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무르 박물관(Temuriylar tarixi davlat muzeyi)은 그나마 앞에 갔었던 두 건물보다는 동그란 구조로 생겨서 상대적으로 부드러워 보였다. 더워서 그런지 박물관 앞에도 약간은 무뚝뚝해 보이는 분수가 있었다. 주원이가 분수에 또 관심을 보이기 전에 아이비에커는 빠르게 지하 매표소로 내려갔다. 아이비에커는 표를 사고 나서 자신도 티무르에 대해서 잘 모르니, 관광 가이드를 붙여서 자신이 통역해주겠다고 했다. 5살 주원이를 데리고 박물관이라니... 주원이의 인내심이 버틸지 나는 조금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가이드는 티무르에 대해서 아이비에커에게 우즈베크어로 이야기하고, 아이비에커는 그걸 또 한참 듣고 우리를 쳐다보며 중국어로 설명해줬다. 가이드나 아이비에커가 설명하건 말건, 친정엄마는 주원이의..

다음으로 아이비에커가 데려간 곳은 아무르 티무르 박물관이었다. 티무르왕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이름은 매우 익숙했다. 중국 서안을 떠난 이후 나는 아이비에커가 그리워, 한국 대학교를 복학하고 나서 6개월 만에 다시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우즈베키스탄 비자는 한국과 깊은 수교 관계가 없어서 비자 발급이 여간 까다로웠다. 당시 1달 여행비자가 13만 원이었고, 더 길게 있으려면 현지에서 유학이나 비즈니스 명목으로 현지 기관의 초청장이 있어야 했다. 대학교 3학년이 취업을 앞둔 시점에서 토익이나 경력 쌓기에 몰두해야 할 시점에 우즈베키스탄이라니... 내가 봐도 부모님께 드릴 말씀이 없어, 어떻게 하면 우즈베키스탄에 갈 수 있을까 알아보다가 현지 영어 연수를 할 수 있는 학교..

아이비에커는 짧은 시간 안에 타슈켄트의 주요 장소를 모두 보여주겠다는 결심을 한 듯했다. 우리가 모스크를 다 보고 나자, 바로 그다음 장소로 향했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그에 비해, 나는 왠지 모르게 불편했고, 엄마는 별생각 없이 더운 날씨에 아이비에커 차에 에어컨이 나와서 편해 보이는 듯했고, 주원이는 차 타는 것에 신나 했다. 아이비에커가 다음으로 이끈 곳은 알리셔 나보이 극장(Alisher Nava'i Theater)이었다. 연노란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타슈켄트의 찌는 날씨에 알리셔 나보이 극장으로 향하는 길은 땡볕이었다. 그 앞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분수가 물을 뿜어 더위를 그나마 식히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비에커는 우리가 생각이 있으면 예매해주..

조수석에 앉으니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얘네 와이프가 타는 자리겠지. 15년 전이라고 해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얘가 친구로 느껴지진 않았다. 아무 생각도 없는 듯했지만, 얘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모든 것이 질투 났다. "너희 어디 갈 예정이었어?" "어, 오늘은 현대 미술관에 갔다가 그냥 숙소에서 쉬려고 했지." "그럼, 내가 타슈켄트 관광을 시켜줄게." 돈이 없어 아껴쓰던 젊은 아이비에커와 능숙하게 차를 모는 아저씨 아이비에커,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아이비에커를 바라보았다. 짧은 머리스타일은 그대로였고, 살만 쪘다. 참으로 예쁜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그대로였다. 예전보다 잘 웃지 않는 것을 보니 일에 찌든 직장인 모습 같았다. 혹시 회사일로 바쁜데 나때문에 회사 일에 지..

아침부터 더울 조짐이 보였다. 아침 7시에 일어나니 숙소 마당에는 이미 주인집에서 물을 뿌려놓았다.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니, 이것은 바로 동남아에서 느껴본 아침 고요한 더위의 조짐이었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조금이라도 외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침 먹기 전 주원이를 데리고 인근 아파트 앞 놀이터에 다녀왔다. 30분도 안 놀았는데 이미 더위는 스멀스멀 나타나,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타슈켄트에서는 딱히 보고 싶은게 없었다. 2일간 그저 잘 먹고 잘 쉬다가 계획을 세워서 우즈베크 여행에 나설 참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에 있는데, 인스타그램으로 DM이 왔다. "너, 타슈켄트야? 도착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말도 안 해줄 수 있어?" 아이비에커였다. 아이비에커, 나의 첫 남자 친구, 짝사랑을 제외..

초르수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정말 초르수 시장 한복판이었다. 심야버스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우리는 매우 굶주려 있었다. 지난밤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 매점에서 허접한 빵만 2개 샀는데, 그마저도 다 먹지 못했다. 더 이상 중앙아시아의 동그란 빵은 먹기 싫었다. 유아차에 백팩에 주원이에 몸은 무거웠지만, 숙소 가기 전 초르수 시장에서 체리와 천도복숭아를 샀다. 우리는 언어가 안 되었기 때문에 무조건 손가락으로 1킬로만큼 달라고 했다. 히잡을 두른 상인은 비밀봉지에 과일을 담고 전자저울로 계량해서 주었는데, 우리네 시장처럼 덤으로 하나 더 얹어주는 법이 없었다. 조금 무게를 초과했기로서니 1킬로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니 체리를 3개 빼고, 다시 1개를 담아서 1킬로를 맞춰서 주었다. 마치 무게를 정확하게..

오전 9시 넘어 버스터미널(Avtovokzal Toshkent)에 도착했다. 널찍하고 웅장한 버스터미널이었다. 길가에는 쓰레기 한 점 허용하지 않는 깔끔함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와서 그런지 우즈베키스탄이 정말 발달해 보였다. 버스에 내려 짐을 내리니,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다지 볼 수 없었던 택시기사들의 호객 행위가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호객 행위가 매우 흔했지만, 왠지 중앙아시아에서는 호객행위가 다소 생소했다. 무거운 백팩에 유아차에, 이미 12시간의 심야버스까지 탄 지라 솔직히 택시를 타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일단 우리가 성제 오빠로부터 환전한 돈이 많지 않았고, 택시가 얼마인지 몰랐고, 무엇보다도 엄마는 배낭여행객처럼 지하철을 타고자 했다. 엄마는 무슨 자신감인지 엄마가 부킹닷..

안녕하세요. 저는 5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5년 전인 2018년 3월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은 후, 저의 젖은 만족할만한 모유양이 처음부터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초보 엄마라 그런지 유선이 막혀있거나, 모유수유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당황스러움에 젖도 잘 안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있던 병원은 자연주의 출산을 중점으로 두고 있는 병원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밀착 육아를 중시하였습니다. 협조가 잘 되지 않는 저의 젖에 저도 너무 당황할 무렵, 저는 캐리어에서 제가 준비해온 비건 분유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준비해온 분유는 12개월 이상인 아이가 섭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저의 분유통을 가져가서 영문으로 된 설명서를 읽고 저에게 얘기해주고 나서야 분유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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