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쾌적한 고속열차를 타고 2시간 26분 만에 사마르칸트 기차역에 도착했다. 사마르칸트도 부하라 정도의 도시겠지 했는데, 내리자마자 느껴진 도시의 규모는 타슈켄트급이었다. 내가 그렇게 판단한 아주 단순한 이유는 사마르칸트 기차역 앞에 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 버스, 트램 등 모든 교통수단의 마니아였던 주원이는 기차역 앞에 멈춰있는 트램을 보고 할머니의 손을 이끌었다. "저 트램 타고 싶어요." 멈춰있는 트램 앞에서 내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주원이가 방긋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나는 순간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그래. 사마르칸트는 트램이 있을 정도로 대도시니까 트램을 타고 도시를 배낭여행자처럼 다니는 거야. 유럽에서도 트램 타고 다녔잖아. 얼마나 낭만적이야. 주원이도 좋아할 거야. 나는 기대에 부풀어올..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 가는 기차는 오후 4시 출발이었다. 아침을 먹은 우리는 부하라에서의 마지막날에 가벼운 산책에 나섰다. 모스크도, 이슬람 신학교인 마드라사도, 랴비하우스도 더 이상 흥미가 없었다. 친정엄마는 그저 이 더위를 피해 한적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전체적으로 도시나 주택 조경은 깔끔하고 아름다운 반면, 공원 같은 곳에 사람이 앉을 만한 벤치가 너무 없었다. 공원이 있어도, 나무를 많이 심어 그늘을 조성하기 보다는 번쩍번쩍한 건축물로 승부를 보는 느낌이었다. 반면, 키르기스스탄은 공원이든 도시든 다소 무질서하고 인도도 갈라져있어서 잡풀이 군데군데 나있는 반면, 공원은 늘 수많은 벤치들이 있었다. 물론 벤치조차 관리가 안 되어 있어서 의자가 깨져있..

큰 슈퍼에 가려면 꼭 타야 하는 전기차 부하라 성 내부는 관광지화 되어 있어 거주지라 보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히 슈퍼도 없다. 단조로운 중앙아시아의 먹거리에 지친 엄마는 미역냉국이 간절히 먹고 싶다고 하셨다. 그게 어렵다면 라면만이라도 먹고 싶다고 하셨다. 다행히 한국 라면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성내부에서 슈퍼까지 좀 걸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날씨가 좀 서늘하면 20분 걷는 게 뭐가 그리 대수겠냐마는 오늘도 42도까지 기온이 치솟았다. 더구나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든 부하라성 아닌가. 양산을 써도 땅에서 올라오는 복사열 때문에 걷기 조차 힘들었다. 부하라성 내부는 자동차 출입도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슈퍼에 가려면 부하라성 안을 오고 가는 전기차를 타는 수밖에 없었다. ..

기차역에 다녀와서 분명 지쳤을 텐데, 엄마는 의외로 부하라의 기념품에 관심을 가졌다. 부하라는 확실히 히바보다 규모가 있고, 실제 부하라의 장인들이 만든 것 같은 이미지를 줬다. 부하라에 비하면, 히바는 기념품들이 히바 장인이 만든 게 아니라 어디서 떼다 파는 느낌이랄까. 부하라의 실크스카프 엄마는 실크를 파는 곳에 가서 바다향이 물씬 풍기는 실크스카프를 집어 들었다. 이렇게 물건에 가격이 명기가 되어있지 않은 시장에서는 상인이 제시한 가격을 깎아야 하는데, 엄마는 상인이 20불이라고 얘기해도 깎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저 거울만 보고 스카프가 마음에 들면 살 생각이었다. 엄마의 생모, 즉 나의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광장시장에서 고기를 파셨다. 시장에서 온종일 물건을 파는 건 참 고된 일인데, 여름에는 ..
영어교사인 택시기사 화난 매표원 때문에 전날 엉겁결에 끊어버린 내일 새벽 5시 출발 기차표를 황급히 바꿔야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날 부하라 기차역에서 택시비 호구로 덤터기를 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부하라 요새의 친절한 가이드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 현지인의 적정한 가격에 부하라 왕복 택시를 끊을 수 있었다. 가이드는 직접 자신의 일터에서 벗어나 택시기사에게 가격과 행선지를 협상해 주었고, 우리의 택시가 출발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이드의 작은 배려에 부하라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택시기사가 영어를 잘 할 것이라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막상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에게 영어를 시도해보니 택시기사가 영어를 너무 잘하는 거 아닌가. 잘해도 너무 잘했다. "영어 정말 잘 하시네요..

종합입장권이 없어 더 비싼 부하라 관광입장료 부하라는 종합입장권이 없었다. 2일 입장권으로 성 내부 대부분의 건물을 입장할 수 있었던 히바에 비해, 부하라는 훨씬 더 발전한 도시인데도, 입장권 모둠 특혜가 없어서 모든 관광지마다 돈을 따로 내야 했다. 부하라는 어찌 된 모양인지 개별 입장료도 꽤나 비싼 편이었다. 부하라에 도착한 첫날, 랴비하우스(Lyabi Khauz)의 연못 건너편 아름다운 건물인 노디르 데본 베기 소나코시(Nodir Devon Begi Xonaqosi)에 인당 1달러에 준하는 금액을 내고 들어갔으나, 화려한 건물에 비해 안은 정말 휑했다. 부하라의 전체 모형도,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복장 등 다소 뻔하디 뻔한 것들만 전시되어 있고, 그 규모도 소강당 1개 사이즈라 5분 안에 볼 수 있었..

부하라의 낡은 놀이터에서 시티투어버스라는 멋진 목표를 상실한 우리는 부하라의 아르크 방향으로 수로를 따라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부하라 성에서도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빵을 잔뜩 자전거에 싣고 어디론가 향하는 할아버지, 점심 무렵 무슬림사원에서 절하는 남자들, 아이들의 학교, 그리고 약간은 삐걱거리는 그네까지... 폭염 속 부하라의 일상은 고요하고 침착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지르갈란 놀이터에서도 그네가 꼭 하나는 의자가 빠져있더구먼,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학교 앞 놀이터에도 그네 의자가 빠져있었다. 주원이는 망가진 의자만 보면 뭐가 그리 좋은지 두 봉을 두 손으로 각각 잡고 "아아아아~" 타잔 놀이를 해댔다. 아이랑 여행 다니니 가는 곳마다 곳곳의 놀이터란 놀이터는 다 가본다. 여행을 통틀어 중앙아..

부하라에는 시티투어버스도, 관광객 안내소도 없었다. 전날 봐놨던 시티투어버스 매표소에 가니, 매표소 안에 사람도 없을뿐더러, 사람이 드나든 흔적도 없었다. 어젯밤에는 몰랐지만, 낮에 보니 시티투어버스 포스터도 색이 다 바래있었다. 느낌이 세했다. 주변 주차장 관리아저씨한테 시티버스를 가리키며 물어봤지만, 아저씨는 우리가 말이 안 통하는 걸 알고, 팔로 엑스자를 긋거나, 고개를 옆으로 도리도리 흔들 뿐이었다. 마침 주원이가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유료화장실에 갔더니 유료화장실 관리하는 젊은 여자가 매니큐어를 바르며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여자에게 번역기로 시티투어버스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러시아어로 돌아온 답변 역시 없다는 것이었다. 부하라의 희망, 주원이의 사랑, 우리의 시티버스는 운행하지 않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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