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에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그것도 버스로 가는 여정은 매우 복잡하다. 단순하게 키르기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뿅 하고 국경을 넘으면 될 것 같지만, 비쉬케크에서 타슈켄트로 가려면 지도상 가장 빠른 루트가 카자흐스탄 땅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키르기스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이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에서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다시 가야 한다. 그럼 국경을 2번만 넘으면 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경을 넘을 때마다 출국 입국 심사를 모두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애써 버스에 실어놓았던 짐들을 모두 내려서 국경심사대 X레이 검사를 통과시키고 다시 버스에 실어야 한다. 작은 짐이건 큰 짐이건 다 내려야 한다. 대형 백팩, 내가 마셨던 물, 에코백, 아이..

음료수 가판대를 지나 소련식의 건축물인 비쉬케크 미술관(National Museum of Fine Arts named after Gapar Aitiev)으로 향했다. 나는 80년대생이라 소련을 직접적으로 느끼지 못했지만 중앙아시아에 오자 소련식 건축물이 무엇인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일단 시멘트가 주재료인 듯 회색이었고, 데코레이션이 화려했으나 딱딱해 보였고, 규모가 커서 복도도 계단도 널찍널찍했으나 그만큼 속은 강당처럼 텅 비어있었다. 소련 시대 인민예술가였던 카파르 아이티예프의 이름을 딴 현대미술관이었는데, 나중에 구글에 검색해보니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저녁" 등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박물관은 규모는 거의 예술의전당 본건물을 방불케 했지만, 그 미술관 크기에 비해 전시는 단출했다. 건물은 2층으..

오늘은 오후 4시 30분에 타슈켄트행 버스를 타야 했다. 숙소에서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간단히 아침밥을 해 먹고 짐을 모조리 싸서 호스텔 짐 보관소에 두었다. 살짝 관광을 하고 짐을 다시 찾아 버스터미널로 향할 것이다. 짐을 픽업할 시간을 고려하면 관광할 시간이 좀 애매해서, 보기에 부담이 없는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미술관 근처에 내리니 키르기스스탄 음료수 가판대가 떡하니 있었다. 비쉬케크 전역에는 이런 음료수 가판대가 깔려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여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사 먹는 듯했다. 파랑, 갈색, 초록 음료통에 잔뜩 든 음료를 현지인들은 조금의 돈을 내고 한 잔씩 마시고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비쉬케크에 도착하여 자꾸 목격하게 된 이 음료들이 대체 뭐길래 현지인들이 사 먹는지 나..

제티오구스에서 카라콜로 돌아온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심야버스를 타고 비쉬케크로 향해야 했다. 심야버스가 오후 10시에 출발하는 바람에, 우리는 돈을 더 지불하고 숙소에 있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할머니께서는 손녀들과 함께 제티오구스에서 성심성의껏 아이들을 챙겨준데 고마워서인지 늦게 체크아웃하는 데에 대한 추가 비용을 따로 받지 않았다. 숙소에 떠나기 전까지 손녀들은 주원이와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도 잘 놀아주었다. 제티오구스에 다녀와서는 주원이도 누나 누나 하면서 잘 따르고, 손녀들도 Yandex앱을 통해서 한국어로 주원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우리는 원래 짐이 참 많았다. 중앙아시아 1달 살기 컨셉으로 온 거라 한국 식재료를 많이 챙겨 와서 그런 것이었다. 캐리어 2개 도합 40킬로에..

어젯밤 처음 만난 외국인들과 낯선 곳에 가려고 택시에 탄 소녀들은 살짝 긴장해보였지만, 언니와 동생 서로를 바라보며 의지하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무해한 외국인으로 분류한 것 같았다. 주원이와 이미 안목을 튼 상태였고, 엄마나 나나 소녀들에게 말을 붙여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영어와 중국어를 하는 나와, 키르기즈어와 러시아어만 하는 소녀들 사이에 공통언어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녀들과 눈이 마주치면 활짝 크게 웃어주는게 전부였다. 오히려 대화를 시도한건 13살 소녀였다.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역기를 이용하여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키르기즈스탄은 어떤지, 비행기타면 얼마나 걸리는지, 한국은 정말 그렇게 잘 사는지 등이었다. 넓은 세계를 아직 보지 못한 소녀에게 최대한 재..

우리가 묵고 있는 둥간족 숙소에는 13살, 7살짜리 여자아이들이 살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서 학교가 닫자, 부모들이 자신들의 부모댁에서 방학을 보내도록 아이들을 보낸 것이었다. 13살 짜리 여자아이의 부모는 카라콜에서 설산 넘어 있는 카자흐스탄 수도인 알마티에서 일하고 있었고, 7살 아이의 부모는 키르기즈스탄 수도인 비쉬케크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가 둥간족 숙소에 간 날짜가 6월 말을 향해가고 있으니 방학 하자마자, 비교적 시골인 카라콜로 보내진 것이었다. 일하고 있는 부모들을 대신해 숙박업을 하며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녀들을 사랑으로 키워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방학이라고 조부모가 손녀들을 어디로 데리고 다닌다거나, 무엇을 가르치거나, 놀아주는 것도 없었다. 그저 아침, 점심..

주원이의 눈은 벌써 반쯤 감겨가고 있었다. 시차 적응을 못한 주원이로써는 키르기스스탄 현지시간인 밤 10시면, 한국시간으로써는 새벽 1시였다. 이미 꿈나라에 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게다가 온천욕까지 한 주원이는 깜깜해진 택시 안에서 점점 나른해졌다. "이 친구 딸래미가 비쉬케크에서 대학 갔다가 방학이 되어서 카라콜 집으로 왔다고 하네. 네가 중국어 잘하잖아. 딸내미한테 중국어 잘하는 외국인 있다 하니 기다리고 있다고 하네." 밤 10시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모르는 키르기즈 대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지친 엄마와 눈이 감겨가는 주원이를 보면 지금 이 시간에 현지인네 집에 가는 것은 진정한 무리였지만, 외국인이 온다고 좋아하는 딸내미랑 신나게 통화하는 택시기사 아저씨를 보니, 도저히 못 ..

성제오빠와 택시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악수(Aksu)온천에 내려다 주고 자신들은 더 산위에 있는 다른 온천으로 향했다. 성제오빠는 수영복을 입고 서로를 만나는게 대놓고 민망하다고 했다. 우리가 민망해하기도 전에 성제오빠는 먼저 민망해 하며 밤 9시 30분에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악수 온천은 산 속에 위치한 야외 온천이었다. 예전에 엄마와 함께 일본 온천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일본 온천은 자연속 고즈넉함과 조용함이 있다면, 악수 온천은 험준한 산속 온천 가족 파티장 같았다. 넓직한 4개의 온천욕장에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1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아기들은 애처 수영복도 준비하지 않은 채로 아빠 품에 꼭 안겨서 온천장에 들어오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가족들과 함께 온천장에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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