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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살 아이와의 해외여행은 첩보작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빠와 애착이 있는 주원이가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3달 동안 아빠랑 이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출국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어질 것이다. 아이 아빠는 아기가 깨기전, 새벽에 할아버지 차에 짐만 실어주고, 아이가 할아버지 차에 타는 모습을 경비실 뒤에서 숨어서 보고 있었다.
 주원이는 아이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할아버지 차를 탄다는 것 자체로 새벽부터 신나보였다. 공항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신속하게 끝냈다.  신속항원검사결과가 나오기 까지 1시간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신속항원검사소 한쪽에 짐을 정리해두고, 여유롭게 공항내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주원이와 친정엄마

  터미널1부터 터미널2까지는 체감이 약 20여분 걸린듯 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주원이는 갑자기 쉬가 마렵다고 했다. 주원이는 기저귀를 뗀지 채 2주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줌이 급박해져야 말했다. 쉬를 발사하기 거의 10초전에 말하는 느낌이었다. 제2터미널은 정말 너무 넓었다. 화장실이 저 멀리 있었다. 나는 19키로 짜리 아이를 들쳐안고 속보로 걷기 시작했다.
 "주원아, 참을 수 있지? 이제 곧 도착할꺼야. 참아야돼."
 "네. 엄마." 
 주원이는 다소 조급하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장실에는 2분 만에 도착했지만, 가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린 느낌이었다. 
 다행히 변기까지는 잘 도착했는데, 변기에 걸터앉은 주원이는 바지를 내리는 과정 중에 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바지를 끝까지 내리고 방향을 아래로 잘 유지한 채 발사해야 하는데... 나는 주원이가 발사를 잘 하도록 중간에 발사방향을 바꾸어주었지만, 이미 발사 방향을 바꾸기 전 주원이의 쉬는 화장실 바닥, 나의 바지 일부와 양말 전체, 주원이의 상하의를 모두 적신 상태였다. 
 "엄마, 저 다했어요.(울먹울먹)"
 주원이 조차 상황이 이상해진 것을 인지하고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저 바지 갈아입을래요.(울먹울먹)"
 나는 순간 멍해졌다. 주원이의 젖은 바지를 다시 올리자 주원이가 울기 시작했다.
 "엄마. 바지 젖었어요. 다른 바지로 입을래요."
 나도 함께 울고 싶었지만, 엄마된 자로써 정신을 다시 부여잡았다. 
 나는 휴지를 뽑아서 바닥에 있는 쉬를 닦아 휴지통에 넣기 시작했다. 나의 바지와 양말은 어쩔수 없다 치고, 남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바닥은 민폐없이 수습하고 가야 하기에. 주원이는 답이 없는 나를 계속 쳐다보며 "엄마 바지 벗고 새바지 입을래요."를 반복했다. 주원이의 옷가지는 터미널1에 두고 왔다. 지금은 터미널2다. 공항은 아이 옷은 팔아도 엄청 비쌀 뿐더러, 터미널2에는 팔지도 않는다. 무조건 20분 동안 버스를 타고 터미널1에 돌아가야 한다. 주원이의 특성상 젖은 바지는 다시 입기를 거부할 것이다. 
 순간 내가 바람막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천사가 나의 머리에 잠깐 찾아왔던 것일까? 주원이의 젖은 양말과 바지를 모두 벗기고, 나의 바람막이를 벗어 바지를 만들어 입혔다. 바람막이의 팔 부분을 주원이의 다리에 입히고, 지퍼를 올리고 남은 천을 묶어버리니 그럴싸한 바지가 되었다. 나의 바지는 다행히 오줌이 조금밖에 묻지 않았다. 나의 양말과 주원이의 양말, 바지를 모두 한 손에 들고 나는 화장실에 나왔다. 저기 벤치에 핸드폰을 보면서 홀로 앉아 있던 친정엄마는 저벅저벅 걸어오는 우리를 보더니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하다가 주원이의 바람막이 바지와 나의 손에 들린 젖은 옷들을 보니 더이상 묻지 않았다. 새로 지은 제2터미널에 대한 구경은 이로써 끝났다. 흥미도 없었고 나를 구원할 것은 오직 제1터미널에 두고온 에코백 속 주원이 바지였다.

출국전 주원이


 올때 20여분 걸리는 듯한 터미널버스는 갈 때는 체감이 1시간 걸리는듯 하였다. 나의 바람막이 바지를 입은 주원이도, 오줌 바지를 들고 버스를 탄 나도 버스에서는 멍하기만 했다. 제1터미널에 도착하자 마자, 코로나 검사소 옆에서 짐을 꺼내 새로운 바지를 갈아입혔다. 신속항원검사도 3명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이런걸 진정한 액땜이라고 해야 하나? 주원이는 알마티에서 7시간 걸리는 비행기에서도 아무런 짜증도 안 내고 줄곧 잘도 잤다.

비행기에서 잘 자는 주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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