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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사인 택시기사
화난 매표원 때문에 전날 엉겁결에 끊어버린 내일 새벽 5시 출발 기차표를 황급히 바꿔야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날 부하라 기차역에서 택시비 호구로 덤터기를 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부하라 요새의 친절한 가이드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 현지인의 적정한 가격에 부하라 왕복 택시를 끊을 수 있었다.
가이드는 직접 자신의 일터에서 벗어나 택시기사에게 가격과 행선지를 협상해 주었고, 우리의 택시가 출발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이드의 작은 배려에 부하라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잘 할 것이라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막상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에게 영어를 시도해보니 택시기사가 영어를 너무 잘하는 거 아닌가. 잘해도 너무 잘했다.
"영어 정말 잘 하시네요. 혹시 영어를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제가 사실 중학교 영어교사에요."
영어교사가 택시기사를 병행하다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기본 소득이 워낙 낮아서 그런지 직업과 상관없이 택시를 부업을 하는 경우가 꽤 되는 듯했다.
나는 영어를 잘 하는 우즈베키스탄 남자를 얼마나 만나보고 싶었던가. 타슈켄트에서 내가 아이비에커와 바허와 만나서 해소되지 않은 의문들을 현지인 누구에게라도 좀 물어보고 싶었다. 택시기사는 갓 결혼한 신혼이었다. 질문을 던지기 너무 적합했다.
"정말 친정가고 싶을 때 시댁 어른들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나요?"
"제 우즈베키스탄 친구가 그러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말 여자가 자기 친정에 갈 때 시댁 어른들하고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네, 그렇죠. 언제 어디로 갈지는 늘 말해야 해요. 거짓말을 하면 안 되고요. 제 와이프가 어디 간다고 하면, 정말 그곳에 간 게 맞는지 전화로 확인을 해요. 친정에 갔다고 하면, 친정 부모님이나 형제를 바꾸라고 해서 진짜 갔는지 확인하고요. 아내가 일을 한다고 하면, 아내의 직장에 같이 가서 아내가 정말 이곳에서 일하는 게 맞는지 확인해요. 친구를 만나도 마찬가지죠."
택시기사는 젊은 20대로 아주 선하게 생겼다. 전혀 권위적이지 않을 것 같은 외모로 저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아이비에커가 꼰대라서 아내를 구속하는게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여성의 인권이 얼마나 낮으면 저 모든 것들이 사실일까.
어딜 가도 이렇게 집요하게 현지의 여성인권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과거의 내가 아이비에커를 만일에 선택했다면 현재의 내가 당하고 있었을 일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시부모를 모시고 살며 시부모 및 가족들에게 삼시 세 끼를 차리고, 어떤 외출이건 남편에게 보고하며, 경제권은 없으며, 당연히 의사결정도 없는 삶.
과거 20대의 나는 중국을 떠나올 때 아이비에커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호히 귀국했다. 미래의 나를 배려한 과거 20대 젊은 나의 직관에 새삼 또 놀랐다.
"혹시 와이프의 핸드폰도 검사하세요?"
"그렇죠. 서로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누구랑 연락했는지 살펴보죠."
서로의 핸드폰에 절대 관심없는 우리 부부의 삶과 너무 큰 괴리가 있는 이곳 결혼생활이 너무 놀라웠다. 부모의 간섭 없이 살아온 나로서는 남편이 나의 사생활까지 들여다보는 걸 참을 수 없었으리라. 돌이켜보면 과거의 내가 한 모든 선택이 미래의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내가 아픈 것마저도, 인생의 큰 맥락에서 보면 필요한 계기였으리라. 과거의 나에게 다시 감사했다.
관심일까. 구속일까. 우리 남편은 내가 뭘 하든 지켜봐준다. 웬만하면 간섭도 하지 않고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때로는 전혀 구속하지 않는 남편이 무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질문을 던져보면 나에 대해서 많이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 비해 이곳 남편들은 아내의 모든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다. 질문을 많이 하고 어쩌면 옭아맨다. 그래서일까. 유독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내가 거짓말을 할까봐...'
한국도 아내가 남편의 사생활에 참견하면 참견할수록 남편의 거짓말은 더 많아지지 않았나.
택시기사에게 나는 타슈켄트에서 품게 된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부하라에 와서 타슈켄트에 있는 아이비에커를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 잘 하는 택시기사는 인상만큼 정말 착했다. 부하라 기차역에 도착해서, 택시기사는 자신의 택시를 주차한 다음 나와 동행해서 차표 시간 바꾸는 걸 일일이 도와줬다. 덕분에 언어의 장벽을 쉽게 넘어 새벽 기차표를 이른 오후 기차표로 약간의 수수료를 떼고 바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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