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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입장권이 없어 더 비싼 부하라 관광입장료

 부하라는 종합입장권이 없었다. 2일 입장권으로 성 내부 대부분의 건물을 입장할 수 있었던 히바에 비해, 부하라는 훨씬 더 발전한 도시인데도, 입장권 모둠 특혜가 없어서 모든 관광지마다 돈을 따로 내야 했다. 부하라는 어찌 된 모양인지 개별 입장료도 꽤나 비싼 편이었다. 부하라에 도착한 첫날, 랴비하우스(Lyabi Khauz)의 연못 건너편 아름다운 건물인 노디르 데본 베기 소나코시(Nodir Devon Begi Xonaqosi)에 인당 1달러에 준하는 금액을 내고 들어갔으나, 화려한 건물에 비해 안은 정말 휑했다. 부하라의 전체 모형도,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복장 등 다소 뻔하디 뻔한 것들만 전시되어 있고, 그 규모도 소강당 1개 사이즈라 5분 안에 볼 수 있었다. 

노디르 데본 베기 소나코시에 전시되어 있던 부하라 입체도


 우리나라는 박물관의 규모에 비해 국공립 박물관의 입장료는 다소 저렴한 편아닌가. 볼 것도 없는 부하라 박물관들은 패키지 상품권도 없거니와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부하라에서 박물관이라고 불리웠던 곳의 첫인상이 표값만큼 값어치를 안 한다는 생각을 줬기 때문일까. 우리는 왠만한 마드라사, 박물관, 모스크 등은 휙휙 지나가 버렸다. 부하라 요새만은 예외였다. 이마저 관람하지 않으면 부하라에 온 의미가 사라질까봐.

 

부하라성의 인당 4달러 입장료  
 점심때 물세례를 받고 향한 부하라 요새(Ark of Bukhara)는 심지어 인당 4만 숨(현재 한국돈 4554원)이나 했다. 이 가격은 현지 물가 대비 너무 비싼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외국인한테 덤터기 씌운 느낌도 아니었다. 영어가이드비는 10만 숨이었다. 순간 고민했지만, 영어 가이드 없이는 관광지만 휙 갔다 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우즈베키스탄의 더위와 비싼 표값 때문일까. 외국인 관광객은 우리뿐이었다.

부하라 성에서 본 부하라 전경


 그렇게 높지 않은 부하라의 아르크에 올라가자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부하라 도시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잠시 후 영어를 얌전한 어조로 곧잘 하는 영어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했다. 주원이는 영어가이드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부하라 요새 내 조성된 박물관에는 부하라 요새의 예전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텅 비어 있는 부하라 요새 앞 광장은 장터로 활용되어 꽤나 붐빈 것 같았다. 

부하라 요새내 박물관에 걸려있는 부하라 예전 사진


 요새 자체가 계단도 많고, 꽤나 가파랐기 때문에 잠든 주원이의 유아차와 함께 턱을 넘고 계단을 넘고 무거운 나무 문을 통과하는 건 꽤나 힘들었다. 건물을 이동할때마다 20키로 아이가 타고 있는 유아차를 있는 힘껏 들어 옮기느니 당장이라도 관람을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미 영어가이드비를 낸 터라 낑낑대며 유아차를 옮겼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러시아 관광객을 상대하는 가이드는 진도를 팍팍 빼고 있었는데, 우리 팀은 유아차를 옮기고, 또 영어로 얘기하고, 내가 그걸 엄마한테 한국어로 통역하느라고 굼벵이 걸음이었다. 진도가 영 안 나가자 우리의 영어가이드가 통화를 하더니 자신은 일이 생겼다면서 동료 영어 가이드가 온다고 하고 갑자기 가버렸다. 그 사이 나와 엄마는 못다 한 유아차 옮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교체된 영어가이드는 타지크인
 10여 분을 기다렸을까. 학생처럼 머리를 묶은 키가 작고 얌전하게 생긴 가이드가 등장했다. 자기 동료가 어디까지 설명했냐고 묻고는 다시 차분하게 영어를 이어갔다. 지금 우리가 구경하는 이 요새는 원래 크기의 2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80퍼센트는 1920년 러시아 내전때 프룬제의 붉은 군대의 항공기가 폭격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문화재를 이렇게 파괴했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이후의 국가라서 그런지, 러시아 자체에 대한 반감이 적었다. 우리의 영어가이드는 자신이 우즈베크인이 아니라 타지크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가이드의 외모에서 풍겨오는 이미지가 타슈켄트에서 많이 봐온 우즈베크인과 미세하게 달랐다. 가이드는 영어와 타지크어와 러시아어, 우즈베크어를 구사한다고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위키디피아에 의하면, 부하라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타지크어고, 제2언어가 우즈베크어라고 한다.

 

비빔밥을 한번이라도 비벼버리면, 비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역사적으로 단일민족개념을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써는 중앙아시아를 알면 알수록 중앙아시아의 국가와 민족, 언어, 문화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중앙아시아는 마치 밥, 오이, 나물 등을 한 그릇에 쏟아 비벼 비빔밥으로 만든 후 다시 야채끼리 분류하려고 했을 때 서로 뭉쳐진 흔적을 지울 수 없는 원재료같았다. 본래 각각의 민족 정체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소련이라는 정체성으로 하나로 뭉쳤었던 중앙아시아는 소련이 해체되어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개념이 아니라 제2의 정체성이 생기는 것 같달까. 
 다음은 내가 발견하고 의아해했던 중앙아시아의 모습 중 일부이다 .


- 같은 튀르크어군에 속해있는 카자흐어, 타지크어, 우즈베크어, 키르기즈어 사람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얘기해도 대충 맥락은 이해하지만 공용어로 러시아를 쓴다. 
 - 러시아 시절 많은 문화유적이 파괴되었지만 러시아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 언어는 러시아를 받아들였지만, 종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러시아 정교회의 흔적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 러시아를 큰 형님으로 모시고 친러시아적 외교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비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중앙아시아 각 나라들은 서로를 싫어한다. 
 

타지크계 가이드는 자부심을 가지고 부하라의 유적을 설명해 갔다. 나는 이 가이드가 영어도 너무 차분하게 잘하고 설명도 잘하길래, 사마르칸트나 타슈켄트에 가면 이 가이드보다 더 뛰어난 가이드를 만나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통틀어서 이 가이드가 제일 설명을 잘한 것이었다. 
 트립어드바이저의 부하라 요새 후기를 보면, 다들 요새의 규모에 비해 전시품들의 일관성은 떨어져 입장표는 비싸면서도 기대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이 많다. 전시 품목에 일관성이 떨어지는건 맞지만, 그 실망감을 이 타지크계 가이드가 모두 없어버렸다. 주원이가 깰 때까지 모두 설명을 마쳤을 때 이미 오후 5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하라 요새는 영업시간이 오후 6시까지였지만, 박물관이고 전시실이고 모두 하나 둘 내부 불을 다 끄고 문을 걸어잠그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입장은 6시까지지만 내부 시설은 5시까지란다. 직원들은 황급히 불을 크고 칼퇴를 준비하는 듯해 보였다. 
 입구에 나갔을 때 부하라 요새내 박물관 불을 끄고 문을 걸어 잠근 걸 모르는 다국적 외국인무리들이 매표소에서 비싼 가격을 주고 입장료를 사고 있었다. 저 비싼 돈을 주고 내부를 모두 걸어 잠근 부하라 요새에 가는 걸 말리고 싶었으나, 그마저 그들의 숙명이라 여기고 나는 그들을 몰래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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