토와 과일, 물, 라면을 골랐다. 부하라에서 처음 슈퍼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10분 정도 슈퍼에서 시간을 쓸 수 밖에 없었는데, 과일을 저울에 일일이 무게 달아 가격을 매겨야 했기 때문에 바로 나올 수 없었다. 아저씨는 우리를 제대로 호구로 여겼는지, 처음 합의사항, 즉 슈퍼와 부하라성 왕복에 얼마라는 약속을 깨고, 10분 기다린 값을 더 달라고 하셨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이런 관광객 호구 잡히는 일이 굉장히 드물었는데, 부하라가 관광지는 맞나 보다. 나는 오랜만에 정신이 나서 말도 안 된다며 처음 약속을 지켜달라고 구글 번역기로 얘기했다. 아저씨도 자기가 얘기해놓고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금세 수그러들어 원래 가격만 받았다. 인도나 중국의 끈덕진 사기꾼들과 달리 이곳 우즈베키스탄은 사기를 치려고 해도 그렇게 억세지 않았다. 

 

부하라의 낭만적인 여름밤
 엄마와 주원이는 라면으로, 나는 현미누룽지로 저녁을 대충 떼우고 나서, 누워있겠다는 엄마를 설득해 부하라 밤거리를 산책 나갔다. 더웠던 한낮 부하라와는 달리, 어디서 모여들었는지 부하라성은 시원한 밤의 부하라에 마실 나온 현지인들로 가득했다. 
 부하라의 주요 건축물들은 아름다운 조명을 켰고,  나무 하나 없는 광장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로 붐볐다. 야광팽이도 뺑뺑 돌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솜사탕을 파는 상인들이 나타났고, 엄마며, 아이들이며 군것질 하나씩 베어물고 있었다.

낭만적인 부하라의 밤


랴비하우스의 연못에도 분수에 물이 나오고 조명이 켜지고 다소 시끄럽고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낮에 보았던 랴비하우스보다 밤의 랴비하우스 관광객이 더 많았다. 낭만이라는 게 폭발했다. 더위에 찌들어서 연못에 떠다니는 오리도 지쳐했던 부하라의 낮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면, 유럽에서 느꼈던 고즈넉한 어느 밤에 못지 않았다. 

낭만적인 랴비하우스의 밤

 랴비하우스에서 조금 더 걸어가자, 그곳에는 알토색소폰으로 버스킹 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나는 주원이의 손을 잡고 색소폰으로 뻔하디 뻔한 서양 대중가요를 연주하는 아저씨의 색소폰 연주에 따라 춤을 췄다. 이 순간은 아마 잊지 못하겠지. 춤을 추어주는 주원이에게 말했다. 
 "주원아. 엄마랑 함께 여행해줘서 고마워."
 "엄마. 고마워요."
 주원이는 본래 하던대로 나의 말을 따라 대답해 주었다. 5살 작은 주원이의 손이 커질 때쯤 주원이도 이 여행을 기억해 줄까. 너와 함께 있어 엄마는 낯선 부하라에서도 용기 낼 수 있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색소폰에 맞춰 춤추기


 부하라에 워낙 호텔이 많다보니 호텔 앞 계단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어느 고급진 호텔 앞에는 캐리어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경사로가 대리석으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미끄럼틀로 해석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하나 없는 부하라에서 아이들은 금세 놀잇감을 찾아냈다. 지칠 줄 모르는 대리석 미끄럼틀에서 쉴 새 없이 노는 공주옷 입은 현지 누나들 사이에 주원이도 합세했다. 아이들은 언어도 필요 없이 한데 모여 차례대로 미끄럼틀을 탔다. 본래 미끄럼틀은 혼자 타면 재미없고 남들 줄 서는데 서서 충분히 기다렸다가 타야 더 재미있는 법이다. 

호텔 경사로에서 미끄럼틀 타기


 아름다운 부하라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부하라에서는 택시 잡기도 힘들고, 기대하던 2층 버스도 없었고, 한국어는 기대도 안 했지만 영어하는 관광가이드도 없었고, 관광지도도 구할 수 없었고, 또 덥기는 무지하게 더웠다. 기대하던 전통 공연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부하라는 아름답고 신선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다른 도시에 비해 유적지가 조금은 소박하고 낭만적인 느낌도 들었다. 부하라에 이렇게 까지 많은 호텔이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실제로 가을에는 부하라의 호텔가격이 엄청 비싸다고 한다. 아름다운 부하라의 밤을 즐기면서 문득 가을의 부하라만큼은 신혼여행지로 추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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