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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계자는 내 퇴사 10일 전에 입사했다. 완벽한 인수인계로 남은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나의 바람은 환상 같은 것이었다. 처음 퇴사한다고 했을때만 해도, 팀장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인수인계 기간이 최소 1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부랴부랴 경력 입사자를 뽑는듯 했지만, 여러명의 우수한 경력입사자는 거의 KPOPstar의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듯한 임원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너무 급하게 직무 연관성도 없는 사람이 떡하니 뽑히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 사람한테 업무도 잘 가르쳐주고, 남은 문제들이나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팀장은 너무 급한 나머지 마지막 근무일을 6/13일에서 일주일 더 미룰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렇다면 내 비행기표, 내 숙소 에약 모두 미뤄야 했다. 당연히 안된다고 할 줄 알았던 내 마음은 또 흔들렸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물으니, 

"너처럼  회사사정 봐주면서 천천히 퇴사하는 사람이 어딨냐. 작년 11월에 그만둔다고 해놓고 6월까지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미 넌 최선을 다했어. 못한다고 해."라고 얘기해주었다. 남편을 신뢰하는 나는 회사에 처음으로 더 퇴사를 미루는 것은 안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 13년간 안된다고 말 못해서 이렇게 힘들었던가? 안된다는 말을 하자 사람들도 바로 받아들였다. 회사 다니면서 안된다고 못한다고 말 못했던 순간들이 아쉬웠다. 나는 안된다고 말 못하는 습관 때문에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여지를 흘리고 다녔던 것 같다. 

 러시아어도, 키르기즈어도 하나도 못하는 내가 3개월간 떠나는 중앙아시아 여행은 거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회사 업무로 준비할 시간 조차 없었다. 성제오빠는 러시아어는 최소 조금이라도 공부해오라며 이런 저런 자료도 주었지만 러시아어는 그러기에 너무 어려웠다. 대신 키릴문자를 읽는 법은 벼략치기로 연습했다. 지명은 최소한 읽을 수 있어야 하기에, 키릴문자만 달랑 외우고 구글 지도를 펼쳐놓고 키릴문자로 되어 있는 지명을 읽을 수 있는지만 연습했다. 

 나를 키르기즈스탄으로 초대한 성제오빠는 정작 연락이 잘 안 되었다. 키르기즈스탄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주변국가는 가는게 좋은지 물어보고 싶은게 너무 많았지만, 성제오빠에게 카카오톡 화상전화나 음성전화를 하면, "안녕! 은...주.. 야. (...지지지...) 어 뭐라고?"라며 10초만에 대화의 의욕을 뚝 떨어뜨리는 통신상태로 연결되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로 우리와 함께 숙박할 건지 어디서 얼만큼 예정인지 물어봐도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숙소예약을 어디서 얼만큼 해야 할까요 물어봐도 현지에서 정해도 늦지 않는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오빠 저는 배낭여행자가 아니라 5살짜리 애랑 할머니가 다 된 친정엄마랑 간다고요. 캐리어도 2개, 배낭도 2개, 유아차까지 있다고요. 배낭여행자처럼 아무데나 묵을 수 없고 나름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다고요' 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딸린 가족 없는 성제오빠가 이해할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성제오빠는 아무래도 나에게 키르기즈스탄이 좋다고 추천을 한 것이지 초대할 여건은 아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빠도 사실 게스트하우스나 저렴한 호스텔을 전전하는 떠돌이였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역사연구를 하다가 비자 갱신 때문에 1달에 한번씩 키르기즈스탄에 잠깐 갔다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성제오빠는 중앙아시아 론리플래닛PDF 영어버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고는, 자신이 할 일은 다 한듯 연락이 잘 되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출국 2주일 앞두고 살짝 정신이 들었다. 성제오빠에게 절대 의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에어비앤비를 켜서 일단 키르기즈스탄 수도 비쉬켁의 조리시설과 마당이 있는 그나마 괜찮은 숙소를 2주간 예약했다.

론리플래닛 중앙아시아

 그 다음에는 맵스미 키르기즈스탄을 다운받고, 공항 위치와 에어비앤비 숙소를 표시해놓았다. 그리고 600만원을 미화로 환전했다. 정확한 예산같은건 없었다. 성제오빠는 숙박비의 경우 한 사람당 하루에 1만원만 잡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것은 성제오빠가 저렴한 도미토리에서 묵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귀국 비행기표는 예매하지 않았으므로, 600만원이 다 소진되는 시점에 카드로 버티다가 귀국할 것이다. 

 키르기즈스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키르기즈스탄에 다녀온 여행 블로그도 정말 많지 않았다. 키르기즈스탄에 갔다온 거의 모든 여행기를 읽어보고, EBS 세계테마기행 키르기즈스탄 편도 모두 보았다. 심지어는 키르기즈스탄 이식쿨에 대한 동화도 도서관에서 빌려 보았다. 아무리 봐도 봐도 키르기즈스탄 관광은 이렇게 요약되었다. "산, 이식쿨호수, 유르트, 승마, 독수리사냥"  먹거리는 이렇게 요약되었다. "빵, 고기, 오이랑토마토섞은 샐러드, 과일, 꿀" 론리플래닛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키워드는 여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도시만 바뀌었을 뿐, 액티비티나 먹거리는 키워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산이 아름다운 키르기즈스탄에서는 트레킹이 주요 액티비티중에 하나였지만, 이마저도 아이와 엄마를 동반하는 우리에게는 어려운 활동이었다. 할 수 없는 액티비티를 모두 제외하자 키르기즈스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어졌다. 

네이버 키르기즈스탄 여행정보 카페

 키르기즈스탄 정보의 허기에 시달리던 나는 "키르기즈스탄/키르기즈스탄 여행정보"라는 네이버카페를 찾았다. 내가 가입할 당시만 해도 회원수가 130명에 해당 될 정도로 작은 카페였다. 지금도 회원수는 200명 밖에 되지 않는다.  Nomad life라는 닉네임으로 주인장만 키르기즈스탄에 대한 뉴스나 정보를 포스팅 하고 있었는데, 각 글의 조회수도 7건을 벗어나지 않고, 댓글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키르기즈스탄에 여행가는 수요가 그만큼 없다는 뜻이었다. 적은 회원수와 더 적은 조회수, 없다시피한 댓글에도 Nomad life는 산속에서 도를 닦듯이 꾸준히 키르기즈스탄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글도 가벼운 글은 하나도 없었다. 키르기즈스탄의 뉴스와 농업현황에 대해 분석하고 심도있는 글을 올렸다. 누군가 댓글로 질문이라도 하나 싶으면, Nomad life는 넘치는 애정을 가지고 그 사람이 쓴 질문의 10배 되는 대답을 정성스럽게 써주었다. 나는 키르기즈스탄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물어봤는데 이에 대해서도 정말 Nomad life가 정성스럽게 대답해주었다. 

  빵과 고기 위주인 키르기즈스탄에서 쌀과 채소 위주로 살아온 우리는 오랫동안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특히나 아이와 친정엄마의 입맛을 고려하면, 취식도구와 재료는 필요해보였다. 가장 작은 압력밥솥과 누룽지팬을 챙겼고, 된장, 춘장, 소금, 미역, 다시마, 김, 김장할 고춧가루를 챙겼다. 

 그 외에는 옷가지를 챙긴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현지에서 필요하면 사면 되겠지라며 편하게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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