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 전 키르기즈스탄에 가는 비행기표가 확정되었던 어느날이었다. 이왕 중앙아시아에 가는 김에 내가 중앙아시아에서 만날 사람이 없나 생각하던 차에, 키르기즈스탄의 이웃나라 우즈베키스탄의 15년 전 알고 지내던 바허가 떠올랐다. 중국 교환학생 시절 중국 시안에서 함께 중국어 연수를 하던 친구로, 키크고 마르고 착해서 약간은 히마리가 없이 느껴지는 남자아이였다. 나랑 동갑인데다 착해서 밤에 PC방 갈 때 보디가드로 호출해서 부르던 친구였다. 15년 만에 연락하는게 가능할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고, 단 한번도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없다. 나는 애 낳은 아줌마의 뻔뻔함으로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바허!" "안녕." "나 엄마랑 애기랑 좀 이따가 여름에 키르기즈스탄 갈지도 몰라. 너랑 만날 수 ..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장장 10시간이 걸린 여정이었다. 비쉬케크 공항에 도착하여, 2개 캐리어, 2개 배낭, 1개의 유아차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생각치도 못하게 성제오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주전에 성제오빠가 카카오톡으로 '비행기표 좀 보내봐라.'라고 메시지가 온게 마지막 연락이어서 마중 나올지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았다. 언제 얼만큼 우리와 같이 있을꺼냐고 사전에 물어보았지만, '와서 얘기하자. 일단 와.'라는 답변이 전부였다. 성제오빠는 자주 입는 카키색 후드잠바와 청바지, 빛이 바랜 곤색 야구모자를 쓰고 또 책이 가득 들어있는 검정배낭을 메고 거기 있었다. "성제오빠!!!!!!!!!!"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니 현지 택시기사들이 웃으며 나의 '오빠'소리를 따라했다. 성제오빠는 우리가 가..

2022년 현재 키르기즈스탄까지 가는 직항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알마티 공항에서 2시간 대기하였다. 7시간 만에 알마티 공항에서 내려 탑승 대기실에 가보니 좁디 좁은 대기실은 꽉 차있었는데, 그 중 절반이 조지아로 가버리고 나니 남은 사람들은 키르기즈스탄으로 가는 한국교민 반, 한국에서 일하다가 귀국하는 키르기즈인 반이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자발적인듯 했지만, 큰 맥락에서는 크나큰 시스템 안에서 물 흐르는 대로 흘러왔다. 대학갈 때 대학 갔고, 부랴부랴 취직했고, 결혼 적령기에 결혼도 했다. 시스템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버둥버둥 살아온 삶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키르기즈스탄에 가려고 알마티 공항 대기실에 있다. 그것도 친정엄마랑 5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내가 드디어 시스템 안에서 탈출했다고 보는 게..

5살 아이와의 해외여행은 첩보작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빠와 애착이 있는 주원이가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3달 동안 아빠랑 이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출국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어질 것이다. 아이 아빠는 아기가 깨기전, 새벽에 할아버지 차에 짐만 실어주고, 아이가 할아버지 차에 타는 모습을 경비실 뒤에서 숨어서 보고 있었다. 주원이는 아이 아빠의 걱정과는 달리 할아버지 차를 탄다는 것 자체로 새벽부터 신나보였다. 공항에 일찍 도착한 우리는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신속하게 끝냈다. 신속항원검사결과가 나오기 까지 1시간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신속항원검사소 한쪽에 짐을 정리해두고, 여유롭게 공항내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둘러보기로 했다. 터미널1부터 터미널2까지는 체감이 약 20여분 걸린듯 했다. ..

인계자는 내 퇴사 10일 전에 입사했다. 완벽한 인수인계로 남은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나의 바람은 환상 같은 것이었다. 처음 퇴사한다고 했을때만 해도, 팀장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인수인계 기간이 최소 1달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부랴부랴 경력 입사자를 뽑는듯 했지만, 여러명의 우수한 경력입사자는 거의 KPOPstar의 심사위원이라도 되는 듯한 임원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고, 결국 너무 급하게 직무 연관성도 없는 사람이 떡하니 뽑히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그 사람한테 업무도 잘 가르쳐주고, 남은 문제들이나 깔끔하게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팀장은 너무 급한 나머지 마지막 근무일을 6/13일에서 일주일 더 미룰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렇다면 내 비..
11월 말 나는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화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쉴 수 있었다. 이미 그 즈음에는 퇴사 통보를 하고 나니 회사의 과도한 업무도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아이와 바깥에서 거닐며 산책하고 있는데 걸려온 카카오톡 화상전화. 성제오빠였다. 아이와는 화상통화를 많이 하지만, 성인끼리는 화상통화를 해본 적은 거의 없었는데 화상통화라니... 성제오빠는 대학생 때 중국 교환학생 시절 기숙사에서 알게 된 오빠였다. 이 오빠를 처음 본 건 중국 서북대학 학생식당에서였다. 얼굴도 몸도 길쭉해서 말라가지고는 상하의 모두 회색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회색 추리닝도 무슨 나이키나 아디다스에서 산 추리닝이 아니고, 가슴 한켠에 회사 로고 같은게 새겨져있는, 회사에서 운동회나 단합대회 할 때 개인 사이즈만 고려해서 일괄적..
2021년 내내 나는 코로나로 인해 장기간동안 친정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친정집에 속보로 출근하며 운동을 하고, 오전 근무를 하고, 또 점심시간 동안은 친정집 개와 햇살을 받으며 아파트 단지를 산책했다. 오후 근무가 끝나면 6시가 되기 무섭게 노트북을 정리하고 또 20분간 속보로 걸어 집에 왔다. 친정집은 아파트 14층이었기 때문에 퇴근할 때쯤 저 멀리 산 뒤로 넘어가는 노을도 멋있었다. 가끔 친정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으시는 날이면, 나에게 감자나 고구마를 쪄주시거나 과일도 간식으로 주시고, 저녁도 막 지은 밥에 간장에 조린 두부구이나 소금으로 살짝 볶은 담백한 버섯양파볶음를 해주셨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영위한 나의 일상은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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